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서 인종차별 국가로 낙인찍힌 호주
[시론] 한국서 인종차별 국가로 낙인찍힌 호주
  • 고직순<호주한국인보 발행인>
  • 승인 2013.06.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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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호주대사 “특파원 편파 보도 때문” 발끈

신임 이스트우드 호주한인상공인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한국 내 지자체와의 교역상담회 개최, 미스코리아 한국 본선대회 참관 등 업무로 한 주 동안 한국에 출장을 와 있다. 한국 방문 전 호주-한국 간 교역상담회를 제안한 성남시와 성남산업진흥재단을 이틀 전 방문해 실무 관계자들을 만났다. 한 성남시 관계자는 대양주에서 동포단체가 자체적으로 이 같은 교류를 제안하고 직접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고 다소 놀란 반응을 보였다.

구체적인 교류를 하기에 여러 준비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고 신뢰를 바탕으로 성실히 또 실질적인 목적을 위해 노력을 하자는 점에 합의를 했다. 본건에 대한 논의를 마치고 헤어지기 직전 필자는 갑작스론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호주의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매우 심하다고 하던데요...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다행이 필자가 기자였고 이 문제를 다뤄 사정을 잘 알며 한국일보 본지에 기고를 했던 터라 이 관계자에게 간단명료하게 “전혀 걱정할 사안이 아니다. 한국 언론에 과장 보도된 측면이 많다. 나는 28년 호주에 살았지만 인종차별 때문에 호주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호주는 한국 언론에 잘 못 보도된 그런 나라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안심을 시켰다.

필자는 한국일보 본지 기고에서 “일부 사례가 과장 보도됐다. 이런 보도로 인해 한호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했다. 이 관계자에게 전한 필자의 요점은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는 없다. 호주에서도 인종차별 행위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일련의 사건을 과장 보도한 것처럼 호주는 그런 ‘극단적인 인종차별국가(extreme racist country)’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더욱 놀란 점은 이 미팅에 앞서 산업진흥재단 관계자들과 회의 후 점심을 하는 자리에서 동일한 질문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것도 2명의 젊은 직원들이 번갈아 가며 우려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여기서도 필자는 같은 맥락의 메시지를 전하며 안심을 시켰다. 필자의 설명이 이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모른다.

이번 방문 며칠 동안 “호주가 특히 아시아인을 심하게 차별하는 인종차별 국가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무려 다른 모임에서 세 번씩이나 받았다. 그동안 거의 매년 두세 번씩 한국을 방문했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한편으로 기가 막힐 지경이었고 화도 났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바로 그날 6월5일 저녁 한국 내 언론에 이 문제에 관련한 기사가 보도됐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5일 윌리엄 패터슨 주한 호주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호주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희망했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당대표실을 찾은 패터슨 대사에게 “한국과 호주가 FTA 협상과정에 있는데 빨리 매듭을 짓게 돼 한국과 호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와 패터슨 대사는 호주 내 인종차별 문제에 관한 대화도 나눴다. 김 대표는 “가끔 뉴스를 보면 여전히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도돼 우리로선 크게 걱정하고 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이에 패터슨 대사는 “지난 사건들이 호주 경찰조사 결과 직접적으로 아시아인, 특히 한국인을 직접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일을 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탓에 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패터슨 대사는 “호주 내 사건에 대한 한국의 보도는 연합뉴스 기자 1명에 의한 것이다. 1명의 통신원이 내는 기사를 다른 언론이 받는다”면서 “그런데 안타깝게도 호주발 뉴스가 부정적인 뉴스가 대부분이다.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보도라 생각한다”고 따갑게 지적했다.

주한 호주대사가 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내 특정언론사를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는 혹평을 내 논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외교관답지 않은 자세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패터슨 대사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너무 빈번하게 과장 보도되면서 호주의 이미지가 실추되자 발끈하며 이같이 언급을 했다.한국 내 여러 언론이 김한길 대표와 패터슨 주한호주대사의 면담 기사를 보도했다.

대부분 한호 FTA 타결과 교역증대 필요성 논의에 초점을 맞췄다. 패터슨 대사가 반박한 내용은 거의 비켜갔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언론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껄끄러웠을 것이다. 또 주요 신문사들이 호주 특파원이 보낸 관련 기사에 양념을 넣어 또 다른 요리를 했기 때문에 같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뉴시스 통신사는 양자 대화를 소상히 보도했다. 그 배경은 뉴시스가 연합뉴스와 경쟁 관계에 있다는 입장이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호주한국일보는 이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고민 끝에 뉴시스의 관련 기사를 전재했다.

뉴시스는 ‘호주대사가 국내 특정언론 지목·비판한 이유는?’이라는 해설 기사에서 “패터슨 대사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선 한 나라의 대사가 자신의 부임지 내 특정언론을 지목해 공개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보도의 공정성에 문제를 심각히 느낀 것을 지적한 것 아니겠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취재진에게 발송하는 두 인사의 공개발언녹취 이메일에서 패터슨 대사의 해당 발언을 삭제한 채 “실제 경찰 조사 결과 등을 봤을 때 실제와 달리 과장되게 일부 언론에 의해 전달되고 있다는 말씀’이란 문구로 대체, 논란을 야기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내 제1 야당이 연합뉴스를 비롯, 한국 주요 언론사들의 눈치를 보며 이처럼 기사를 ‘마사지’하면서 스스로 기는 꼴을 보인 것은 정말 못난 행동이다.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서 호주는 분명히 인종차별 국가로 낙인 찍혔다는 것을 이번 방문을 통해 확인했다. 힘이 없는 동포언론의 한 구석을 맡고 있는 필자로서 몹시 기분이 언짢았다.

그 원인은 호주에 대해 한참 공부를 해야 할 수준에 있는 기자들의 타성에 젖은 또는 사견이 반영된 펜대 놀림 때문이다. 이런 기자들의 시각은 균형성을 상실했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인종차별 기사를 다룰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백호주의’ 역사를 곁들인다. 한국 비난 기사에 개고기 먹는 나라 또는 아직도 외국으로 아동을 입양시키는 입양수출국임을 한국 관련 모든 기사에 게재한다면 한국인들의 심정이 어떠할까?

호주에서 발생한 한국 관련 기사를 샅샅이 보도하면서도 최근 한국인 청년(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이 전철 안에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한국계 남녀 청년들(3명)로부터 폭행 강도를 당했다. 왜 이런 중요한 사건 기사는 한국 내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 대답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지는 이번 주 특집으로 호주 이민특집을 다뤘다. 관련 기사 중 지난해 호주가 1만3천여명의 난민을 인도주의 항목으로 영주권을 부여해 호주에 정착시켰다는 내용이다. 호주는 캐나다와 미국과 함께 선진국 중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다. 인구 대비 1위다. 이런 난민들은 여러 해 동안 정부 복지에 의존을 해야 한다는 점을 호주가 모를 리 없지만 잘 사는 선진국의 일원으로 국제사회의 의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간, 이란, 이라크, 시리아, 수단, 스리랑카 등 국제적으로 가장 골치가 아픈 분쟁국 출신을 매년 1만 명 이상 받아들이는 나라를 향해 몇몇 우발적인 인정차별성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두고 지독한 인종차별 국가라고 손가락질을 할 자격이 한국 언론에 있을까? 과거 화교 차별, 최근 동남아인 차별 등 한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남의 눈의 든 티는 나무라면서 제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 한다”는 격언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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