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탐방기] 예수의 무엇이 2천년간 사람들을 열광시켰을까?
[예루살렘탐방기] 예수의 무엇이 2천년간 사람들을 열광시켰을까?
  • 베들레헴=이종환 기자
  • 승인 2014.02.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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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 겟네마네- 십자가의 길-마가의 다락방-베들레헴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앞에서.

예루살렘을 돌면서 든 의문 하나가 있었다. 무엇이 지난 2천년간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에 빠져들게 했을까? 왜 기독교가 세계에 급속히 펴져나갔고, 사람들의 마음을 여전히 잡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예루살렘은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2월에서 4월까지는 날씨가 좋아 성지순례객이 더 많다고 가이드가 설명을 했다.

예루살렘을 돈 것은 아프리카중동한인회총연합회 총회 마지막날이었다.

아프리카중동총연(회장 임도재)은 2월17일부터 19일까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 참여한 아프리카중동지역한인회장단이 마지막날 프로그램인 시내관광에 참여한 것이었다.

맨 먼저 간 곳은 숙소인 하이야트 단호텔에서부터 가까운 감람산이었다.

올리브를 한자어로 감람이라고 한다. 이 산은 예수님시절부터 올리브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올리브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친 동굴이 감람산 꼭대기에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주기도문교회가 서서 순례객들을 맞고 있었다.

교회로 들어서자 각종 언어로 쓰여진 주기도문이 벽에 가득 전시돼 있었다. 우리말로 된 주기도문도 신문용지 전지크기 정도로 벽에 두개나 걸려있었다.

전에 영국 BBC방송은 '동굴인간(cave men)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현생인류는 동굴속에 벽화를 그리면서 침팬지와 다른 길을 걸었다고 소개했다.

벽화는 상상력의 산물이고, 이 상상력이 예술과 과학 문화를 만들면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됐다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동굴속에서 벽화도 그렸지만 주기도문도 외운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쳤다는 작은 동굴을 보며 상상해봤다.

감람산에서는 예루살렘의 구시가지와 황금돔이 한눈에 들어왔다.예수도 생전에 예루살렘 성을 나와 기드론골짜기를 지나 감람산에 자주 올랐다고 가이드가 설명을 보탰다.

기드론골짜기에는 겟네마네교회가 서있었다. 최후의 만찬을 마친 예수가 죽음을 예상하고 그 죽음의 잔이 자신을 피해갈 수 있을까 번민하며 기도한 곳이었다.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그것이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될 것을 기도했다.

성안나교회와 베네스다 우물은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이루는 산중턱에 있었다.성안나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이름을 딴 교회로 십자군들이 지었다고 했다.

이슬람군이 이 지역을 점령해 들어왔을 때 크리스찬들이 찬송가를 부르며 죽음을 기다리던 모습에 감동한 이슬람군이 이들을 살려주고 교회도 부수지 않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라고 가이드가 설명을 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모여 끼리끼리 찬송가를 불렀다. 우리 일행도 '찬양하라..."는 찬송가를 부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십자가의 길은 바로 이어져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까지 가서 죽음에 이르는 고난과 희생의 길이었다.

가이드는 이 길을 순례자들이 찬송가 부르며 가거나 심지어 무릎으로 기어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십자가의 길은 좁고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옆으로는 팔레스타인인 상가들이 줄지어있었다.

가이드는 관광포인트가 14군데 있다고 소개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출발한 곳, 쓰러진 곳, 벽을 짚은 곳, 다시 크게 쓰러진 곳, 십자가에 못박힌 곳, 창에 찔려 숨진 곳, 염을 한곳, 묻힌 동굴 등 포인트마다 순례자들 행렬이 줄지어있었다.

오후에는 시온산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과 베드로통곡교회를 찾았다.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든 곳이고, 베드로통곡교회는 예수를 세번 부인한 베드로가 통곡한 곳에 서있다고 했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의 산지에 들어서 있었다. 길도 가팔랐고 골짜기도 깊었다.다윗은 어떻게 이런 곳에 도읍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베들레헴이었다. 예수가 탄생한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20km 떨어진 곳이라고 했다.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자치지역에 속했다. 이때문에 베들레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분리의 장벽이 쳐친 검문소를 통과해야만 했다.

예수가 태어난 마굿간도 동굴이었다. 지금은 그 위로 웅장한 예수탄생교회가 서서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다.

왜 인류의 역사가 예수탄생 전후로 나뉠까? 그의 무엇이 사람들을 열광시켰는가? 왜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에 집착하는가?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를 떠나면서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유대민족을 이끌고 출애급을 하는 모세의 모델과 인류구원을 약속한 예수의 모델에 묘한 닮음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비전을 제시하며 이집트에서 억압받은 유대인들을 인도해 가나안으로 향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이집트를 벗어난 것이다.

이집트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엑소더스의 험난한 과정을 겪었고, 모세가 제시한 비전은 가나안이었다.

예수는 어떠한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 천국의 길로 가는 희망을 제시한 것이 사람들을 열광케 한 것이 아닐까. 모세의 가나안이 '새로운 가나안'인 '천국'으로 버전업된 게 아닐까?

모세는 유대민족을 구하고자 했지만, 예수는 가나안의 땅에서 세계인류의 구원을 꿈꾸었고, 새로운 가나안을 찾아 인류에게 엑소더스의 길을 제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인도나 중국같은 농경사회에서는 짐을 싸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유목의 생활과는 다르다. 아마 이같은 모세와 예수의 엑소더스 버전은 그래서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나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예수가 인류에게 던진 것은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였다. 새로운 가나안을 제시하면서 삶의 희망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것이 지난 2천년간 예수님이 사람들을 열광시킨 게 아닐까?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를 떠나면서 떠올려본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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