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40] 한국의 마산과 중국의 낙양
[삼강만평(三江漫評)-40] 한국의 마산과 중국의 낙양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4.02.2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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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마산을 다녀올 때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한 대목이 생각나곤 한다. 1925년 경남 도청을 진주로부터 부산으로 옮길 때 진주에 있던 경남도지사(일본인)가 자존심이 상해 할복자살했다. 당시 항간에 이런 민요가 나돌았다고 한다: 후에루 후산(ふえる ふさん: 불어나는 부산) / 신다 신슈(しんだしんしゅ: 죽은 진주) / 바까노 바산(ばかの ばさん: 머저리 마산).

진주는 신라 문무왕 2년(662년)에 이미 주 소재지가 되었으니 아주 유서 깊은 도시이다. 진주와 비교하면 부산은 줄곧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조선 고종 13년(1876년) 한·일 수호조약에 따라 개항한 이래 부산은 급성장했으며 불과 50년 만에 진주를 대신하게 됐고 지금은 한국의 제2 도시로 자리 잡았다. 정말 ‘불어나는 부산, 죽은 진주’가 근거 없이 생긴 말이 아니다.

마산도 1899년에 개항장으로 지정됨에 따라 성장했고 1914년에는 부제를 실시, 1949년에 시로 승격됐다. 필자가 특강 차 마산시상공회를 방문할 때 마산 개항 100주년 축제 때에 제작했다는 아주 두꺼운 기념 책자를 필자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마산 역사의 자랑을 장황하게 늘여놓는 것이었다. 그때 필자의 머리에는 창원이 맴돌고 있었다.

창원은 마산의 출장소에 불과했던 것이 1980년에 시로 올라선데 이어, 1983년 일약 경상남도 소재지로 비약, 지금은 마산을 작은집 보듯 한다. 배보다 배꼽이 커졌다. 진짜 ‘머저리 마산’이 된 셈이다. 그 연유를 알고 싶어 창원을 찾아가 낱낱이 살펴보았다. 알고 보니 마산보다 벌이 넓어 공업 단지를 창원에 세웠기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도시가 외적에 대한 공방에 유리한 지형에 자리 잡는, 말하자면 정치와 군사가 주요로 작용했지만 지금은 경제와 교통이 중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상기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한국과 비슷한 예가 중국에도 수없이 많다. 하남성의 낙양과 정주가 전형적인 예이다. 3천여 년의 역사를 지닌 낙양은 역사상 9개 왕조의 수도였다. 근세 1923년에 낙양이 하남성의 성 소재지이다가 일본이 상해를 점령하자 중화민국의 수도를 이곳으로 옮겼던 적도 있었다.

낙양은 또한 우리 한민족의 문화에도 영향이 깊은 도시이다. “북망산천 가자 하니 발걸음이 무겁구나.” 우리 민요의 한 구절이다. 낙양시 부근의 북망산에 수천 년 전부터 많은 임금, 대신들의 주검을 묻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문화에서 북망산을 무덤의 대명사로 쓸 정도였다.

정주는 근세에 한 개 현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북경~무한의 경한철도, 연운항~난주의 용해 철도가 동시에 정주를 경유하는 바람에 급성장하여 1927년에 시로 승격하였으며, 하남성 성 소재지로 됐다. 면적 7,446 제곱킬로미터이고 광역시 인구는 1,100만 명이나 된다. 지금은 낙양을 작은 집 보듯 한다.

필자는 낙양에 몇 번 다녀왔었다. 그런데 박물관을 찾았을 때 여러 번 정전이어 촛불을 켜고 겨우 견학하는 비참한 현실을 목격했다. 호텔도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손님이 감기에 걸리기 일쑤이고 고급 식당에서도 추위에 떨며 식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도심의 도로는 먼지가 펄펄 날리고 더럽기 그지없었다. 한국의 ‘머저리 마산’보다 더 가련한 신세다. 이렇듯 교통과 경제의 요소가 현대 도시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필자는 중국 온주를 취재하며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다. 온주시의 남쪽에 창남현이라는 현이 있는데 그 지형이 가늘고 길었다. 그 중간에 오강이라는 강이 있는데 개혁개방이래 그 강의 도강 나루터가 교통의 중심지로 되어 많은 상인이 그곳에 와서 가게와 공장도 꾸리고 식당, 여관이 우후죽순으로 일어섰다. 불과 10 년 사이에 백 세대밖에 살지 않던 조그만 어촌의 허허 벌판에 인구 15만의 용강 시가지가 생겨났다.

그러면 장래의 새 도시는 어떤데 힘입어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지금 인터넷에 힘입어 각종 사이버대학, 사이버상점, 사이버사회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사이버 도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감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는 달나라 납골당에 골회를 보관시켜 준다는 광고를 보고 천안문광장 부근의 한 회사를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컴퓨터를 부팅하니 달이 떠오르고 ‘달 안’에 화려한 납골당이 나타나며 그 안 칸막이마다에 납골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도 싱거워 아연실색하며 나왔지만 앞날의 새 도시에 대한 궁금증은 가셔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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