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7번국도 아이’] 목격자(5)
[특별연재 ‘7번국도 아이’] 목격자(5)
  • 김전한<작가·동아방송대 겸임교수>
  • 승인 2013.11.28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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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huckChuck Factory

 

비빔밥을 먹을 때 마다 난 각설이가 연상이 된다. 아침마다 대문 앞에서 깡통 두드리며 밥 달라고 소리치던 70년대 각설이. 그 구걸 깡통 안에는 밥과 반찬들이 뒤섞여 있어서 어린 맘에, 하아 고것 참 맛 있겠다고 생각 했던 적이 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살았던 그 동네엔 걸인들이 많았다.

동네엔 벽돌공장이 있어서 지천으로 쌓여진 모래 산에서 우린 놀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내 또래의 거지아이가 동네를 배회했었다. 한번은 큰 맘 먹고 리어카 찐빵점에서 찐빵을 훔쳐서 그 아이에게 가져갔다. 아이는 찐빵을 모래에 찍어 먹으려 해서 화들짝 놀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아이는 소아 정신 질환이었던 게 분명하였다.

어느 날 새벽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깼다. 대문을 열고나가 골목에다 오줌을 누려는데 담벼락에 불룩한 가마니가 있었다. 오줌을 누면서도 내내 저게 뭐지? 뭘까? 갸웃거리고 있는데 골목으로 모래 실은 덤프트럭이 덜덜덜 거리며 지나갔다. 육중한 트럭은 가마니를 간단하게 짓밟으며 천천히 나아갔다.

뿌지직, 단단한 바가지 부서지는 소리 생생하게 들려왔다. 하늘은 푸른 여명으로 밝아오고 있었다. 트럭이 지나가고 난 뒤, 가마니 안에서 하얀 물이 스르르 스며 나왔다. 이어서 붉은 핏물이 강을 이루었고 난 그 핏물위에다 오줌을 누고 있었다. 난 잠에서 덜 깨었다고 확신했다. 이건 꿈 일거라고 생각했다. 놀라움의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몽유환자처럼 태연스레 오줌을 다 누고 고추에 남은 오줌 방울까지 탁탁 털어 버렸다. 나의 신발 밑으로 핏물이 흘러갔다. 방으로 발길 옮기는데 신발바닥에 끈적한게 들러붙은 느낌이었다. 나는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리곤 이내 잠이 들었다.

아침, 대문 밖은 소란스러웠다. 잠에선 깨어났지만 한참동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경찰이 오고 사람들은 혀를 찼다. 그 어린 거지 아이는 한 뭉텅이의 오물조각이 되어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세수를 하였고 과묵하게 밥을 먹었고 꼼꼼하게 가방을 챙겼고 그리고 등교를 하였다.

초여름의 화창한 아침 길은 어제나 다름없었다. 몸은 움직여지는데 입이 열리지가 않았다. 학교 가는 길 파출소가 보였다. 문득 발길이 멈춰졌고 내 발아래 신발엔 피 자욱이 선명하게 묻어있었다. 나는 파출소로 들어갔고 소리죽여 울기 시작하였다. 순경은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목격자 확보 했심다아!”

잠시 후 지프차가 오고 나는 어딘가로 실려 갔다. 그 어둑한 복도. 내가 본 풍경들을 자세하게 증언을 하고 누군가는 받아 적었다. 겁에 질린 덤프트럭 운전사도 이미 잡혀와 있었다. 그 아저씨의 겁먹은 눈빛은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마치 저 사람을 고발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지프차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다음날  지프차는 또다시 와서 어둡고 긴 복도가 있던 그곳으로 데려갔고 반복된 질문만 했다. 지프차는 나를 데려다 주다가 명덕 로터리 그 어디쯤에서 짜장면을 사 주었다. 나는 짜장면을 맛나게 먹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프차에 실려 다니다가 어느 날 지프차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나는 서운해졌다. 왜 오지 않을까? 짜장면도 먹고 싶은데. 그리고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잘난 척을 시작하였다.

“니들 목격자가 뭔 줄 아나?”
“.............”
“목격자란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잡고 있는 중요한 인물인기라.”

나는 어느새 죽은 아이는 잊고 지프차와 짜장면이 그리웠고 목격자라는 단어를 알았다는데 열광하고 있었다. 뭔가 내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는 환상도 있었다. 아이는 내 기억에서 차츰 잊혀져 갔다.

몇 년이 지나고 청송 큰집에 갔다(여기서의 큰집이란 교도소가 아닌 큰아버지 댁이라는 뜻이다. 나의 큰집은 실제로 청송에 있다) 새벽녘 오줌 마려워 잠에서 깼다. 변소 가기 귀찮아서 마루위에서 오줌을 갈기는데 고욤나무  한그루가 달빛에 흔들리고 있었다. 손톱만한 고욤나무 열매들이 오종종 달려 있는게 또렷이 보였다. 수도 없이 오종종 매달린 고욤열매들이 모두가 그 아이로 착시되었다. 얼른 방으로 들어와 누웠는데 몇 년 만에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아이야 얼추 40여년이 지나서야 이제 너를 다시 기억 하는구나. 아이야 죄 없는 영혼만이 머문다는 천상의 땅이 있다던데 아이야 넌 그곳으로 갔겠지. 아이야 환생하여 이 지상으로 다시 왔다면 내 주변 어딘가에 있는 거니? 다시 이곳으로 왔다면 아이야, 내가 바로 그 아이였어 라고 내게 말 건네주렴. 아이야 아이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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