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우리유산 들어가기(I)
[과학문화유산] 우리유산 들어가기(I)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3.12.2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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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국립박물관을 볼 때마다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감명을 받곤 한다. 세계는 생각보다 넓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 바로 박물관이다. 전시된 유물들을 보면서, 이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세계를 압도할 만한 과학의 결정체인 문화유산이 한국에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필자는 우리 유산의 과학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은 우리들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우리 선조가 남긴 유산을 대할 때 자기 비하 의식과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이 앞선 문명과 뛰어난 과학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발견되기라도 하면 당연히 외국(주로 중국)에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과학의 눈으로 비추어보더라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모두 중국 등에서 전수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선입견 즉 스몰 콤플렉스(small complex)를 느끼게 만드는 기본 요소는 우리 조상들이 물려 준 것에는 과학성도 없고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이와 같이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제일 먼저 우리의 유산 중에서 제작 방법이라든가 작동 방법 등 과학적인 설명을 구체적으로 적은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술적인 내용일지라도 한자로 적은데다가 그림도 많지 않으므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것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둘째는 과학을 다루는 기본 단계에서부터 서양과 동양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과학의 발전에 제한을 받았다는 점이다. 현대 과학을 실질적으로 이끈 서양사의 맥락에서 볼 때 의학의 혁명은 보통 윌리엄 하비(1576〜1657)가 혈액의 순환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건을 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심장을 자세히 관찰 한 후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1. 심장이 이완할 때 크기가 가장 크고 이때 가슴을 쳐서 박동을 느낄 수 있다.
2. 심장을 손에 놓고 만져보면 심장이 수축할 때 더 딱딱한데 이는 근육이 긴장해서다. 그리고 심장이 움직이면 창백한 빛깔을 띠고 정지하면 선홍색으로 바뀐다.

하비는 자신의 관찰을 근거로 심장이 수축할 때 벽이 두꺼워 지고 심신을 작아져 피가 방출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심장이 주로 하는 일은 피를 끌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수축하면서 피를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었다. 이어서 동맥을 관찰한 하비는 동맥의 팽창과 심장의 수축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발견한 후 심장이 수축하면서 동맥에 피가 공급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비는 죽은 사람의 심장을 해부해서 심장에 약 3/4㎗(작은 컵 한잔 분량)의 피가 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심장은 수축할 때마다 70㎤의 피를 몸으로 밀어 보내며 1분에 보통 70번에서 80번 박동한다. 이를 단순 계산법으로 적용하면 1분에 5ℓ의 피, 1시간에 300ℓ가 넘는 피를 내보낸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수치는 성인 남자 몸무게의 2배에 해당하는 양으로 인간의 몸이 이렇게 많은 피를 매일 생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실을 근거로 하비는 피가 연속적으로 순환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1600년대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가장 흥미롭고 빠르게 발전한 기술은 펌프였다. 따라서 혈액의 순환에 대해 연구하던 하비가 동물의 심장을 당시 광산에서 사용하던 펌프와 같다고 생각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체란 다름 아닌 펌프로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일종의 기계 장치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기계가 고장이 나면 고장 난 부분만 고치면 된다. 보다 철저한 치료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을 절개하고 장기 관찰을 통하여 어느 부분이 고장 났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차후에 같은 병을 앓는 병자를 치료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서양의 현대 의학은 바로 이런 전제 아래 크게 발달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각종 질병은 인체를 보다 정확히 파악한 후 과학이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약품을 사용하면 치료가 된다고 생각했다. 질병의 원인을 국소적인 것으로 생각하였으므로 치료제도 질병이 있는 부분에만 적합한 것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한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엉뚱하게 다른 질병에 걸릴 위험성이 항상 존재했다.

