[시론] 학교폭력의 새로운 양상과 사회의식
[시론] 학교폭력의 새로운 양상과 사회의식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3.05.28 2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근혜정부가 국민의 기대를 가장 많이 모으고 있는 정책은 아마도 4대악 척결에 관한 강한 의지표현이다. 학교폭력은 4대악의 으뜸이다. 국무총리와 4개 부처 장관이 나서 “학교폭력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학교폭력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학교폭력 신고전화 117은 범죄신고 112, 화재신고 119처럼 제법 널리 알려져 신고건수가 매월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올1월에만도 4730건에 불과하더니 2월 6033건, 3월 1만575건, 4월 1만2203건으로 대폭적으로 증가했다.

신학기에 그만큼 폭력행위가 많아져서이기도 하겠지만 피해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신고에 대한 믿음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정부가 종합대책으로 내세운 것은 △스쿨 폴리스제도 △가해자 강제전학 등 격리제도 △복수담임제도 △전국1만1000개 학교폭력 전수(全數)조사 △일진 경보학교 지정 등이다. 예방과 처벌을 혼합한 대책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아주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복수 담임제도는 현실성이 떨어져 현장에서 거의 채택하지 못하고 있으며 스쿨 폴리스 역시 예산문제 등으로 1만1000개 학교 중에서 겨우 700여명이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물리적 제재가 가능한 교육청과 경찰·검찰까지 동원할 수 있어 광범위한 학교폭력행위를 포위하고 조이는 작전을 펴고 있으나 이를 빠져나가는 폭력의 양상은 지능적으로 물밑행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뛰는 정부대책에 학교폭력은 날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직접적인 증거를 남기지 않고 교묘히 빠져나가는 음성적 폭력방법을 사용하는 일이다. 학교폭력의 양태는 그동안 매스컴을 통하여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증거가 뚜렷하게 남으면 교칙에 의한 징계를 받거나, 형사처벌로 이어진다. 자살하는 학생이 속출하고 있어 그 책임을 떠안을 수도 있다.

자칫하면 가해학생 처벌로 끝나지 않고 학부모까지 배상책임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생긴다. 요즘 학교폭력의 양상이 이런 것까지 미리 예상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정서적 폭력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피해학생에게 모욕을 퍼붓고, 따돌림으로 괴롭히고, 심한 명예훼손 행위를 자행한다. 협박과 위협으로 신체적 위해를 가할 것처럼 노골적인 공갈행위를 자행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단둘이 있을 때만 하게 되면 증인과 증거를 찾을 수 없다.

특히 사이버를 이용한 카카오톡으로 한 사람을 겨냥한 집단 따돌림은 피해 당사자를 미치게 만든다. 여기에서는 피해학생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A나 B라고만 쓰면 많은 학생들은 다 아는 이름이지만 실명이 없으니 학교폭력이라고 신고하기도 어렵다. 지난번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여고생의 경우에도 어느 누구라고 정확하게 가해자를 밝히지 못했지만 치를 떨게 만드는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한 많은 세상을 버린 것이다.

학생들의 폭력양상이 이처럼 비열하게 발전하고 있는 데는 기성세력인 어른들의 잘못된 사회의식에도 큰 원인이 있다. 남양유업 대리점 주인이 자살한 사건을 두고 우리 사회는 갑을(甲乙)관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심지어 어떤 야당은 ‘을을 대표하는 정당’이라고 자임하고 나서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인 을에 대한 동정심을 자기네 지지 세력으로 흡수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일반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갑중의 갑이다. 갑을 관계를 지배자와 추종자로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문화를 대체적으로 순응하며 살아왔다.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온 갑을의식은 결국 어린 학생들에게도 때리고, 빼앗고, 따돌려도 죄의식이 안 생기는 폭력의 갑(甲) 가해자로 양성된 게 아닐까. 피해자는 철저한 을(乙)로 납작 엎드려 지낼 수밖에 없으니 4대악의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음을 진즉 깨달았어야 한다.

며칠 전부터 SNS(소셜 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하여 얄궂은 동영상이 퍼져나가고 있어 식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학교에서 상습흡연자로 낙인찍혀 사회봉사 활동을 나간 학생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이다. 고교 2학년인 두 학생은 노인 요양시설로 배정되었다.

정상적인 봉사는 목욕을 시켜드리거나 청소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어 가리키며 “여봐라, 네 이놈,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하고 호통을 쳤다. 이어서 “꿇어라, 꿇어라, 이게 너와 눈높이다”라고 손을 잡는다. 물론 장난으로 한 일이라고 보고 싶다. 그러나 생전 처음 만난 할머니에게 ‘네 이놈’이 당키나 하며 막말이 용인될 수 있는 일인가.

사회봉사는 학교선도규정에 따른 징벌이다. 징벌 대상자를 노인요양시설에 보낼 때에는 평소의 소양이나 봉사에 대한 평상심이 있는지 살펴본 다음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고 가르쳐야만 한다. 봉사 나온 학생이 장난이라도 갑자기 고함을 치거나 호통을 치면 아무 힘없는 환자 노인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고, 행여 주먹이라도 휘두를까 죽은 듯 눈도 크게 뜨지 못할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학생폭력을 장난으로 치부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학교폭력을 증폭시키는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인성을 다듬는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