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및 불국사·석굴암(27)
[과학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및 불국사·석굴암(27)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4.06.30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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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지구(서남산(4))

<제1구역 : 서남산(2)>
남산신성을 답사에 포함하든 아니든 포석정을 지나 남산지구 문화유산의 백미라고 볼 수 있는 용장마을에서 삼릉계곡으로 내려오는 대장정 등산로를 도전한다. 남산의 계곡이 40여 개소이며 등산로는 60여 곳이나 된다고 알려지는데 용장마을부터 등산로를 잡은 이유는 김시습 유적지를 비롯하여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보물 913호), 경주남산용장사곡석불좌상(보물 187호), 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보물 186호)은 물론 남산의 절경 등을 맛 볼 수 있으며 이어서 금오산에 오르면 원하는 다음 답사지를 마음껏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만진 선생은 용장마을로 올라가면 두 가지 이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작가 김시습이 용장골에 놓았다는 설잠교를 건널 수 있다. 설잠(雪岑)은 말년에 승려 생활을 할 때 김시습이 쓴 법명으로 ‘눈 덮힌 산봉우리’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 남아 있는 설잠교는 근래 건설한 것이지만 김시습의 체취는 느낄 수 있다.

또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의 전모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는 표현은 설잠교에서 용장사터로 오르는 등산로의 안내판에도 적혀있다. 용장골과 탑상골의 갈림길에 있는 이 안내판은 용장사곡삼층석탑을 ‘아득한 구름 위 하늘나라 부처님 세계에 우뚝 솟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탑은 4.5m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런 표현이 나오게 된 것은 설잠교 바로 못미처에 있는 돌다리에서 바라보면 산 전체가 탑의 기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고 해발 약 400m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면 용장사곡삼층석탑은 높이가 분명 404.5m에 이른다.

설잠교 밑에서 일단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을 보았다는 감격을 기(氣)로 비축한 후 여세를 이어 다소 힘이 드는 등산길에만 신경을 쓰기 바란다. 비교적 쉬운 산행길이 아니지만 중간 중간에 쉼터를 주어 방문객들을 배려하고 있는데 쉼터에서도 용장사곡삼층석탑이 보이므로 매번 볼 때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을 보는 맛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용장사터로 올라가는 마지막 단계에는 무려 높이 5미터(?) 정도를 밧줄로 잡고 올라가야 하는 등 등산의 진수를 맛봐야 하지만 올라가자마자 놀라운 작품이 나타난다. 용산사지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과 용산사곡석불좌상(보물 제187호)이다.

마애여래좌상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지상에서 높지 않은 바위 면에 새겼는데 머리둘레의 두광(頭光)과 몸 둘레의 신광(身光)은 2줄의 선으로 표현했다. 얼굴은 비교적 풍만하고 입은 꼭 다물어 입 양끝이 돌 속으로 쏙 들어갔다.

코는 크고 긴 편인데 코에서 반달처럼 휘어진 선이 눈썹을 이룬다. 눈은 바로 뜬 편이며 눈썹과 더불어 음각선으로 둥글게 표현되어 있어 볼록한 입과 입 양끝의 보조개 같은 묘사와 함께 얼굴 전체에 미소를 만들고 있다. 머리에는 나선형 머리카락을 표현했으며 귀는 눈에서 목까지 상당히 길게 표현했다. 목에는 3개의 선으로 표현된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의 주름선은 얇고 촘촘한 평행선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는데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를 동시에 걸치고 있다.

여래좌상은 결가부좌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오른 손을 무릎 아래 쪽으로 향하게 하는 모양) 을 했는데 중앙에 있는 연화문은 제일 크게 바로 세웠으며 좌우의 것들은 뿌리를 모두 중심 쪽으로 향하게 배열되어 있다. 부처님의 무릎 아래를 장식하고 있는 연꽃 무늬까지도 세밀하여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마애여래좌상 앞에는 그보다도 더 놀라운 불상이 있는데 웬만한 문화재 애호가나 역사여행 취미가라면 사진만은 어디선가 반드시 보았을 1.4미터의 용산사곡석불좌상이다. 삼층석탑처럼 보이는 대좌는 기단부가 자연석이고 간석과 대좌가 탑의 지붕돌 모양처럼 놓여있는데 모두 둥근 모양의 특이한 형태다.

