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時論] 광복군 합동묘소를 방치할 것인가
[전대열時論] 광복군 합동묘소를 방치할 것인가
  • 전대열<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 승인 2014.02.0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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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4월 27일 수유리 북한산 그늘에 세워진 무후(無後) 광복군 18위 합동묘소는 오늘도 처량하게 내리는 겨울 찬비를 맞으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석 정면에는 광복군 선열지묘라고 선명히 쓰여 있다. 비명에 따르면 ‘한국광복군동지회 건립’이라고 되어있지만 국가보훈처에서 국비를 투입하여 건립한 것이다. 묘역은 200평이다.

합동묘소 바로 위쪽으로는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쳐 중국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던 이시영선생의 묘소가 있고, 더 위로는 이준, 신익희, 김병로 아래로는 유림, 양일동, 김창숙, 서상일, 김도연, 신숙 선생 등 애국선열들의 묘소 16기가 자리 잡아 일대를 가리켜 애국선열묘역이라고 부른다.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민주성역 국립4.19민주묘지가 있어 광복과 혁명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이 함께 사시는 곳이다. 이곳 일우(一隅)를 차지한 광복군 합동묘소는 애국선열을 모신 곳으로는 너무나 초라하다.

1940년에서 1945년 광복이 되던 그날까지 왜적과 싸우며 태항산 전투 등에서 조국에 목숨을 던진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들이 어떻게 번영을 누릴 수 있었겠는가. 일본 정규군에 맞서 홍범도, 지청천,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은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대첩을 이뤘다.

이들 독립군 부대들을 모두 합쳐 정식으로 조선 광복군이 창립된 것은 1940년 9월 17일이다. 그동안 독립군들은 형편에 따라 북로군정서, 서로군정서 등으로 나뉘어 각자의 역량 껏 싸웠으나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옮긴 이후 이를 통합시켜 효과적인 전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광복군총사령부가 발족한 것이다.

중경 임시정부는 진주만을 폭격하여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이 된 일본에 대항하여 선전포고를 했으며 미군과 합동으로 한반도에 상륙하기 위한 OSS 부대의 선봉을 맡았다.

이 부대에는 학병을 탈출한 장준하, 김준엽, 노승서 등이 가담하여 엘리트 청년 장교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들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에 놀라 무조건 항복을 한 일본 때문에 연합군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상륙작전을 감행하지 못한 것은 천추의 한이다. 더구나 이로 인하여 미,소의 38선 나눠긋기에 조국이 양단되는 이중 불행을 겪어야 했으니 광북군의 대성통곡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광복군은 일본 관동군과 싸우다가 무수히 죽어야 했다. 수유리 합동묘소에 묻힌 18위는 그나마 동료들이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가 광복 후 귀국하면서 봉안하여 왔다.

유가족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나 후손이 나타나지 않는 18위는 광복 22년이 흘러간 후에야 합동묘소로 겨우 음택(陰宅)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에서 김천성(金天成)은 나중에 유족이 나타나 1975년 8월 8일 국립묘지로 이장했고, 김찬원(金贊元), 문학준(文學俊), 정상섭(鄭相燮), 김운백(金雲白), 김성률(金成律), 안일용(安一勇), 전일묵(田一黙), 현이평(玄以平), 김유신(金有信), 백정현(白正鉉), 이해순(李海淳), 이한기(李漢基), 한휘(韓輝), 한성수(韓聖洙), 김순근(金順根)과 19785년 7월30일 이도순(李道淳), 동방석(董邦石), 1981년 6월10일 조대균(趙大均)이 추가 봉안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성수는 건립 당시 비석에 이름이 들어있으나 나중에 보훈처에서 세운 안내표지에는 빠져있어 갈피를 못 잡게 한다. 표지판에서 빼려면 비석에서도 삭제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명백히 하지 않는 것은 선열에 대한 모독이다. 국가보훈처는 이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애국선열과 국가유공자 보훈업무에 분주한 부처이긴 하지만 선열의 명단조차 넣었다 뺐다하는 모습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비바람도 찼어라, 나라 잃은 나그네야. 바친 길 비록 광북군이었으나, 가시밭길 더욱 한이었다. 순국하고도 못 잊었을 조국이여 꽃동산에 뼈나마 여기 묻히었으니 동지들아 편히 잠드시라.”

합동묘소 비문에 새긴 글은 만주벌판 차디찬 광야를 헤매며 일본군과 싸웠던 기개가 아직도 한주먹 큰 힘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들 후손이 없는 광복군 합동묘소지만 해마다 추석과 설날을 잊지 않고 찾는 이들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독도칙령기념사업국민연합 조대용, 삼일민족정신선양회 오의교, 천지인산악회 신은선, 글로벌소비자네트워크 김선홍, 전 통일교육원 박갑수, 한국정치평론가협회 전대열 등이다. 이밖에도 유영모, 이풍용, 김종민 등은 빠짐없이 참가한다.

이들은 정성을 다하여 제수(祭需)를 진설하고 예의범절에 추호도 어긋남이 없이 헌작과 독축으로 물밥도 얻어 자시지 못하는 후손 없는 선열들을 위로한다. 비록 많은 숫자가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18위를 18인이 참배했다.

정부에서 챙겨야할 이들 광복군 선열들을 아무 연고 없는 민간단체가 주관하여 벌써 열아홉번 째 합동차례상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상한 일이다. 지난 추석에는 국가보훈처장의 화환이 하나 덜렁 서 있었으나 설에는 그때 붙어있던 보훈처장 아무개라는 리본만 한 구석에서 비를 맞고 있어 더 처량해 보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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