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9)
[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9)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4.02.22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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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1): 경주유산 입문(2)

④ 대적광전, 비로전, 화엄전
대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봉안한 법당이다. 화엄종 계통의 사찰에서는 대적광전이 본전이다. 그러나 사찰의 주불전이 아닐 때는 화엄경의 연화장 세계 교주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므로 비로전이라고도 하고, 화엄경에 연유되어서 화엄전이라고도 한다. 비로자나불이 있는 연화장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으로 그 분위기가 위엄이 있고, 진리의 빛이 가득하며, 고요가 깃든 세계라는 데서 대적광전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보신불인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불인 석가모니불을 안치한다. 또한 삼신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두어 5불을 안치하기도 한다. 주불을 모신 불단 위에 닫집을 만들고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으로 화려하게 꾸미며 천장에는 연꽃무늬와 보상화무늬 등으로 장식한다. 대적광전에는 삼신불을 안치하므로 후불탱화로 삼신불탱화를 걸어둔다. 한 폭에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을 모두 그리거나 법신탱·보신탱·화신탱을 세 폭에 나누어 그린 불화를 배치하기도 한다. 해인사 주불전, 마곡사 대광전 등이 이에 포함된다.

⑤ 극락전, 무량수전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안치하고 있는 법당으로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부석사)이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인데, 무량한 지혜와 무량한 덕, 무량한 수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량수불’이라고도 부른다. ‘나무아미타불’은 무한한 생명과 지혜로써 부처에 귀의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구호다.

극락정토의 본존인 아미타불을 중앙에 모시고,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과 지혜와 광명의 빛으로 중생을 비추어주는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안치한다. 또는 관세음보살과 함께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지장보살을 협시로 봉안하기도 한다. 주불전이 아닐 경우 일반적으로 미타전이라 부른다. 천은사, 무위사가 대표적이다.

⑥ 미륵전, 용화전, 자씨전
미륵전은 사찰에서 미륵불을 주불로 봉안한 법당이다. 석가가 열반한 뒤 56억 7천만 년이 지나면 말세가 되는데 도솔천의 미륵보살이던 분이 사바세계 용화수 아래 내려와 성도하고 미륵불이 된다. 그는 석가가 다 구제하지 못한 중생들을 제도한다. 모든 대중을 위하여 용화삼회를 열고 설법한다.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여 용화 세계를 이룬다는 뜻에서 용화전이라고도 하며, 미륵의 한문 의역인 자씨를 따서 자씨전이라고도 한다.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직 부처가 아니라는 뜻에서 ‘미륵보살’이라고도 부른다. 이 미륵보살이 새로운 불국토 용화 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것을 상징하는 법당이다. 미륵불의 협시보살로는 법화림보살과 대묘상보살 또는 묘향보살과 법륜보살을 배치하며, 후불탱화로는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하여 중생들을 극락으로 이끌어주는 장면을 묘사한 용화회상도를 걸어둔다. 금산사⋅범어⋅동화사⋅법주사⋅용화사 등 주로 법상종 계통의 사찰 금당이 이 이름을 사용한다.

⑦ 약사전
약사전은 사찰에서 약사여래를 주불로 봉안하고 있는 법당인데 보통 동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다. 약사여래는 몸의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에 든 병이나 집에 든 재난까지 치유하거나 소멸시켜주므로 불자들에게는 매우 친근한 여래다. 약사전에는 약사불이라고도 하는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태양처럼 빛나는 지혜와 덕상을 지니고 중생을 교화하는 일광보살, 오른쪽에는 달처럼 청정한 덕상을 갖추고 중생을 교화하는 월광보살을 배치한다.
약사여래는 대개 왼손에 약병이나 약합을 들고 있으며, 후불탱화로는 동방약사 유리광회상도를 걸어둔다. 법당 안에는 우물천장을 비천과 연꽃으로 꾸미고 닫집을 만든다. 우리나라 대형 사찰의 많은 곳이 이 이름을 갖는데 통도사, 송광사, 관룡사, 고운사 약사전 등도 이런 건물을 갖고 있다.

⑧ 관음전, 원통전, 대비전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건물이 사찰의 중심 법당일 때는 원통전, 사찰 건물의 일부에 속하는 경우에는 관음전이라고 하며,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강조하여 대비전이라고도 한다. 원통전은 절대적인 진리가 원만하게 탐색된다는 ‘주원융통(周圓融通)’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통도사·화엄사·법주사·선암사의 원통전, 범어사 관음전 등이 대표적 예이다. 송광사 관음전은 조선시대 왕실의 원당이던 성수각(聖壽閣)이다. 조선조의 국시는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했으나 역대 왕과 왕비들은 대부분 불교에 의지했다. 조선조에 수많은 사찰들이 대규모로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왕실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인데 왕실에서 치성드릴 일이 있으면 상궁을 파견하여 기도하게 했다. 성수각은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전각을 기도처에 마련한 것이다.

