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그림편지-8] 봇, 저 시커먼 ‘지구의 자궁’ 앞에서
[김봉준그림편지-8] 봇, 저 시커먼 ‘지구의 자궁’ 앞에서
  • 김봉준 <오랜미래신화미술관 관장, 작가>
  • 승인 2014.05.23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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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 옛말입니다. ‘봇물’, ‘보’라는 말은 지금도 농부들이 쓰는 순 우리말입니다. 물이 고인 방죽이나 연못입니다. 이곳은 생명이 나고 지는 곳, 많은 생태종이 살고 있습니다. 봄이 되니 마른 봇에 물이 고이고 버드나무와 수초들이 무성하게 피어 오르고, 죽은 어미풀 덮고 초봄 추위를 견디던 새싹들은 돋아 드디어 꽃을 피웁니다.

개구리 소리도 밤마다 우렁찹니다. 미꾸라지 지렁이 두꺼비 송사리 어디서 나타났는지 부활하듯 재생하고 재두루미 청둥오리는 먹이를 찾아 날아왔습니다. 봇에는 새 생명이 탄생하고 저마다 살자고 모여들었습니다.

물가에는 우리 인류족도 저마다 살자고 모여든 지 오래입니다. 물은 뭍 생명을 받아 안고 내주고 풍요롭게 합니다. 이 물 없이는 하루도 못 살고 생명의 먹이 사슬은 끊어져 못 삽니다. 봇, 저 시커먼 지구의 자궁에는 생명이 낳고 살고지고 합니다. 봇은 모성의 시작과 끝입니다.

오리와 거위를 키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울타리를 열어주자 줄을 지어 봇으로 가는 거위와 오리 떼를 보며 산 적이 있습니다. 봇에 도착하면 신이 나서 자맥질부터 하고 주둥이를 물속으로 처박고 먹이를 찾았습니다. 한 차례 먹이 사냥이 끝나면 햇볕을 쬐며 털을 고르고 말립니다.

먹이사냥이 끝 난 휴식은 평화롭습니다. 오리와 거위는 가축의 주인인 내가 먼발치서 깡통을 두드리며 오라고 소리를 보내면 귀를 쫑긋거립니다. 자기들끼리 신호하고 모여들더니 드디어 열을 맞추어 귀가합니다. 봇에서 같이 놀던 재두루미는 깡통소리에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가축과 야생은 여기서 갈렸습니다. 가축 오리와 거위는 주인이 주는 먹이를 잊지 못하고 날개 짓은 잊었습니다.

서로 자리다툼도 하고 서열다툼도하고 짝짓지도 하며 어울려 사는 걸 보노라면 사람살이도 사는 근본에선 다를 게 없습니다. 깡통소리에 귀 쫑긋 세우며 집으로 돌아가는 저 오리들처럼 집단으로 모여 길들여져서 ‘깡통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길들여진 삶은 같았습니다. 인간이 만든 사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저 완전한 야생 재두루미 같은 삶은 이제 잃어버렸나요. 하지만 사람 몸도 여전히 자연임으로 야생질서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저 신석기 농경문화를 이룩한 인간은 모여 사는 재미에 익숙하였고 길들어져 왔지만 여전히 인간의 몸은 자연입니다.

생명이면 다 사는 근본이 같다는 것을 우리 인간은 자꾸 잊고 삽니다. 물 없이는 못 살고, 햇볕 없이는 못살고, 먹이 사슬에 의존하며 살고, 서로 협동하고 경쟁하며 삽니다. 이것이 자연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칫 이 자연법을 잊고 삽니다. 마치 사람만 사는 세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 마냥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사람살이란 게 사람이 만든 사회법만 존재해서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질서에 살면서도 자연적 질서에서 삽니다. 사람이 만든 사회적 질서도 자연적 질서 안에 내포된 개성입니다. 본래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서로 조화로워야 하는 또 하나의 생태 종들의 질서 안에 있습니다. 본성을 잃고 살 수가 없습니다. 물 없이 햇볕 없이 다른 생태종동식물 없이 산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사람이 잘못을 깊이 성찰한다는 것은 본성으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질서가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인간이 사는 법도는 본성의 질서에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반성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성찰의 시대에 서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적 트라우마와 우울을 겪으며 곰곰이 반성하는 계기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법을 지켰냐 안 지켰냐의 차원을 넘는 사회질서의 위기를 알린 사고였습니다.

그럴수록 사회의 지도층부터 성찰을 잘 해야 합니다. 슬픔에 젖어 헤어나올 길을 못 찾아 절망하는 이들 앞에서 겸손해야하고 자연 앞에서 겸허해야 합니다. “순수 유가족, 미개한 사람들, 교통사고에 비하면 별로 많이 안 죽은 죽음, 차분하지 못한 조급증, 그런 놈들은 조문도 가지 말아야 해, 종북세력들의 선동질, 시체 장사….” 등 등지도자들 말이라곤 도저히 못 믿을 정도로 무지하게 말들을 함부로 합니다. 유가족의 슬픔을 같은 국민으로서도, 사람 인정상으로도, 인권 차원에서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요. 사회지도층이 유가족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려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서 화합과 성숙한 사회로 못 갑니다.

근원적 성찰은 자연의 질서로 돌아가서 우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찰이 없다는 것은 태생의 근원지를 잊고 산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때만은 근원적 성찰을 잊지 않으려고 아직도 제의를 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 어머니와 아이가 아파하며 비명소리를 지르듯이 자식과 식구 죽음 앞에서 본성의 소리를 들리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런 걸 ‘미개한 소리’라고 하지 않고 ‘본성의 소리’라하고, ‘조급증이라고 하지 않고 애끓음’이라고, ‘고상하지 못한 울음이 아니라 절규’라고 해야 맞습니다.

한국인 그 어느 민족들 보다 본성(Archetype)이 강한 민족성을 갖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3국 종족의 민화들을 비교해보아도 역시 카오스가 강합니다. 무질서의 질서인 본성의 질서, 여기에 우리의 역동성이 있어 산업화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하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가끔 이렇게 본성의 소리를 들으며 성찰을 하는 것이 한국사회여야 할 것입니다.

봇, 저 시커먼 ‘지구의 자궁’ 앞에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기‘봇’에서 나와 거기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기에 근원적 성찰은 계속 될 것입니다.

▲ <오리들 물을 찾았다> 목판화 30X35cm 1998년 김봉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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