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제가 강제 분할한 전주, 완주는 왜색잔재로 살아야 하나
[시론] 일제가 강제 분할한 전주, 완주는 왜색잔재로 살아야 하나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3.07.0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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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오랜 세월 독자적으로 생활해 왔던 행정구역이기 때문에 삶의 방식이 다를 수도 있고 문화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산이 가로막혀 있거나 강을 건너야 하는 지역이라면 더군다나 이질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통합이라는 얘기를 꺼내기도 힘들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여러 군데의 행정구역 통합은 이런 문제점이 적거나 없는 지역이 우선적으로 선택되어 왔다. 경상남도의 창원, 마산, 진해는 나름대로 특색을 갖춘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를 형성해 왔다. 창원은 신흥도시로서 산업을 기반으로 큰 도시를 형성했고, 마산은 항구도시로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로 4.19혁명과 부마항쟁의 선도역할을 담당했던 이력도 자랑한다. 진해는 옛날부터 해군이 주둔하는 군항으로서 유명세를 떨쳐왔으며 특히 봄철만 되면 진해 벚꽃 축제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선거구도 독자적으로 선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세 도시가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주민투표의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다. 3개시가 창원시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고, 마산은 기존했던 구 이름 앞에 ‘마산’을 표기하여 그 역사성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완전무결하게 독자적이었던 세 도시가 하나로 통합되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충청북도의 청주시와 청원군은 도시 구조가 전주시, 완주군과 빼닮았다. 청주시를 둘러싸고 청원군이 존재한다. 이 지역 역시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없지 않았으나 단 한 번의 주민투표로 통합이 성사되었다. 이들 도시들이 통합 이후 과거보다 훨씬 삶의 질이 고양되고 지역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중소도시에 머물렀던 통합 이전보다 10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로서의 위상은 비록 정치경제적인 면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활발한 유통과 문화적 수혜는 엄청나다.

둘 셋이었을 때보다 하나가 되었을 때의 힘은 물리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내면의 성장에서 엿보인다. 대도시에 대한 정부의 행정적 지원은 중소도시에 비할 바 아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행정구역 통합의 사례를 잘 보아왔던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 문제는 어째서 번번이 실패를 거듭할까.

지난 6월 26일 완주군 13개 읍면, 33개 투표소에서 진행된 완주전주 행정구역 통합에 대한 완주군민 주민투표가 시행되었다. 주민투표의 성공조건은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인데 행정구역 통합문제가 아니었던 서울시, 하남시, 광명시에서의 주민투표는 모두 3분의 1 미달로 개표조차 하지 못했던 전례가 있다.

그러나 이번 완주군민 투표는 과반수를 넘는 적극적인 투표경향으로 개표조건을 충족했고 개표 결과 찬성보다 반대가 많아 통합은 무산되었다. 전주시장과 완주군수가 통합에 합의한 이후 적극적으로 성사시키려 했던 통합이 물 건너 간 것은 무슨 연유일까. 전주 완주 통합 문제는 이번이 세 번째이다.

역사상 1935년까지 전주 완주는 하나였다. 일본총독부가 통치 편의상 이를 갈라놨다. 조선 왕조의 뿌리였던 전주가 비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 왕조를 뒤엎은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이후 사대(四代) 선조의 묘를 전주에 조성했으며 이를 기리는 경기전(慶基殿)과 조경전(肇慶殿)으로 조선왕조의 근원지가 전주임을 확인했다.

일제는 강제 합방 후 조선 말살의 일환으로 경기전을 대폭 축소시켰다. 그 자리에는 일본인 학생이 대부분인 소학교를 건립했으며 광복 후 중앙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우리 정부에서 경기전을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학교부지가 사라진 전주중앙초등학교는 폐교의 운명을 맞았으나 당시 이강년(李康年) 도지사의 배려로 현재의 초미니 학교로 변신한 것은 후일의 얘기다.

이처럼 전주 완주가 일제의 강제 정책의 희생물이 되어 두 갈래로 찢긴 것도 분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완주군민들이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것을 염려하는 선출직 정치 인사들의 집요한 아집에 휘말려 통합 반대로 돌아선 것은 발등을 찍고 후회할 일이다. 이번에 통합이 실현되었다면 그것은 일제가 저지른 탄압의 실상을 한꺼번에 삼제(芟除)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조선의 근본을 분할로 감추려했던 일제의 간악한 정책을 이번 기회에 풀었어야 했는데 몹시 아쉽다. 위안부와 보국근로대, 그리고 학병으로 끌려갔던 선조들도 통곡할 일이다. 일제의 잔재를 없애야 된다고 큰소리치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일제의 강압정책을 옹호한 셈이 되었다. 가장 조선(朝鮮)의 기운이 넘쳐나고 문화적 유산이 많은 전주 완주가 일제의 잔재로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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