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및 불국사·석굴암(29)
[과학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및 불국사·석굴암(29)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4.07.26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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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지구(남남산1)

제2구역 남남산 지역은 남산 답사에서 가장 어려운 구역 중의 하나이다. 답사지 자체는 남산 열암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 남산 침식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2호),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백운대 마애석불입상(지방유형문화재 제206호) 등 4곳에 지나지 않지만 산행을 기본으로 해야 하는데다 남산 여타 지역처럼 답사할 곳이 밀집해 있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어 있으므로 소요시간도 만만치 않다.

또한 오지 중 오지에 있으므로 한마디로 답사에 이력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길을 잘못들 경우가 많아 정확하게 찾아가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수풀이 울창할 때 부정확한 지도를 갖고 이정표로 찾아가려면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정확한 산행 정보를 갖고 답사에 도전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답사 전문안내자의 도움을 받기 바란다. 필자는 경주를 방문하면 경주 남산 곳곳에 산재한 유산들을 찾아보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는데 이곳만은 답사의 어려움으로 미루었다가 경주남산유산의 지킴이와 답사로 개발에 평생을 바치고 있는 <경주남산연구소>의 김구석 소장의 도움을 받아 ‘경주남산지킴이’ 회장인 유정숙 선생과 함께 산행에 도전했다.

남남산에서의 첫 답사지는 남산 열암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이다. 용장골, 약수골을 지나쳐 울산방향으로 가다가 노곡리, 백운암으로 좌회전후 조금가면 백운암으로 들어가는 간판을 보고 좌회전. 계속 산쪽으로 가면 마을을 지나면서 새로 포장한 길이 나온다. 길을 계속 따라 올라가면 주차장과 열암곡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 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알려주는 팻말을 만난다. 비교적 잘 정비된 산길을 20여분 정도 올라가면 높이 108센티미터의 석불좌상이 나타난다.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작은 불상이 현재와 같은 면모를 갖게 되는 데는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석불좌상은 머리가 사라진채 불상 주위에 광배와 대좌가 흩어져 있었는데 문화재지킴이들은 상식적으로 이곳과 같이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도굴꾼들이 불상의 머리만 떼어 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주변에서 사라진 불두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많은 지킴이들이 동원되어 인근을 찾기 시작했다. 이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는데 2005년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의 부인이 석두를 발견했다.

사라졌다고 알려진 불두가 극적으로 발견되자 경주시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복원을 의뢰했다. 불두와 10여 조각으로 깨진 광배, 하대석(下臺石) 조각들을 구조 보강 작업으로 접합 복원하고 대좌의 부재 중 유실된 중대석(中臺石)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불상 형식에 따라 재현해 3단의 8각 연화대좌(蓮花臺座) 위에 당당하고 풍만한 몸체에 광배와 대좌를 제대로 갖춘 높이 4m의 장대한 석불좌상으로 2009년 1월 다시 태어났다.

불신은 화강암의 석불로서는 표면 구조가 매끄럽고 굴곡이 뚜렷한 가슴의 윤곽과 곧게 편 당당한 상체에서 석굴암 조각으로 대표되는 신라 전성기 조각의 여운이 느껴진다. 법의는 통견의(通肩衣, 어깨에 걸쳐진 옷)이다. 오른쪽 어깨에서 드리워진 대의(大衣,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옷) 자락을 바로 내려뜨리지 않고 가슴의 옷깃 속에 살짝 여며 넣었다. 왼쪽 어깨에서 드리워진 옷깃은 중간에서 한 번 접혀져 물결처럼 너울거린다.

양손은 신체 비례에 비해 커서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오른손은 가만히 복부에 올려놓았고, 왼손은 가부좌한 무릎 밑으로 곧게 내려 촉지인을 맺었다. 양팔과 가부좌한 발목에 새긴 옷주름은 층단 또는 융기선으로 입체감을 주었지만 폭이 일정하여 통일신라 후기 조각의 모습을 보인다.

조각이 다소 얕아 유려한 느낌을 주는 앞면과는 달리 뒷면에는 어깨 뒤로 넘긴 옷자락이 간결하면서도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옷자락의 주름은 서로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강한 명암 효과를 가져다 준다. 불상 주위에 무너진 대좌는 강한 입체의 복련(覆蓮,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과 둥글고 부드러운 앙련(仰蓮,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새겨진 전형 형식의 삼단 대좌로 현재 중대석은 없어졌다.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열암곡석불좌상은 석굴암 본존불 이후 남산에 조성된 불상 중에서 우수한 조형성을 간직하고 있는 동시에 광배를 지고 대좌에 앉은 채 남산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흔치 않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열암곡석불좌상이 극적으로 발견되었지만 보다 놀라운 제2막이 일어난다. 남산지킴이들은 신라인들이 이곳에 이 정도의 석불좌상을 만들 정도라면 인근에 다른 석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경우 어딘가에 알려지지 않은 석불들을 찾는 기초적인 방법은 과거 신라인들이 다녔음직한 도로를 찾는 것이다.

