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38] 객가인
[삼강만평(三江漫評)-38] 객가인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4.01.1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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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화경제권을 운운하며 ‘객가인’(客家人)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객가인은 중국 하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원지역의 한족이 장강 이남, 심지어 해외로 이민하여 형성된 특정적인 인간의 집합체이다.

약 2천여 년 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때 남방은 ‘백월’이라 일컫는 소수민족의 거주지였다.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진시황은 50만 대군을 그곳에 주둔시켰는데 후에 그들은 현지 민과 융합돼 최초의 객가인이다.

동한 말년 황건 농민봉기 때, 삼국 위·촉·오의 분쟁 때, 서진 말년 ‘오호란화’와 ‘팔왕지란’ 때, 311년 ‘영가지란’으로 흉노가 낙양을 함락하여 서진이 수도를 건강으로 옮길 때… 약 100만 명의 중원 인이 전란을 피해 남방으로 이민하였다. 이것이 두 번째 객가인이다.

당 말 황소농민 봉기와 번진의 할거 통치에 못 이겨 중원의 백성들이 대거 남방으로 이민하였다. 남송 말년 몽고 기병이 중국 대지를 석권할 때 남송 황실은 복건과 광동으로 전전하였으며 장강 연안의 객가인도 더 남하하였다.

명나라 때 객가인의 거주지인 복건·광동·강서 교차지의 경제가 발전하고 인구가 늘어났지만 산지인 데다가 경작지가 부족하였다. 청나라 때는 국가의 주도로 객가인을 더 남쪽으로 이민시켰다. 지금의 주강 삼각주 및 홍콩의 객가인은 이때 형성된 것이다.

광동 서부 대산, 개평 등 지역은 인구의 팽창으로 객가인과 현지민 간의 모순이 심각해졌다. 1856년에는 대규모의 격투가 폭발되었으며 12년 간 지속되었다. 청은 해결할 방법이 없어 정부 비용으로 이 일대의 객가인을 더 남쪽으로 이민시켰다. 지금 광동, 광서의 최남단 및 해남성 등지의 객가인은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객가인은 실향민들이므로 대부분 자연 조건이 열악하고 인연이 희박한 곳에 정착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해외로 이민 간 중국인 중 객가인이 가장 많으며 약 1/3을 차지한다.

객가인의 분포지역은 어떠하며 총 인구는 얼마나 되는가? 강서, 복건, 광동, 호남, 광서, 사천, 중경, 해남, 귀주, 대만, 홍콩, 마카오 등 12개 성, 직할시 및 특별행정구역에 약 5천810만인이 분포돼 있다. 그리고 해외에 약 700만인의 객가인 화교·화인이 있다. 객가인의 총 인구수는 약 6천510만이다.

‘기자 동래 설’은 상이 망할 때 많은 중원 인들이 한반도로 피난 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한반도 남방에 있은 진한, 마한, 변한 세 나라 중 진한은 진의 폭정에 못 이겨 피난 온 중원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집중 거주하며 같은 언어, 문화 및 풍속을 지키지 못하고 한민족에 완전히 동화돼 버렸기 때문에 객가인이라고 할 수 없다.

남방에 피난 간 중원 사람들은 집중 거주한다. 객가인이 총인구의 90%이상을 차지하는 현만도 33개나 된다. 그들은 서족을 주요로 하는 토착 민족과 서서히 융합되면서 자기의 언어, 문화 및 풍속을 고수하여 왔다.

그들은 중국어 8대 방언 중의 하나면서 북방 관화방언에 가장 접근하는 객가어를 쓴다. 광서 매현의 객가어를 공통어로 취급하고 있다. 이는 매현에 객가인이 가장 집중돼 있고 매현 객가인의 문화가 가장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로 이주한 객가인도 대부분 매현 사람이거나 매현을 경유해 나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중국의 객가어 방송은 모두 매현의 언어를 쓰고 있다.

객가인의 다른 한 특징은 가옥이다. 방루, 원루, 위옥 등으로 불리는데 확대된 토치카의 형태이다. 네 각에는 토치카가 설치돼 있고, 견고한 외벽에는 총구멍이 설치돼 있다. 이는 3세기 때 중원 대장원주의 가옥 형태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객가인은 아주 우수한 인간집단이다. 이는 아마 전란에 밀려 인간이 희소한, 가장 열악한 지역에 가서 생존투쟁을 한 데로부터 기인된 듯하다. 그들은 개척정신과 진취심이 강하고 각고분투에 앞장선다. 또한 문화와 교육을 숭상하고 나라와 향토를 사랑한다. 객가인의 이런 정신은 특히 해외에 가서 성공한 화교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객가인은 많은 탁월한 인물을 배출했다. 태평천국 수령 홍수전, 계몽사상가 황준헌, 위대한 민주혁명가 손중·요승지, 전 싱가포르 국가원수 리광요, 중공 원로 주덕, 중국 당대 문화의 기수 곽말약 등은 다 객가인이다. 객가인은 중화민족의 귀한 존재이며 중화문화의 찬란한 명주이다. 특히 해외 객가인은 중화문화권 및 중화경제권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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