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17)
[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17)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4.04.19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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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1): 경주 형산강 좌측 유산(4)

 
김유신묘에서 하천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경주의 선인들을 만나볼 수 있는 석장동 금장대 바위그림이 있다. 이곳은 경주 시가지의 북서쪽으로 서천과 북천이 합쳐져 형산강을 이루는 곳으로 ‘애기청소’라고 불린다.

물 좋은 곳에 바위절벽이 있어 그 위쪽에는 조선시대에 금장대(金丈臺)라는 정자가 있던 곳인데 날아가던 기러기도 반드시 앉았다 간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절벽 중턱의 바위에 그림을 그렸는데 풍우에 시달려 동쪽 면의 그림은 거의 알아보기 힘들지만 남쪽 면에는 방패모양이라고 불리는 검파형(劍把形) 이외에도 사람 얼굴·돌칼·돌화살촉·꽃무늬·사람발자국·짐승·배·여성 성기 모양 등 30여 점의 다양한 그림이 등장한다.

청동기 시대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신앙의례의 장소로 보이는데 경주 안심리와 포항 칠포리, 세계를 놀라게 한 대곡리와 천전리 바위그림도 인근에 있으므로 바위그림과 고인돌 등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별도로 이들을 찾아보기 바란다.

애기청소는 수많은 전설과 사건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김동리의 단편소설 『무녀도』의 무대가 된 장소로 과거에 1년에 한 명씩은 빠져 죽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 여인을 쫓아다니던 청년이 술에 취해 우물에 빠져 살아나지 못하자 다른 남자와 약혼 중인 황남동의 그 여인은 다음날 서천 냇가에서 숨진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계모에게 꾸중들은 어린 남매가 외삼촌 집에 가려고 서천을 건너다가 그중 한 명이 죽었다고 할 정도로 애환을 갖고 있는 곳이다. 경주가 자랑하는 절경 중의 하나인데다 주변 정리가 잘 되어 있으므로 과학유산 답사에서 빠뜨리지 말기 바란다.

 
석장동금장대바위그림에서 좀 더 직진하면 제28대 진덕여왕릉(재위 647∼654, 사적 제24호)이 나타난다. 선덕여왕이 재위하던 647년에 비담(毗曇)이 반란을 일으켜 김춘추와 김유신이 이를 진압하였으나, 반란의 와중에 선덕여왕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하여 한국 왕실사에서 유일하게 2명의 여성 왕이 연이어 나타났다.

즉위한 뒤 고구려와 백제가 계속 도발하자 김유신을 중심으로 국내 문제를 해결토록 했고 대외적으로는 진덕여왕 2년(648년)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요청하면서 나당동맹(羅唐同盟)을 맺었다. 당나라를 본떠 복제(服制)를 개편하였고, 당나라 연호인 영휘(永徽)를 쓰기 시작하는 등 당나라와 친교를 돈독하게 하는 등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진덕여왕릉은 키가 7척이나 될 정도로 매우 큰 키에다 상당한 미인으로 알려지는데 무덤은 키에 비해서는 큰 편은 아니다. 원형봉토분으로 지름 14.4m, 높이 4m인데 사망하기 2년 전인 재위 중에 축조한 것이다.

봉토 밑에 판석으로 병풍 모양의 호석을 돌리고 판석과 판석 사이의 탱석(撑石)에는 방향에 따라 십이지신상을 조각했다. 판석과 둘레돌 위에는 장대석으로 된 갑석(甲石)이 덮여 있으나, 원래의 돌이 아닌 것도 있다. 둘레돌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석을 깔고 난간을 세웠으나, 현재는 사라진 부재가 상당수다.

무덤 앞에 별다른 석물이 없으며 후대에 만든 통로와 축대가 있다. 일부 학자들은 무덤 조성에 대한 기록이 현 위치와는 다소 다른 것은 물론 십이지신상의 조각 수법이 경주에 남아 있는 8기의 능묘 가운데서 가장 빈약하고 십이지신상의 평면화 된 양식은 9세기 후반의 능묘 양식과 일치하므로 진덕여왕의 능묘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진덕여왕릉에서 나와 높이 9.76미터의 경주나원리5층석탑(국보 제39호)으로 향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나원 백탑(白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경주 8괴 중 하나로 들어가는 이유다.

경주 8괴란 8개의 괴이한 경치를 뜻한다. 첫 번째는 ‘남산부석으로 경주 남산에 있는 허공에 떠있는 바위를 말하며 ‘문천도사’는 남천을 흐르는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데 모래는 위로 거술러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계림황엽’은 계림의 나무가 여름에도 단풍처럼 누렇게 변하는 현상을 말하고 ‘금장낙안’은 왕이 놀던 금장대에 기러기가 반드시 쉬어가는 것을 발한다.

‘백률송순’은 소나무를 베면 순이 생기지 않는데 백률사 소나무는 가지를 베면 순이 자란다는 것을 말하고 ‘압지부평’은 안압지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자라는 풀이 있다는 것이다. ‘불국영지’는 불국사의 탑이 영지에 비친다는 것이며 ‘나원백탑’은 탑에 이끼가 끼지 않아 영원히 하얗다는 것이다.

경주 8괴 중의 하나인 나원리5층석탑이 소속되었던 사찰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인근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기와 등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대형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학자들은 이 탑이 금당 자리 뒤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예는 양산 통도사에서도 보이는데 그 의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2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건립하고 그 정상에 상륜부를 형성한 신라석탑의 전형적 양식으로, 경주지역에서는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 다음가는 큰 석탑이다. 기단과 1층 탑신의 몸돌, 1·2층의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구축된 지대 위에 기단부를 형성하였고, 하층기단 면석은 4석으로 짜여지고 각 면에는 양쪽 우주(隅柱, 모서리기둥)와 3주의 탱주(撑柱, 받침기둥)가 정연히 조각되었다. 갑석은 4매의 판석으로 결구하여 덮었는데, 상면에는 원과 각형의 2단굄대를 마련하여 그 위에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예리하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어 경쾌함을 실었고,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부서진 노반(露盤, 머리장식 받침)과 잘려나간 찰주(擦柱, 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지탱하는 쇠꼬챙이)가 남아있다.

짜임새 있는 구조와 아름다운 비례를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한다. 경주 부근에서는 보기 드문 5층석탑으로 순백의 화강암과 높은 산골짜기에 우뚝 솟은 거대한 모습에서 주위를 압도하고 있는 신라시대의 걸작품이며 옆에 새로 만든 작은 사찰인 나원사가 세워졌다. 5층석탑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목을 잡으면 유네스코세계유산인 양동마을이 나타난다. 양동마을은 하회마을과 더불어 별도 일정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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