현대의 경주인들이 다니던 길이 아니라 신라인들이 다녔음직한 길을 찾자는 것인데 그들의 생각은 옳았다. 2007년 5월 남산지킴이들이 과거의 길을 찾던 중 한 사람이 낙엽 때문에 넘어졌는데 누워서 일어나려고 할 때 무언가 커다란 조각의 흔적을 보았다. 이것이 한국을 놀라게 한 엎드린 형태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80여 톤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대형 마애석불이다. 석조입상이 얼굴이 지면에 노출되지 않아 콧날이 완벽하게 남아있는 코가 암반에 5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채 불상의 콧날까지 완벽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뛰어났다.

문화재청 등 유관기관에서는 곧바로 불상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을 조사했다. 불상을 다시 일으켜 본래 자리에 세운다면 남산의 명물 중 명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기대와는 달랐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불상 복원 작업에 동원된 결과 2012년 80여톤에 달하는 거대한 불상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불상을 일으키기 위해 적어도 150톤 이상의 헬리콥터가 필요한 것은 물론 250㎝ 높이의 불상 중심에 집중적으로 힘을 가하면 부러질 수도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결국 거대한 불상을 일이키는 복원은 포기하고 불상을 그대로 두고 주변 정지 작업을 통해 엎드린 불상 밑으로 관람객들이 들어가 볼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열암곡 석불좌상을 보고 두 번째 길은 남산에서 가장 찾기 어렵다는 침식곡 석불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12호)으로 향한다. 열암곡석불좌상에서 길이 좋은 숲길을 20여분 오르면 봉화대가 나타난다. 서쪽 국경에서 일어난 일은 봉화를 통해 선도산성에 전해지고 동쪽 국경에서 생긴 일은 명활산성에 전해진 후 이어서 왕이 있는 반월성으로 전하므로 왕은 곧바로 대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현재는 봉화대 자체가 사라졌지만 석축을 쌓았던 흔적은 찾아볼 수 있다. 봉화대에서 고위산까지 가는 길목 양옆으로 소나무 숲이 있어 삼림욕으로도 적격이다. 백운재삼거리에서 산정호수 반대편으로 계곡방향으로 내려가는데 산행 전문가야 다소 모호한 길도 준비된 정보에 따라 무난하게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일반 답사자로는 찾는 것이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고 유정숙 회장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여하튼 정확한 길을 찾으면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샘물이 마르지 않고 약수 중의 약수라는 말이 있어 현재도 경주인들이 자주 애용한다는 석수암이 나온다. 석수암을 지나면 찾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석불좌상이 나타난다. 불상 높이 95센티미터의 침식곡석불좌상은 석굴암 본존불의 형식을 이은 신라 말기의 촉지인여래좌상이다.

머리와 광배는 사라졌지만 삼단대좌를 갖추는 등 나머지 부분들은 대체로 잘 남아 있다. 목에 삼도(三道)가 뚜렷하며, 방형의 신체는 부풀은 젖가슴의 윤곽까지 표현하였지만 체구가 빈약하고 조각기법이 투박하여 생동감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대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착용하였지만 옷주름은 금속판을 포개놓은 듯 폭이 넓고 경직된 것처럼 몸매가 다소 빈약하게 보인다.

왼손은 복부 중앙에서 벗어나 오른쪽 옆구리까지 뻗쳐 있으며, 촉지인을 맺은 오른손도 곧게 편 형식이 아니라 무릎을 누르고 있다. 앞면에 비해 뒷면은 왼쪽 어깨 뒤로 넘긴 옷자락이 곧게 흘러내려가다 무릎 쪽으로 굽이친 모습이 뚜렷하고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팔각의 중대석은 동강난 것을 결합한 것으로 모서리기둥인 우주(隅柱)가 조각되지 않아 안정감이 없다는 평을 받으며, 하대석은 꽃잎 내부에 무늬가 없는 소박한 복련좌(覆蓮座)이다. 이 불상은 가슴·등·신체 형태에서 8세기 초 양식이 보이는 것은 물론 직각으로 각이 진 어깨, 계단식 옷주름, 상대석의 연꽃무늬 장식 등을 감안하면 8세기 말 내지는 9세기 초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한다. 참고적으로 남산의 유물들은 기본적으로 정부에서 모든 예산 등을 지원하여 복원하는데 이 불상은 사람들의 소원을 잘 들어주는 등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마을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경비를 부담하여 복원했다고 한다.

남산에서 비교적 찾기 어렵다는 침식곡 석불좌상을 답사했다면 다음 일정은 경쾌하지 않을 수 없다.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을 찾아가기 위해 우선 남산에서 가장 높은 고위산(494)으로 향한다. 고위산 가는 길목에 논이나 밭을 가꾼 흔적은 물론 무덤이 곳곳에 있어 과거에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이곳에서 어렵게 살던 사람들을 경주 인근의 산업시설에서 흡수하여 현재는 단 한 사람들도 살지 않는다고 한다.

고위산 정상에서 멀리 박재상의 혼이 깃든 치술령이 보이는데 사철 아름답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현장에서 보면 실감할 수 있다. 고위산에서 천룡사지를 향해 내려가는데 10여년 이상 고위산 지킴이인 양준호씨가 반갑게 인사말을 건넨다.

오전 9시경부터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소위 고위산 관문을 지킨다고 하는데 워낙 이 산행길로 다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지나가는 사람 모두에게 인사를 전한다고 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만나는 것이야말로 무언가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그런 오지에서 지킴이를 자청하는 이들 덕분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지켜질 수 있다는데 고마움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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