반면에 전통 한의학은 인간을 기계로 보지 않고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기(氣)를 중요시하여 기가 빠진 사람은 비록 살아 있다 해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특히 죽은 사람은 기가 빠진 사람이므로 기가 빠진 사람의 육체는 기가 충만한 사람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장기도 죽은 사람의 것과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 다르다고 본다. 동양 의학으로 볼 때 죽은 사람을 절개하고 해부하여 장기를 들여다본들 그곳에서 얻는 지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동양 의학은 서양처럼 자연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에 가치를 두기보다 자연에 동화되고 순응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냇물이 흘러 강물이 되고 강물이 흘러서 바다로 가듯이 우리 인체도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이 소화기를 거치고 다시 장을 거쳐 항문으로 배출되는 순차적인 과정이 잘 이루어지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고 여겼다. 더구나 경험을 중요시하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한 것이 한의학으로, 조화를 제일로 중시했다. 우주를 음양오행의 원리로 파악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몸을 작은 우주로 보아 음양의 편차가 없이 균등할 때 건강하다고 보았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조화를 이룰 때 인체가 건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동양 의학이 좋으냐 서양의학이 더 좋으냐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출발점이 의학처럼 다른 분야에서도 동양과 서양이 달랐다는 점이다. 서양에서 하나하나의 물건을 개발하면서 부속품을 갈아 끼우는 개념을 기본으로 했는데 동양에서는 물질적인 것 보다는 정신적인 면을 앞세웠다. ‘세계 3대 발명(종이, 화약, 나침반)’을 먼저 개발했음에도 후발주자인 서양이 총칼과 선박을 만들어 세계를 정복하려는 공세를 정신적인 면을 앞세워 기술개발을 뒤로 한 동양이 대항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점을 한국에 국한시킬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한국을 포함한 동양의 과학이 근대로 들어와서 서양보다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셋째는 많은 자료들이 그동안의 전란이나 관리 소홀로 거의 파손되거나 멸실되었다는 점이다. 기록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선조들이지만 전란이라는 악재 앞에 귀중한 자료라 하여 일일이 챙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들이 다룰 수 있는 유산은 현재 우리들이 볼 수 있는 한정된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넷째는 위정자들이 필요에 의해 고의적으로 자료를 파괴하거나 훼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 정부를 세운 조선 왕조는 이성계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다소 놀라운 일이지만 세종, 정조 때 많은 자료들을 파괴했다. 또한 36년 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조직적으로 왜곡시킨 것은 물론 중요한 유산들을 파괴하거나 훼손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직도 일제 강점기의 잔재들이 우리의 문헌이나 자료에 남아 있어 당초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것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다.

다섯 째는 전통적으로 한국인에게 뿌리 깊게 내려오고 있는 조상과 스승에 대한 숭배사상이다. 과학을 비롯하여 새로운 학문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것이 기본인데도 불구하고 스승의 이론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 스승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는 것이 순리요 도리라고 보았다. 철저한 유교 관념과 스승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유산을 보는 기본 생각이 다른 학문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유산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한 것은 아무래도 경제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보릿고개란 말이 사라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은 먹기 살기도 바쁜 터에 우리 것에 대한 과학성을 규명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르테논, 스페인의 아람브라 궁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들은 물론 소소한 과학적 기구들이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유는 유산 자체가 우수한 이유도 있지만 과거부터 수많은 연구가들에 의해 장단점이 분석된 자료가 워낙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것에 대한 기술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외국 것에 대한 정보가 가감 없이 곧바로 유입되었으므로 외국 것이 우리 것보다 더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잘 알려져 있는 유산을 놓고, 외국인들이 과연 어떠한 점이 다른 국가들의 유산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가를 한두 마디로 콕 집어서 설명해달라고 할 때면 무척 당황스러웠다. 과학적 사고로 무장된 그들은 무엇이든 그 근거를 꼬치꼬치 캐묻는다. 아름답다거나 국민의 정서가 깃든 우리나라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에는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 유산 속에 숨어 있는 과학적 측면을 설명하면 그들도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다.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진입하자 세계의 유명 관광지에는 한국인들로 홍수를 이룬다. 이탈리아 로마나 프랑스의 파리에는 한글로 된 관광 안내 책자가 나와 있을 정도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만큼 우리 것과 외국 것을 비교할 기회가 많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자랑스러운 유산들이 외국의 유산에 비해 상당히 과장되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실토한다. 우선 우리나라 유산들의 규모에 대해 불평한다. 외국의 유물들과 비교하여 너무나 왜소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천 년 전에 지어진 건물도 변변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이집트의 기자 지역 피라미드는 4,500년 전,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2천 년이 넘었고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등을 비롯한 고대 유적 모두가 한국에서 삼국이 세워지기 전에 만들어졌으며 프랑스 파리의 경우 전 도시가 예술작품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에 이르면 우리 것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자랑했던 것이 창피하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빠짐없이 우리 조상들을 욕한다. 그 동안 변변히 세계를 향해 큰소리 쳐보지도 못한 것은 물론 항상 강대국에 침략 당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왜구라고 경멸하던 일본에게 한반도를 침략 당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남겨준 것은 모욕적인 역사밖에 없다고 비평한다. 그런 선조들이 만든 유산이 신통한 것이 정말 있을 것이며 설사 있었더라도 우리의 유산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유산과 예술이 현존하는 것이 정말로 있느냐고 반문하기까지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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