2미터가 조금 넘는 대좌 위에 모셔진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1932년 일본인들에 의해 복원되었지만 머리 부분은 사라졌다.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목에는 3줄의 뚜렷한 삼도가 있고 어깨는 넓지 않고 다소 좁은 편이나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좌측 어깨에는 매듭지어진 가사끈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두 손은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아 언뜻 항마촉지인을 좌우로 바꾸어놓은 듯하며 이 불상을 미륵장육상으로 추정한다. 이 석불은 둥근 형태의 대좌 뿐 아니라 연꽃무늬도 분명하고, 옷자락도 깔끔하여 보존 상태가 좋은 불상의 하나로 총 높이는 4.50미터이다.

용장사는 이 골짜기 최대의 사찰이므로 전설이 없을 리 없다. 용장사에 미륵장육상이 있는데 용장사의 고승 대현(大賢)이 그 주위를 돌면 미륵상 역시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용산사곡석불좌상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음). 이러한 능력을 가진 대현에게 신라인들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국유사』에 용장사의 대현(大賢)의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

‘경덕왕 12년(753) 여름에 가뭄이 심하니 대현을 대궐로 불러들여 ‘금광경(金光經)’을 강설하여 비가 오도록 빌게 게 했다. 어느 날 재를 올리는데 바라대를 열어 놓고 한참 있었으나 공양하는 자가 정수(淨水)를 늦게 올리므로 관리가 이를 꾸짖었다. 이에 공양하는 자는 대궐 안에 있는 우물이 말랐기 때문에 먼 곳에서 떠오느라고 늦었다고 대답했다. 대현은 이를 듣고 “왜 진작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냐?”하였다.

낮에 강론할 때 대현이 향로를 받들고 잠자코 있는데 곧 우물물이 솟아 나와 높이가 일곱 장(丈)이나 되어 절의 당간과 같아지니 궁궐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그 우물을 금광정(金光井)이라 했다.’

용장사의 압권은 용산사곡석불좌상으로부터 약 10미터 위에 우뚝 우뚝 솟아있는 용장사곡삼층석탑이다. 높이는 10여 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들어가는 길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없어 지나치기 쉬우므로 주의하기 바란다. 산길 찾는데 남다른 눈썰미가 없는 필자는 무려 두 번이나 지나쳤다.

용장사의 법당터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랫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면마다 기둥새김 셋이 있는 윗기단을 설치하여 산 전체를 기단으로 여기도록 고안됐다.

천연의 조건에다 인공적 요소를 가미해 석탑을 만든 신라인들의 재주를 엿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온 것인데 학자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추정한다.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 쌓았는데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든다. 지붕돌은 밑면의 층급받침이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들려있다. 상륜부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3층 지붕돌 위체 찰주공만이 남아 있다.

윗부분이 사라져 탑의 높이는 4.5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하늘에 맞닿은 듯이 높게 보여 자연과의 조화미가 돋보여 통일신하 하대의 대표적인 우수작으로 꼽힌다. 현재의 탑은 1922년에 흩어진 탑 돌들을 모아 재건한 것으로 당시 조상에 의하면 2층 몸돌 상부에 한 변이 15센티미터 정도인 방형 사리공이 있었다고 한다.

용장사는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쓴 곳으로 유명하다. 김시습은 그야말로 전설적인 한국의 천재로 알려진다. 서울의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을 깨쳤고 5세 때 대학과 중용에 통달할 정도로 어릴 때 승정원에 불려가 시를 짓고 세종으로부터 비단 50필을 하사받기도 했다.

한마디로 조선의 천재로 알려져 한껏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재목임에도 21살 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책들을 태워버린 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후손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 하여 47세 때 아내를 맞이했으나 얼마 후 아내가 죽자 방랑생활을 계속했고 충청도 만수산 무량사에서 59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용장사에서 31세부터 37세까지 기거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썼는데 금오신화란 제목은 남산의 별명인 금오산에서 따온 것이다. 『금오신화』는 작가의식과 내용적인 기교에 있어서 문학적 가치가 높은 것은 물론 한국소설의 출발점이라는 의미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김시습이 용장사를 읊은 「용장사에 머물며(居茸長寺經室有懷)」라는 시를 보자.

‘용장골 깊으니 오가는 사람 없네
보슬비는 냇가 대나무를 찾아가고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희롱하는데
작은 창가에서 사슴과 함께 잠자고
마른 의자에 앉으니 내 몸이 재 같은데
깨어날 줄을 모르네 억새 처마 밑에서
뜨락에 꽃들은 지고 또 피는데.’

