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뜰안에 차향(茶香)이 난다
[취재수첩] 뜰안에 차향(茶香)이 난다
  • 김양균 기자
  • 승인 2013.09.05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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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위에 서까래가 섰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7일, 기자는 한증막을 방불케 했던 종로 낙원상가 한복판에 있었다. 종로세무서 골목을 헤집고 다니기 삼십여 분, 가까스로 ‘뜰안’이라 적힌 나무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나무문을 밀고 들어서자 일본어가 제법 많이 들려온다. 이곳은 영화 촬영지이기도 해 한국을 소개하는 여행책자에 수차례 소개되었다. 요는 한국여행을 고려하는 일본인이 한번쯤 꼭 들려봐야 할 명소라는 것.

뜰안의 유명세는 무엇보다 손맛이 묻어난 ‘차’ 때문이다. 단팥죽, 팥빙수, 쌍화차, 십전대보탕 등 판매하는 모든 전통차의 재료는 직접 만들어 쓴다. 얼음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녹차와 유자차를 우려낸 후 얼려낸다.

 

멋스러운 한국미를 제대로 살린 특색 있는 인테리어도 눈길을 끈다. 서까래를 드러내어 과거 이곳이 한옥이었음을 알리는 동시에 전통미를 배가시킨다. 단돈 15만원으로 꾸몄다는 작은 정원은 이곳의 자랑거리다. 남천나무 네그루와 꽃이 우거진 소담한 뜰은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색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은 여행객의 넋을 빼놓는다는 사실.

서까래와 정원에 정신이 팔린 사이 뜰안의 대표 김애란씨(59세)가 미룻가루를 내왔다. 고된 세월의 무게가 묻어있는 김 대표의 얼굴은 푸근감과 함께 뿔테 너머로 언뜻 비치는 날카로움이 더해져 묘한 인상을 풍겼다.

 

“적당한 한옥을 계속 찾아다녔습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2009년 1월, 마침내 이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창고나 다름없었지요.”

방치되다시피해서 배수나 환기 시설이 엉망이었다. 곧 서까래 등의 나무 골격만 남겨둔 채 대대적인 공사가 이뤄졌다. 건물 구조도 뜰을 둘러싸도록 ㄴ자 형태로 바뀌었다.

뜰안을 찾는 사람들

‘서울에 온 일본인 기자 준(사이토 다쿠미)은 모란당의 전통떡 취재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곳은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 그러던 중 모란당 주인 상우(최성민)가 용역깡패들에게 폭행당하자 동생 상혁(김정훈)이 가게를 찾아오고, 이들은 힘을 함쳐 모란당을 지켜내기로 한다...’

일본 제작사와 감독, 한국 스태프와 만든 영화 ‘까페서울’(타케 마사하루 연출, 2001년)은 뜰안에서 촬영되었다. 영화가 흥행에는 재미를 못 봤지만, 뜰안을 알리는 효자노릇은 톡톡히 했다. 한류스타 김정훈의 일본 팬들은 이곳에 오기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자 지금은 미국, 유럽, 중국, 태국 등지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단골 면면도 쟁쟁하다. 로버트 쾰러 서울셀렉션 편집장을 비롯해서 NHK방송국 전PD이자 현재는 작가로 활동 중인 다고 기치로도 이곳의 오랜 단골이다. 그는 본인의 책을 통해 한국미를 강조하며 뜰안을 소개했다. 40년 넘게 한국의 사진을 찍어온 사진작가 후지모토 다쿠미 역시 5년째 이곳을 찾는다.

주머니도 꽤 두둑해졌을 텐데 직원도 두지 않는 구두쇠라고 놀리자, 김 대표는 손사레를 치며 뜰안을 연 이유에 대해 설명해줬다.

 

“찻잔을 비우고 나면 자연히 알 수 있습니다(웃음). 이곳에 오는 외국인에게 ‘한숨 돌리고 잠깐 쉬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말을 차향에 담고 싶었습니다.”

투박한 찻잔에 담긴 미숫가루가 비워질 무렵, 인터뷰는 끝이 났다. 분명 냉차(冷茶)가 든 잔을 비웠지만 찬 기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글로벌 코리아’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것은 뭘까. ‘초거대기업’, ‘스마트폰’, ‘반도체’, ‘반기문’, ‘싸이’ 등을 떠올린다면 절반만 맞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골목 어귀에, 규모에 상관없이 작지만 나름의 글로벌리즘이 분명 존재한다. 뜰안은 한국의 미(美)와 맛(咩)으로 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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