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43] 자리끼를 아시나요?
[아! 대한민국-43] 자리끼를 아시나요?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3.06.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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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작은 소반 위에 하얀 넓적 대접 하나. 대접 속에는 물이 반 넘어 담겨있다. 한옥 사랑채 아버님 머리맡 잠자리 풍경이다. 대접에 담긴 물이 자리끼다. 며느리가 밤에 꼭 챙겨드려야 했던 것이 이 자리끼다. 자리끼는 밤중에 자다가 목이 마를 때를 위해 준비해 두는 먹을 물이다.

‘자리끼’란 ‘자리’와 ‘끼’라는 낱말이 합쳐진 말이다. ‘자리’는 앉은 자리, 선 자리,누울 자리 할 때의 그 자리인데, 여기서는 ‘잠자리’의 준말이라고 할 수 있다. ‘끼’란 한끼, 두끼 할 때의 그 끼로, ‘끼니’의 옛말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이란 뜻이다. 밤에는 물이 켜서, 물도 끼니의 역할을 한다는 뜻이 ‘자리끼’라는 말에는 함축되어 있다.

한마디로 ‘자리끼’란 잠들기 전 깔아놓은 이부자리 위쪽에 준비해 두는, 밤중에어른이 마시는 물이란 뜻이다. 자리끼를 이렇게 마련해 두는 것은 우리의 주거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랑채는 부엌과 떨어져 있는데다, 거동을 하려면 자연히 불을 밝히는 번거로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전기가 없이 호롱불을 켜야했던 그 옛날에는 밤중에 물을 마시러 부엌까지 가기가 힘들었다.

또 부엌에 들어가 두멍에 담겨있는 물을 바가지로 떠 마신다는 게 어른의 체통에도 맞지 않는다. 요즈음에는 냉장고에 있는 물을 마시면 그만이지만, 부엌에 들어가 물을 떠마시자면 자칫 온 식구들의 잠을 다 깨워야 할 판이었다. 내실에 요강이 있어야 했듯이 사랑채에는 자리끼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자리끼의 효용은 ‘자다가 마시는 물’에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리끼는 전통적인 주거문화와 음식문화의 집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한옥은 목조로 지어지는데다가 온돌을 통해 난방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방안은 언제나 건조할 수 밖에 없었다.

그토록 건조한 속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자칫 건강, 특히 호흡기 계통의 이상을 초래할 위험이 있게 마련이다. 목이 마르면 마실 물이지만, 대접의 물은 방안의 건조함을 해결하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방안이 건조하고 더우면 더울수록 대접 속의 물은 천연가습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이다.

자리끼란 한옥이라는 주거 환경 속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찾아낸 오묘한 지혜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주(住)문화와 식(食)문화가 그 안에 모두 반영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이 창안한 천연 가습기는 이 밖에도 여럿이 있다. 물을 담아놓은 그릇에 달군 숯을 넣어둔다든지, 물에 담가두었던 솔방울을 방안에 놓아둔다든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의 슬기가 거듭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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