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36] 김치를 중국어로 辛奇라 이름 짓지 말자
[삼강만평(三江漫評)-36] 김치를 중국어로 辛奇라 이름 짓지 말자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3.12.12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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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0~300년 전 중국어의 기, 키, 히 음이 북경 음에서 구개음화하여 지, 치, 시로 변했고 -ㅁ받침이 -ㄴ받침으로(三: 삼→산) 변하였다. 이것이 근대중국어가 현대중국어로 변한 중요한 표징의 하나이다. 중국 표준어음(북경 음)에 ‘김’이나 그와 유사한 음이 없다. 그러므로 ‘김치’의 중국 이름을 음역하기 아주 어렵다.

그 사이 ‘泡菜(파우차이)’라 불렀는데 문제점이 있다. 논리학적으로 볼 때 ‘담근 채소’라는 뜻인 파우차이가 나타내는 개념의 외연이 너무 넓다. 화장실을 환경보호시설이라 이름 짓거나 신발을 교통도구라 이름 짓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중국에도 파우차이라 부르는 음식이 있다. 이를테면 사천 음식에 파우차이가 있으며 무를 절여 발효한, 고추를 넣어서인지 약간 분홍색이 나는 음식이다. 사천뿐만 아니라 중국의 기타 지역에도 파우차이라 부르는 음식이 많을 듯하다.

최근 한국농림수산부가 김치를 중국어 ‘신기 辛奇(신치)’로 이름 지었지만 역시 잘 지은 이름이 아니다. 아마 ‘맵고도 신기한’ 음식이라는 취지겠지만 현대중국어에서 ‘辛’은 ‘맵다’는 뜻이 아니다.

‘맵다’를 ‘랄辣(라là)’라고 하며 그러므로 중국인은 김치를 랄백채(辣白菜)라고도 한다. 그러나 신백채라고 하지는 않는다. ‘辛’은 고생하다, 수고하다의 뜻이다. 신치라는 단어에 억지로 뜻을 부여하자면 ‘기특하게 수고하다’, ‘대단한 수고’, ‘수고가 기특하다’ 등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다.

설사 ‘辛’의 ‘맵다’는 뜻이 잘 전달된다고 해도 김치의 이름으로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지역은 서남쪽의 사천, 운남, 귀주, 호남 등 몇 개 성의 사람들인데 대부분 극빈지역이다. 비싼 한국 김치를 많이 사먹을, 돈 많은 동남연해 지역의 사람은 매운 음식을 아주 싫어하고 기타 지역도 먹을 수는 있지만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한국에서 고추를 어떻게 개발해서인지 사실 김치는 매운 음식과 맵지 않은 음식 중간에 있다. 김치 이름 자체에 맵다는 뜻을 구태여 강조할 필요는 없다. 필자는 매워서 안 먹겠다고 우기는 중국인에게 항상 “먹어보아라, 그리 맵지 않다”라며 설득하곤 한다.

중국의 방언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치’한 글자만은 김치의 ‘치’와 음이 같지 않느냐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奇치’는 북경, 동북 등 지역의 발음이고 치를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 ‘기·키’로 발음한다. 아마 ‘기·키’로 발음하는 인구가 ‘치’로 발음하는 인구의 몇 배는 될 것이다. 결국은 ‘신치’와 ‘김치’는 의미나 발음이나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이 된다.

필자는 ‘沉菜 침채(천차이)’라는 이름도 된다고 본다.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침채가 김치의 어원이고 조선시대 문헌에서 김치를 침채라고 하였다. 침채의 고대발음 딤치이다. 지금 평안도 방언에서 ‘김치 담그다’를 ‘딤장’이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상도, 함경도에서 짐장이라 하는 것도 다 침장의 한자어음이다.

이 딤치가 구개음화하여 짐치로 됐다가, 또 같은 치음(ㅈ·ㅊ)이 이화 현상이 일어나 ‘짐치→김치’로 변하였다. 한국 김치냉장고 유명 브랜드 ‘딤채’는 바로 침채의 고대 음이다. 중국에서 이미 사라진지 수백 년이 되는 말을 한국에서는 지금도 쓰고 있구나 하며 문헌을 좀 아는 중국 지식인들이 한국의 유서 깊은 문화에 감탄할 것이다. 또한 ‘담근 음식’이라는 뜻이 지금도 어느 정도 살아 있다.

‘金菜 김채(진차이)’도 될 듯하다. ‘뭐 대단해서 “金”자까지 붙이나’하면 ‘김치의 한국음을 그대로 옮겼다’라고 해석하면 된다. 또 중국에는 음식이름을 과장 표현하는 문화가 있다. 이를테면 식당 메뉴에 닭의 발을 鳳爪(봉황의 발)라 하듯이 말이다. 과장은 거짓말이 아니다.

침채건 김채건 다 썩 잘 지은 이름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신치보다는 낫다. ‘서울’의 중국이름 ‘漢城’을 ‘首爾’로 모색하고 고치는데 장장 10여 년이 걸렸다. 그런데 우리 겨레의 귀한 물질자산, 유네스코의 인류유형문화재로 등록이 된 김치를 서둘러 섣불리 ‘신치’라고 고쳐 부르며 심지어 중국에 상표등록까지 하고자 하는데 바람직한가? 사실 김치의 이름을 중국어로 어떻게 짓는가는 서울을 중국어로 어떻게 부르는가 보다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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