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북촌기행 '우리집'에 가다
[취재수첩] 북촌기행 '우리집'에 가다
  • 김양균 기자
  • 승인 2013.09.05 2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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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갔다.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오분 여를 걷자, 눈앞에 북촌이 펼쳐졌다. 전통한옥과 현대식 커피전문점이 즐비한 북촌 거리는 평일 낮 시간임에도 관광객으로 인산인해였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의 율곡로와 삼청공원으로 둘러싸인 가회동, 계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팔판동 일대를 말한다. 한옥이 몰려있어 해외 여행객들의 필수 코스이자 서울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이에 서울시도 북촌의 경제성과 가치를 인정, 역사문화미관지구 지정했다.

관광객이 늘자 전통한옥체험관, 커피전문점, 식장, 기념품 판매점 등도 빼곡히 들어섰다. 상권이 형성되고 돈이 풀리면 북촌 사람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할 법 한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늘어난 소음, 오물, 범죄에 전통적인 북촌 거주민들이 몸살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우후죽순 들어선 현대식 건물이 한옥 마을만의 고유한 미관을 해치자, 일각에서는 이곳이 점차 국적불명의 거리가 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계동에 위치한 한옥체험관 우리집은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으며 유명세를 치렀다. MBC스페셜 ‘한옥에 미치다’와 KBS의 ‘서울야곡’, ‘다큐멘터리 3일’, ‘아침마당’, TV조선의 ‘북촌별곡’ 등을 통해 소개되며 우리집을 찾는 이도 늘어났다.

북촌문화센터 옆에 위치한 식당을 가로질러가자 오른쪽에 작은 골목이 이어졌다. 그 골목 끝에 황토로 정성스럽게 칠해진 우리집이 있었다. 고즈넉한 대문을 열면 사랑채, 별채, 안채가 앉아있는데 별채는 북촌에서도 유일하게 아궁이와 구들이 남아있다.

장인 신영훈 씨가 전통방식 그대로 재현한 벽지도 명물이다. 한지를 여러 겹 겹쳐 바르고 말리는데 인고(忍苦)의 시간과 정성이 들었다. 2002년부터 우리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인숙 씨는 때마침 출타 중이었다. 기자를 맞이한 사람은 박 씨의 시어머니. 북촌의 타 한옥체험관과 달리 박 씨 가족이 안채에서 거주하고 있다. 기자의 눈에 비친 첫인상은 시골집의 정경, 그 자체였다.

 

박 씨는 북촌 주민단체 ‘한옥을 사랑하는 주민들 모임(한사모)’의 회장으로 수년간 활동해왔다. 한사모와 도시시민연대 주최로 개최되는 ‘북촌문화의 날’ 행사도 매년 앞마당에서 열린다. 박 씨를 기다리는 동안 구석구석을 둘러봤는데, 요즘은 보기 드문 ㅁ자 형태로 되어있었다. 추정컨대 지어진지는 100여 년.

오래된 대문을 들어서면 이어지는 짧은 복도에는 기와를 쌓아 만든 작은 화단이 보인다. 별채와 앞마당으로 연결된 두 개의 나무문은 소박한 한옥의 정취를 더해준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상추와 고추를 심은 작은 텃밭이 보였다. 텃밭에는 예의 항아리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물어보니 아침·저녁으로 깨끗이 항아리를 닦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투숙객은 사랑채에 있는 방 세 개에서 묵는다. 우리집은 현재 서울시 소유로 박 씨도 임대료를 내고 있는 처지다. “백년 넘은 한옥이라 변형이 불가능합니다. 보존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보수 공사를 할 수는 없지만, 에어컨은 달았어요. 쉬려고 온 분들이 너무 더워하니까 죄송스러워서...” 박 씨는 말끝을 흐리며 미안해했다.

우리집에 얽힌 사연은 박 씨의 가족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집 한편에 남는 방을 열어두며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랬던 게 주변에 알려지고 손님도 늘어나면서 일이 커진 것이죠. 무엇보다 가족에게 미안했어요. 프라이버시 문제가 생겼던 겁니다. 아이들이 한참 사춘기를 겪을 때 그 불평이란 정말 말도 못했죠.” 박 씨는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행사라도 한번 치르려면 식구가 전부 달라붙었죠. 이제는 다들 힘에 부처해서 일과 가정은 분리하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집을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박 씨는 ‘어울리며 사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호텔처럼 반짝이고 천장이 높은 숙소를 찾는 분들도 더러 계십니다. 일본에서 온 할아버지 한분은 버럭 화를 내기도 했어요.”

그는 말을 끊더니 별안간 사랑방 문을 반쯤 열었다. “저기 보세요. 방문만 열면 북적대며 식사를 하고 부대끼며 사는 모습이 보이죠? 이곳을 찾는 손님은 관객이고 저 곳은 연극 무대나 마찬가지에요.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집 만의 매력이 아닐까요?” 박 씨가 가리킨 곳은 그의 가족이 사는 안채. 때마침 그의 시어머니가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우리집을 통해 가까워진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손님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고 그 친구의 친구가 다시 박 씨와 가까워졌다. “한 가족처럼 애틋해요. 저희를 찾아오는 사람과의 좋은 만남, 새로운 관계가 이어지는 그 맛 때문에 계속 우리집을 지키게 됩니다.”

그의 일본인 친구는 우리집이 유명세를 타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제게 그러더군요. 일본에서 일부러 이곳을 찾아오는 것은 바로 제 가족을 보기 위해서라더군요. 아끼는 곳이라 숨겨두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박 씨의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들고 나온 낡은 앨범에는 전통혼례와 전통 돌 사진이 있었다. 그는 사진을 짚어가며 이야기했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보존은 우리집이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전통혼례와 돌상 같은 행사를 치루는 것도 그 일환이고요.”

일본밴드 ‘곱창전골’등의 공연도 앞마당에서 벌어졌다. “많은 잔치를 우리집에서 벌였습니다. 사람들이 기뻐할 때 저도 덩달아 즐거워졌어요.” 행사 비용을 따져보면 많은 돈을 벌었을 법도 한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돈은 생각안하고 행사를 치렀어요.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이제부터는 사업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려고 합니다.” 10월에서 3월까지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여행상품을 추진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집을 찾도록 안채도 전부 비운다는 계획이다.

사랑방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대청마루에서 끝이 났다. 박 씨는 한옥에 대한 본인만의 철학을 밝혔다.

“한옥은 몸을 낮춰야 합니다. 자세를 낮춰야 살 수 있어요. 겸손해야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한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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