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時論]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다
[전대열時論]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다
  • 전대열<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 승인 2014.01.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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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라고 말한 얼빠진 사람이 있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줄기차게 애국가를 부른다. 일부 극좌파들의 집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반도기로 대신하고 애국가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바꿔 부르는 일이 있긴 하지만 철부지 같은 치기다.

그들이 편안하게 살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 가사는 누가 지었을까. 작곡자는 안익태로 밝혀졌지만 작사자는 미상으로 나온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 가사는 구한말에 이미 세상에 태어났다는 설이 있으며 이 가사에 맞춰 안익태의 곡이 나온 것은 수십 년이 흘러간 후다.

그때까지는 외국곡 올드랭사인을 차용해 썼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이 곡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는 4절까지 있지만 이를 모두 외우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간단한 몇 구절 밖에 안 되고 수백 수천번을 부른 노래면서도 왜 4절까지 외우지 못할까. 그것은 평소 대부분의 행사에서 1절로 생략하기 때문이다.

시간관계로 4절까지 부르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고 아예 국민의례를 생략하겠다는 멘트도 자주 듣게 된다. 아무튼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국가(國歌)가 없는 나라는 없다. 우리 애국가도 4절까지 모두 부르면 상당히 길게 느껴지지만 미국이나 프랑스 국가는 힘차고 장중하면서도 매우 길다.

우리 애국가는 후렴구를 반복하기 때문에 4절까지 다 부르려면 지루한 느낌이 들 때가있다. 다만 오늘의 주제인 작사자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 1월17일자 6면에는 “윤치호 친필 추정 애국가 가사 발견”이라는 제하의 박스 기사가 크게 실렸다.

윤치호 사진과 그가 썼다는 붓글씨체의 애국가 가사 복사본도 게재되었다. 이를 밝힌 사람은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본부’를 대표하는 혜문스님이다. 그는 일본 등지에 있는 한국의 문화재를 되찾아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성과도 녹녹치 않아 많은 박수를 받는 스님이다.

문제는 윤치호의 글씨가 예전부터 알려져 있는 구문(舊聞)임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럽게 이를 기사화한 저의를 알 수 없다. 이 글씨는 미국 에머리대 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현재 부르고 있는 애국가와 대부분 똑같다. 다만 “하느님이 보우하사”를 “하나님이 보호하사”로 썼다.

하느님은 우리 민족이 예부터 불러오던 익숙한 이름이며 하나님은 기독교에서 부르는 유일신의 뜻을 가지고 있어 명백히 현재 우리 애국가 가사와는 다르다. 문제는 혜문스님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모두 알고 있는 구문을 새로운 발견인 양 내세우느냐에 있다.

혜문은 “윤치호가 친일 전력 때문에 애국가 작사자란 사실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애국가 작사자에 대해서 윤치호 말고 다른 이설(異說)이 없다면 어쩔 도리 없이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그러나 윤치호 외에도 몇 사람이 거론되고 있지만 안창호는 가장 유력한 작사자 후보다. 에머리대에 보관중인 윤치호 글씨는 1907년에 쓴 것인데 그때는 윤치호가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할 때여서 수긍되는 점이 있다.

다만 1907년에 이처럼 현재의 애국가와 거의 동일한 가사가 확정되어 있었느냐 하는 점은 크게 의문이다. 설에 따르면 가사의 내용은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바꿔진 것으로 알려졌다. 애국가의 원본격인 무궁화가는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수려 동반도는 우리 조국일세”로 되어 있었는데 안창호에 의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로 고쳐졌다고 전해진다.

“이 기상과 이맘으로 임금을 섬기며”도 “이 기상과 이맘으로 충성을 다하여”로 고쳤다. 이는 안창호 작사설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안창호와 윤치호는 동시대를 살아온 선구자들이었지만 안창호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로 일제에 체포되어 대전형무소에서 사실상 옥사를 했다.

반면 윤치호는 태평양전쟁 참여를 독려하고 그 공로로 일분 제국의회 귀족원의원을 지냈으며 광복 후 자결했다. 나는 이들의 상반된 항일과 친일 행위 때문에 안창호를 두둔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해임시정부에서 애국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때 윤치호는 이미 친일에 앞장서고 있을 때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임시정부가 친일분자가 작사한 애국가를 공식국가로 인정했겠는가. 그 외에도 안창호는 평소에 수많은 애국찬가를 작사하여 서동요나 파랑새처럼 민요로 부를 수 있도록 보급한 선각자였다.

120여 편 중에서 한국예술종합대 민병찬 교수는 42편은 확실하며 나머지는 더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발표했다. 안창호가 애국가를 자신이 지었다는 사실을 밝힌 사실도 있어 이를 증언하고 나선 사람은 19인이나 된다. 애국가 작사자는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식에서 안창호로 확정 발표하여 민족정기를 살려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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