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39] 중화문화권의 종친의식
[삼강만평(三江漫評)-39] 중화문화권의 종친의식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4.02.0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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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宗親) 의식이 특별히 강한 것은 한국을 포함한 유교 문화권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유학사상 중 효(부모에 효도), 절(남편에 수절), 제(형제간 화목), 부부자자(부친은 부친의 도리,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지킴) 등은 모두 종친과 관계되는 말들이다. 이렇듯 종친 관계를 각별히 중시하기 때문에 하느님보다 조상을 더 믿는 것이 중국인들이다. 중국인 개개인은 하늘 아래의 ‘나’가 아니라 어느 조상의 후손 ‘나’이다.

고대 4대 문명국(이집트·인도·그리스·중국) 가운데 중국은 유일하게 국교가 없는 나라다. 세계 3대 종교(불교, 예수교, 이슬람교)는 모두 외래종교이며 동한 전후로 중국에 들어왔지만 지금까지 뿌리 내리지 못한 것은 바로 중국인의 종친 의식이 너무 강한 것이 그 원인이다.

인류는 철기를 사용하면서부터 원시공동체의 야만단계를 탈피, 노예제문명으로 진입했다. 이것이 인류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진리이다. 유럽인이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곳에서 철 조각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이 인디언이 원시 공동체를 벗어나지 못한 근본 원인이었다.

중국에 언제부터 철기가 있었는가 하는 것은 아직 쟁론 중에 있지만 춘추시대 때 철이 있었다는 확실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즉 중국은 철기를 쓰기 전 약 1,500여 년 전에 이미 노예제문명사회로 진입했다. 아열대의 좋은 기후, 황하유역의 부드럽고 비옥한 토양 등의 혜택으로 철기가 없는 청동기의 단계에서도 중국은 문명사회로 진입할 수 있었다. 중국의 문명은 생산력(철기)이 매우 나약한 조건 미달의 ‘조산아’이다.

이런 약점에 보완 작용을 한 것이 바로 종친조직이다. 인류사회는 생산력이 낙후할수록 혈연관계에 힘입고 발달될수록 지연관계로 전환한다. 지연관계로 전환된 후라야 혈연관계를 떠난 정신상의 공백을 종교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방문화와 중화문화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전자는 천연 문화이고 후자는 혈연 문화이다. 중화문화권에 종친 의식이 특별히 강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원전 21세기부터 춘추시대까지의 중국의 국가 구조를 보면 같은 성씨면 다 통치 계급이며 통치 집단이 거의 종친 구조로 돼 있다. 이를테면 주나라는 희씨의 나라이며 희씨 종친조직 역시 주나라의 국가 구조이다. 종친 의식 가운데 가족 관념은 지금도 중국의 각 분야에서 강력히 작용하고 있다.

그러면 종친 의식, 특히 가족 관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이를 부정해야 하는가? 근대화, 산업화에서는 등가교환의 법칙과 계약관계를 모든 것의 원칙으로 하고 있다. 종친 관계와 인정관계는 이 룰에 어긋나므로 물론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금의 지구촌은 산업화의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인정이 점점 메말라 가고 노골적인 금전관계만 남는다.

그러나 1960~80년대 아시아 세 마리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이 궐기하며, 이 4개 나라와 지역은 인간관계를 순수 금전관계로 고갈시키지 않으면서도 산업화에 성공했다며 종친 관계를 주요표징으로 하는 인정관계, 유교문화를 긍정할 면이 많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 널려있는 화교 학자들이 1980년대 말부터 이를 주장하고 있는데 ‘신유교주의’라 일컫는다.

가정은 인류 사회조직의 세포이며 인정 역시 가정으로부터 시작되므로 가족의식을 되살려야 한다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다음 세기에는 가족·가정 관념이 매우 강해질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지금 중국 당국에서 근대화를 실현함에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데 정신문명의 본질이 바로 전통적인 유교문화를 말한다.

중국의 혈연문화는 산업화의 성공이 도래하기도 전에 벌써 점점 증발돼 없어지고 있다. 종친 관념은 없어진지 오라고 가족 관념도 친자의 관념만 남아 심지어 친형제간도 결혼을 하여 제각기 가정이 이루어지면 거의 남남 취급을 한다. 신유교주의자들의 예견이 중국 대륙에서도 실현이 될지 의문이다.

유교 중화문화권 안에서 종친 의식이 가장 강한 나라는 아마 한국일 것이다. 몇 해 전 유네스코에서 한국의 종묘를 인류의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현상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앞으로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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