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Essay Garden]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4.07.15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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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샌디에고 바닷가 인근의 라호야 시에 사는 한인 일가족이 대낮에 훈련 중이던 전투기 추락으로 몰살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직장에 있던 남편은 사고를 면했지만, 담양의 친정 집에서 손녀를 데려다 주려고 온 장모까지 변을 당했다. 연일 텔레비전에서 방송했다. 영상 속에는 한국 남자분이 사고를 당한 가장 곁에 늘 서 있었는데, 훗날 목사임을 알았다.

최근에 나는 교회의 경로행사가 끝난 후, 건물주여서 일부러 그분께 내 북 사인회 날짜를 알리며 다가가 인사를 했는데, 알았다며 스마트폰에 찍으셨다.

몇 해 전인가, 한인회 사무실의 방 한 칸에 있던 노인회가 어느 교회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들으며 반가웠다. 두 해쯤 지나서 그 교회는 건평이 5만 3천 제곱피트고 300명이 앉을 수 있는 친교 실이 있는 새 건물로 이사했다. 샌디에고 노인회도 한 쪽 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의 노인회장은 시 정부의 복지과로부터 점심 보조금과 작은 차량 두 대를 선물 받았다. 봉사보다는 명예적 자리다툼만 하는 한인사회에 수년 만에 신선한 소식이었다.

우연히 지난해 정부에서는 식사규정을 엄하게 만들었기에 규정에 맡는 건물을 어서 사들여야 한다는 노인회장의 말을 들었다. 삼십여 년 그가 정직한 분으로 알아온 나는 격려해드리고 싶어 이듬해에 책이 나오면 북 사인회를 열고 전액을 건축기금으로 기증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드디어 올해 6월 초순에 난 회장님께 미국에 도착하는 책의 출간을 알리며 행사준비를 시작했다. 수년 전부터 말이 나온 샌디에고 만돌린오케스트라단도 초청했다. 회장님이 잡아준 날짜를 말하니 지휘자는 책 출간을 축하한다며 여행을 가려던 날짜를 변경하면서 연주하겠다고 나에게 알려 왔다. 그리고 회원의 집에서 여덟 사람이 모여 내가 주문한 한국노래와 여러 명곡을 연습했다. 그때마다 나는 피자를 사며 간식을 조달했다. 우리 집에서 불고기를 만들어 장소를 마련할 수도 있었지만, 책의 출간과 함께 나는 온갖 몸살로 좌골신경통까지 엄습한 상태였다. 처음으로 한방 치료와 부황을 뜨며 원활한 행사 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그런데 나흘을 앞두고 장소 변경에 대한 전화가 왔다. 친교 실로 옮긴다는 것이다. ㄴ자로 돼 있는 사무실보다 오히려 잘되었다고 난 말했다. 다음날 또 전화가 왔다. 이제는 친교 실도 안되고 노인회가 금주 내내 이 층 방으로 이사가야한다고 했다. 강당이 없는 이 층은 심란했다. 도대체 방을 이리 가라 저리 가라고 결정하는 분이 누구인가 물으니 목사님이 아니라고 해 난 직접 책임자와 그날 밤 통화를 했다. 여름 성경학교 교장께 내 쪽 사정을 설명하며 친교 실에서 행사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참 좋은 일을 한다며 방법은 친교 실을 반쪽씩 함께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협조하는 대답을 내려주었다.

사실 방이 넓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그분은 한 시간 동안 120여 명의 아이들과 60여 명의 어른이 식사하니 방해되지 않도록 아이들을 잘 보살피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도 밥을 먹으며 만돌린 오케스트라단의 음악을 듣고, 작가의 사인회를 옆에서 볼 수있어 교육적으로도 좋을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연방 목소리로 머리를 조아리는 나를 곁에서 본 남편은 안쓰러워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얼굴은 모르지만, 사려 할 줄 아는 고상한 말투에 기분이 괜찮았다. 그리고 곧바로 노인회장님께 결과를 보고했다.

행사 전 날인 목요일 오전에는 내가 부탁한 벽에 붙일 종이 현수막을 만들었으니 어디에 붙일 것인지 보러 오라고 하여 사무실로 갔다. 그런 후 안심하며 나는 미장원에 가서 파마도 하고 책상에 꾸밀 것들을 사서 집으로 왔다.

또 밤에 전화가 왔다. 노인회장은 "죄송한 말씀을--- . 목사님이--- ." 하는 게 아닌가. 시계를 보니 밤 9시 10분이었다. 나는 연기할 수 없고 행사를 취소한다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심장마비가 일어날 것 같았다. 약속을 지키는 미국연주자들에게는 어떻게 말하며, 신문기사를 보고 오는 분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전화로 내가 초청한 분들도 이십 분이 넘는데.

오밤중에 울먹이며 전화하는 나를 동정하는지 미국인 지휘자는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잠도 밥도 잊은 채 다음 날 아침까지 사과 전화를 걸어야 했다. 행사 날도 주차장에 나가 한 시간 서 있었다. 그리고 목사님도 만났다. 집 없는 서러움만 말하는 회장님. 책임자는 한국어를 잘 몰라 대화가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거짓 같은 말과 아이들을 보호하려니 함께 행사할 수 없다는 목사님.

가능하면 한인사회에 개방하겠다는 건물에서 행사 열네 시간 전에 난 이렇게 취소를 당했다. 미국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과 마음의 피해는 얼마나 큰지 그들은 몰랐을까. 죄송하다는 간단한 몇 마디로 그렇게 쉽게 해결해버리다니.

모처럼 보람있는 일을 하려던 내 꿈은 한순간에 어이없이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여러 사람의 인격을 배울 기회였다. 맥이 빠진 나에게 점심을 사주고 격려해주는 지인들로 용기 내며 집에 돌아와 달라이라마 스님 말처럼 용서하려 해도, 오늘의 이 행사를 기대했던 분들이 더 분노하고 있다.

교육자인 한 제자가 위로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선생님, 개인적, 사회적 책임은 자신의 행위대로 져야 할 것이라며 랭보의 시구 절을 인용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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