⑨ 명부전, 지장전, 시왕전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법당으로 대개 대웅전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죄인들은 염라대왕 앞에서 지은 죄를 숨김없이 공술하는데 죄를 적은 두루마리를 저울에 달아 죄가 무거운지 아닌지를 판가름한다. 이 과정을 지장보살이 지켜보면서 죄를 변호해 주기도 한다. 이들 지옥에서의 장면들을 그린 것이 시왕동(十王圖)이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어 지장전, 시왕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사망한 후를 감독하는 지장보살은 석가의 위촉을 받아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6도의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한다는 보살이다. 명부전 안에는 불단 가운데에 지옥중생의 구세주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협시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배치하고 그 좌우에는 죽은 뒤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다루는 10명의 명부시왕상을 세운다. 조선시대에는 어느 사찰에서나 거의 있었던 중요한 불전으로 화엄사·신륵사·금산사·동화사 등 많은 사찰이 이들을 갖고 있다.

⑩ 응진전, 나한전
응진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그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인 16나한상을 안치한 법당이다. 석가모니의 제자들인 16나한을 모시고 있어 나한전이라고도 한다. 나한은 아라한(Arhan)의 약칭으로 성자(聖子)를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존경과 공양을 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진리에 도달했다는 뜻에서 응진이라고도 한다. 나한은 부처가 되지는 못했으나 모든 고통과 번뇌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성자로서,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부처의 수기를 받았다.

500나한 즉 부처의 500제자를 모신 전각을 나한전 또는 500나한전이라 한다. 석가가 열반 뒤 마하가섭이 회의를 소집했다. 생전에 부처께서 설법하신 내용을 모아 정리하기 위함인데 이때 5백인의 비구들이 모였다. 이들은 하나 같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으로 오백 나한적의 오백 나한들은 이 모임에 모였던 5백명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이것을 ‘제1결집’ 또는 ‘오백결집’이라 한다. 모두들 가장 편안한 자세들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도사·송광사·해인사·선암사·마곡사·천은사·은혜사·기림사 등이 응진전의 대표적 예이다.

⑪ 조사전, 국사전
조사전은 사찰에서 조사, 사찰의 창건주, 역대 주지 등 후세에 존경받는 승려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안치한 건물이다. 사찰에 따라서 조당, 조사당, 국사전이라고도 한다. 선종 사찰에서 조사당을 세워 영정과 위패, 조각상 등을 모신 데서 비롯되었다. 조사전이 없는 절에서는 영각(影閣)을 짓고, 국사를 배출한 절에서는 국사전을 짓기도 하였다.

선종에서는 달마 대사를 제일가는 조사로 받들고 있으므로 많은 사찰에서 달마 대사를 지극히 공경하는 이유이다. 부석사의 조사당이 유명하며 통도사 조사당, 송광사 국사전, 해인사 조사전, 신륵사 조사당 등은 조사당을 대표하는 전각이다.

⑫ 설법전⋅무설전
석가는 많은 비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언제나 모여 앉으면 마땅히 두 가지 일을 행하라고 했다. 하나는 진리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침묵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조계산 송광사의 설법전(說法殿), 불국사 금당 뒤에 있는 무설전(無說殿)이 바로 이런 뜻에서 세워진 것이다. 즉 비구들이 모여 법을 설하던 곳으로 무설전이란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법이 한가지라는 뜻을 담았다. 새로 창건하는 사찰에서는 거의 무설전이 없고 선방(禪房)을 만든다.

이외에서 사찰에는 승당(僧堂), 승방(僧房), 후원, 몸을 깨끗이 하는 수각(水閣, 돌확도 이런 용도임), 부도밭, 비림(碑林) 등이 있다.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 곳이다.

참고적으로 스님들이 고기를 멀리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는 기독교의 목사들처럼 결혼하는 대처승도 있어 그들이 고기를 먹는 경우도 있지만 스님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론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원래부터 스님들이 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석가가 열반에 들고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났는데 대승은 ‘많은 사람을 구제해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을 갖고 있다. 대승불교는 중국, 한국, 일본 등으로 퍼졌고 초기 불교를 잇는 소승불교는 태국·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나라들로 퍼져갔다. 대승불교에서 육식을 금하게 된 것은 대체로 현장의 영향으로 보는데 당나라 태종 때인 7세기 현장이 인도를 방문해 수많은 불교 겅전을 갖고 돌아와 서안에 대자은사(大慈恩寺)를 세우고 대안탑(大雁塔)을 세웠는데 이 탑에 유래가 있다. 현장이 불교성지인 인도에 도착했는데 어느 날 안탑(雁塔, 기러기탑)을 보았다. 기러기 탑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한 비구승이 “오늘은 식사가 충분하지 못했으므로 만약에 보살이 기러기 모습을 하고 나타난 거라면 우리한테 고기를 베풀어줄 것이다”라고 농담을 했다. 그말이 끝나자마자 기러기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비구승 앞에 떨어져 죽었다. 승도(僧徒)들은 기러기의 죽음을 애도하며 탑을 세워 ‘기러기탑’이라 이름 짓고 고기를 멀리했다.’

위 내용은 처음 불교가 생겨났을 때 육식을 특별히 금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나라의 현종 이후 대승불교를 믿는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육식을 금지했는데 대승이라고 모두 육식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티베트 불교는 대승불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유목을 하는 티베트 지역의 환경에 맞춰 육식을 엄격하게 금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티베트의 불교지도자인 달라이라마는 외국을 방문할 때 비프스테이크롤 좋아한다고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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