용장사곡삼층석탑에서 주위를 돌아보는 스펙타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필자에게 남산에서 반드시 보아야 할 한 곳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삼층석탑을 추천한다. 참고적으로 용장사곡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사시사철 아름다워 항상 절경을 만끽할 수 있으므로 필자가 경주를 들릴 기회가 있을 때 시간이 할애된다면 항상 방문하려고 하는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이들을 바라보면 다음 일정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겠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금오봉(468미터)을 향한다.

금오봉은 타원형으로 이루어졌으며, 금거북이가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편하게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남산의 어느 코스를 답사하더라도 금오봉이 기준이 되므로 남산 답사를 많이 할수록 금오봉도 여러 번 오르게 된다. 현재는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금오봉 정상의 전망이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 동쪽 기슭은 남산순환도로와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경주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금오봉에서 통일전, 포석정, 칠불암, 삼릉골 또는 용장골로 되돌아갈 수 있는데 여기서는 삼릉골로 향하는 길을 적는다. 금오봉에서 삼릉골까지의 길은 부드러운 능선길로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데 ‘기도를 하면 아기를 낳게 된다’고 알려지는 상선암이 나타난다.

상선암은 남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인데 상선암 못 미쳐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8호)이 나타난다. 마애석가여래좌상은 남산의 북쪽 금오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바위가 남쪽 중턱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바둑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지만 한국인들은 바둑을 두는 풍치도 다소 달랐다. 계곡이나 산중의 경치 좋은 암석 위에 바둑판을 그려놓고 풍류를 즐기기도 했는데 이러한 돌바둑판을 석국(石局)이라고 한다. 석국은 중국과 일본 등에서 그림과 기록이 남아있지만 실물은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유적이다(일본에 차인(茶人) 센노리큐(千利休, 1521〜1591)와 풍신수길(豊臣秀吉)이 대국했다는 돌바둑판이 남아있다고 알려진다). 한국의 경우 여러 곳에 석국 유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석국은 다음과 같다.

① 충북 단양면 사인암 아래 바둑판
② 충북 충주시 살미면 공이동 계곡
③ 서울 도봉산 방학동 주석계
④ 전북 장수군 덕산계곡의 용소바둑판
⑤ 소백산 신선봉 석국
⑥ 강원도 서원면 압곡리 취석정
⑦ 충북 괴산 갈은 계곡의 선국암

남산의 바둑바위라 하여 석국이 그려져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바둑판은 그려져 있지 않다. 반면에 평평한 바위 위에서 여러 명이 바둑을 둘 수는 있는 공간으로는 충분하다. 바둑바위에서 절경을 바라보면서 바둑을 둔다면 그지없는 낭만과 향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므로 바둑바위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모른다. 바둑과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은 바둑판을 갖고 올라가 보기 바란다.

고스톱과 장기가 노인들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돌아 경로당마다 화투와 장기를 돌린 적이 있다. 카드나 화투 놀이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과 같이 손 자극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데는 많은 의학자들이 동조하고 있다.

최근 전자계산기와 컴퓨터의 등장으로 잊혀 가던 주산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도 주목거리다. 1980년대만 해도 동네마다 자리 잡았던 주산학원은 컴퓨터와 전자계산기에 밀려 1990년대에 들면서 하나둘씩 문을 닫았는데, 최근 주산이 어린이 수리능력 향상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기가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바둑과 관련시켜 보면 상당히 의미가 있다.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상력·판단력이다. 바둑은 실시간 시뮬레이션이 아닌 고전 게임이다. 바둑을 두다보면 수많은 전쟁과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죽느냐 사느냐 전투 후에 평화협정이라도 맺은 듯 서로 대치하며 영역을 넓히고, 집을 정돈하고 그러다 또 다시 특공대를 파견하는 전투를 하다가 마지막으로는 하나하나 집짓기를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자기 집을 정돈한다.

한 곳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곳에서 회복하면 된다는 대국관이 바둑을 두면서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대두된다. 인간의 뇌에는 좌뇌와 우뇌라는 상이한 두 가지 작용이 있다. 계산력⋅암기력 같은 것은 좌뇌의 기능에 속하는 반면, 종합력·판단력은 우뇌의 기능에 속한다. 우뇌의 장애가 있는 사람은 포석이 잘 짜여 지지 않으며 정석의 모양인식도 어려워서 대국도중에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좌뇌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중반의 공방이 허약해 수 싸움은 잘 못하지만 포석이나 정석의 감각은 좋은 편이다. 따라서 바둑과 같이 두뇌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계속한다면 노후까지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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