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7번국도 아이’] 울진, 67년 겨울에서 봄(2)
[특별연재 ‘7번국도 아이’] 울진, 67년 겨울에서 봄(2)
  • 김전한<작가·동아방송대 겸임교수>
  • 승인 2013.10.24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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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었다.

청송 큰집의 할머니는 악몽을 꾸시고 울진으로 달려오셨다. 모정의 힘은 그 사건을 미리 예감하셨다. 67년 겨울, 읍내 병원은 대박이 터졌다. 개천가에 있던 그 병원.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거린다. 여섯 살의 나는 누릿한 피비린내가 무엇인지를 처음 만났다.

읍내에서 몇 십리 떨어진 가파른 산길에서 버스가 굴렀다. 정원초가, 빽빽하게 심겨진 승객들 중 반 이상이 사망하였다. 살아남은 이들도 모두 중상이었던 한국교통사고 백서에 기록되는 사건이었다.

소식을 접한 우리 가족도 병원으로 달려갔다. 언덕 받이에 있었던 집에서 병원으로 달려가는데 마침, 울진천변에 헬기가 한대 착륙하고 있었다. 달려가면서 난 아버지의 사고보다는 천변으로 내려오는 헬리콥터의 그 비장함에 맘이 뺏겼다. 아, 무시무시하고 겁나게 힘 좋은 놈이구나. 천변에 늘린 온갖 쓰레기 잡동사니들이 프로펠러의 바람에 밀려 일제히 공중으로 떠 오르던 그 풍경. (훗날 '아내애인만나다' 라는 시나리오에 헬기풍경은 재현되어 살아났다)

피범벅이 된 아버지의 빠이로 코트가 아버지 대신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달여 뒤, 얼굴형태가 삐뚤해진 반신불수의 아버지는 리어카에 실려서 집으로 오셨다. 봄이 시작되었다.
 
여섯 살의 내게는 찬란한 봄이었다. 내 인생에서 몇 안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봄이었다.아버지는 링거액과 과일즙으로만 연명을 하셨다. 집 뒤켠에는 링거병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넉넉하게 둥글고 투명하게 빛나는 링거병들이 쌓여갈 때 마다 곡간을 채우는 대지주의 심정을 닮아갔다.

링거병 용도는 다양하였다. 냇가에 송사리 잡으러 나가면 아이들은 모두 나의 링거병을 부러워했다. 링거병에 송사리를 넣으면 그 놈은 두 배로 확대되어 보인다. 그것은 수족관으로도 쓰였고 물병으로도 사용되었으면 이런저런 장난감으로도 활용되었다. 집 뒤켠에 잔뜩 쌓인 링거병을 노리는 아이들 마저 생겨났다. 난 그것을 모두 창고로 옮겼다.

아이들은 내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맘에 드는 아이에겐 큰 인심 쓰듯 링거병을 하나쯤 내어주었다. 아버지의 영양보충을 위하여 어머니는 닭을 자주 잡았다. 닭 잡을때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배 속에 든 노른자는 내끼라예’를 쫑알거렸다.

집에는 과일이 넘쳐났고 문병 온 손님들은 내게 과자나 일원짜리 동전을 쥐어주곤 했다. 집안은 늘 분주하였다. 게다가 그리운 할머니까지 집으로 와 계셨다. 뭔가 축제 같았다. 봄은 건너가고 여름이 다가왔다. 아버지는 조금씩 움직였고, 손님들의 발길은 끊어졌다. 축제가 끝나가고 있었다. 언덕위에 올라가 읍내를 벗어나는 버스를 구경하였다. 옷 보따리 머리에 이고,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장삿길을 떠났다. 저녁이 되면 읍내로 버스가 들어오고 어머니는 무사히 돌아오곤 하였다. 축제를 기다리는 아이는 별일 없이 들락거리는 버스가 원망스러웠다.

훗날 아버지는 가끔 그 순간을 회상하곤 하셨다.

“빠스가 산길을 몇 번이나 굴렀는기라....빠이로 오바로  머리부터 감쌌다 아이가. 시간 참 길데에...한 몇 년 굴러가는거 같은기라..그라다가 꽝 하는데 덜컥, 빠스가 멈춘기라. 오바에서 머리를 빼보이 턱 아래가 축축한거 아이가, 턱이 쩍 갈라져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기라, 에라이 모르겠다 심정으로 떨어진 조각을 얼굴에 다시 붙였는기라. 아픈줄도 모르겠더라."

"그란데에 눈앞에서 차장처녀가 나를 빤히 보는기라. 그 차장처녀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라. 아저씨예 아저씨예 저 좀 살리주이소예...하는기라...손을 뻗치려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기라. 그 처자 눈을 감으면서도 아저씨예...아저씨예 그러는기라...낸중에 사망자명단 보이, 차장처자가 들어가 있더래이, 강구어디 처자라 하던데...평생 잘 안 잊혀지더라이. 몸 따로 마음 따로가 그런건가. 마음은 살려볼라꼬 생똥을 싸는데도 몸이 꼼짝을 안는기라. 죽어서 지발 좋은데 갔었으면 좋을텐데. 그 처자 다시 태어나면 나한테 다른 인연으로라도 왔음 좋겠는데이...빚진 마음 갚을 수 있어야 할텐데...”

그 후 아버지는 사설 일기예보 기상대가 되었다. 날씨가 흐려지면 온몸을 꼼짝하지 못한다. 다음날 내릴 강우량을 얼추 맞추기 까지 하였다. 그 사고 후유증으로 늘 신경통에 고생하셨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앉혀놓고는 그때 그 지옥속의 사랑 얘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아주 짧은 순간 지옥에서 만났던 사랑이야기. 그러나 아들은 그해 봄이 가장 풍요롭고 축제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까? 그해 봄 1967년 겨울에서 봄까지의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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