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57]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아! 대한민국-57] 금동미륵반가사유상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4.01.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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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반가사유상은 석가모니가 태자시절, 나무 아래서 오른쪽 다리를 왼편 무릎 위에 올려놓고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을 담고 있는 불상이다. 일본 국보1호는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의 나무로 된 반가사유상인데, 이를 두고 철학자 야스퍼스는 “인간존재의 가장 청정(淸淨)하고 원만하며 영원한 사유(思惟)의 모습”이라고 했다.

일본학자들 중 일부는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이 반가사유상 역시 그 재료와 기법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단순화된 삼산보관 양식과 너그러운 이마전, 그리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입매에서 풍기는 담담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어질고 너그러운 한국인의 심성을 느끼는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2013년 10월,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열리는 ‘황금의 나라, 신라’ 전시회에 우여곡절 끝에 전시되었다. 이 반가사유상의 특색은 사색하는 부처님으로서의 깊고 맑은 정신적인 아름다움이 인체사실(人體寫實)의 원숙한 조각솜씨와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는데 있다.

미술사학자 최순우(崔淳雨)는 이 표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슬픈 얼굴인가 하고 보면 그리 슬픈 것 같아 보이지도 않고, 미소 짓고 계신가 하고 바라보면 준엄한 기운이 입가에 간신히 흐르는 미소를 누르고 있어서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을 뼈저리게 해주는 것이 이 부처님의 미덕이다.

인자스럽다, 슬프다, 너그럽다, 슬기롭다는 것들이 모여 하나의 화음을 빚어내고 있는 듯하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 금동반가사유상에 대해서 “앉은 자세지만 정적이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면서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모습”이라고 소개했다.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회고록에 의하면 일제 말, 혹시 폭격을 당할까 두려워, 총독부 박물관은 문화재 1000여 점을 경주와 부여박물관으로 옮겼는데, 특히 이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직원들이 정성스레 면(綿), 포(布)로 싸 업어서 옮겼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인 직원들이 지극하게 아끼고 보살폈던 문화재다.

일제강점기 도굴로 발견된 뒤, 태평양 전쟁과 6.25한국전쟁을 무사히 넘긴 이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한국의 미’를 알리고 전하는데 그 충분한 역할을 하면서 사유의 심오함을 서양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불상양식은 원래 불교의 본고장, 고대 인도에서 비롯되어서 중국에 들어오고, 그것이 다시 6세기경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6-7세기에 걸쳐서 이 반가사유상은 고대 한국인의 손으로 그 세련된 절정을 보이게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가사유상 하면 으레 한국의 삼국시대 작품을 꼽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작품이 국보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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