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및 불국사·석굴암(30)
[과학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및 불국사·석굴암(30)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4.08.02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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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지구(남남산2)

고위산에서 천룡사지를 향하는 길은 하산길이지만 다소 가팔라 주의가 필요한데 중도 곳곳에서 금오봉, 용장사지3층석탑, 연화대, 비석대, 이영재 등을 멀리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장관 중에 장관인데 유명한 전설이 깃든 분암(糞岩, 똥바위)도 보인다. 장마 때에는 바위 틈으로 물이 흘러 내리므로 뇨암(尿岩)이라고도 하는데 안내판에 적힌 내용을 보자.

‘신라시대 각간에게 곱고 아름다운 외동딸이 있었는데 그녀에게 수많은 남자들이 눈독을 들었지만 그녀는 시끄럽고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하겠다며 몰래 집을 나서 열반골로 들어갔다. 그녀는 평평한 바위인 경의암에서 금빛으로 수놓은 비단옷을 벗고 잿빛 먹물 옷으로 갈아입고 골짜기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의 향기를 맡고 수많은 맹수들 형상을 한 큰 바위들이 길을 막았다. 바로 고양이, 개, 산돼지, 작은곰, 뱀, 귀신바위 등이다. 이후 큰곰바위, 들소바위, 독수리바위, 이무기바위, 용바위 등이 나타나는데 이들이 있는 계곡을 벗어나면 10미터 정도의 큰 바위 하나가 나온다. 이 바위 위에 한 개의 이상한 돌이 얹혀 있어 마치 누가 대변을 본 것 같아 똥바위(분암)이라 한다. 이곳에서 처녀가 똥을 누었는데 한 지팡이를 집은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녀는 깨우친 사람을 극락으로 안내하는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진리를 깨우쳐 맑고 깨끗한 마음을 얻었으니 열반으로 안내한다며 구름바위에 태워 산등성이를 넘어 천룡사 부처의 세계에 안내하여 처녀는 영원히 열반에 사는 몸이 되었다.’

천룡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이야기도 되는데 처녀가 똥을 누었다는 것은 속세의 모든 것을 내보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때 처녀가 누운 똥이 현재 이상한 돌로 변한 것으로 분바위의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고위산 전설과 기암석들을 보면서 계속 내려오면 경주시 내남면 고위산(高位山) 천룡곡(天龍谷)의 천룡사에 이른다.

천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 말사로, 신라 때 창건되었으나 폐사되었다가 복원된 사찰인데 경내가 무려 20여만 평에 달할 정도로 매우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천룡사는 고사(高寺)라고도 불리는데 천녀와 용녀 두 딸을 둔 부모가 딸을 위해 세웠다고 한다.

천룡사에 대한 전설은 매우 잘 알려지고 있다. 『토론삼한집』에 의하면 계림 땅에 두 줄기의 객수(客水)와 한 줄기의 역수(逆水)가 있어 두 물줄기의 근원이 하늘의 재앙을 진압하지 못하면 천룡사가 무너진다고 했다. 마등오촌(馬等烏村) 남촌을 흐르는 역수의 근원이 바로 천룡사라고 한다. 천룡사가 파괴되면 며칠 안으로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당나라 사신 악붕귀가 말했는데 천룡사는 신라가 몹시 혼란하였던 말기에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천룡사의 3층 석탑도 원래 무너져 있었는데 1989년부터 석탑자리를 비롯하여 주변을 발굴 조사한 결과, 석탑의 위치·방향, 그리고 묻혀 있었던 석탑재들이 확인되어 이들을 수습하고 기단부 일부와 상륜부의 부족한 부재를 보충하여 고증을 거쳐서 1991년 복원한 것이다.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으로 전체 높이는 7m이다. 기단부는 지대석 위에 높직한 2단의 굄을 마련하고 이를 기단 면석과 양쪽 우주(隅柱)와 하나의 탱주(撑柱)가 받치고 있다. 갑석에는 아래쪽에 부연이 있고 위쪽에는 높직한 2단의 굄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석과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옥개석의 아래쪽은 5단의 옥개 받침으로 되어 있고 경사를 이룬 낙수면이 통일신라시대 석탑 특유의 경쾌함을 보여 준다. 이 석탑은 단층기단의 전형을 보이고 있으며 전체의 균형이 잘 이루어져 있어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를 대표하는 석탑이라 평가한다. 현재 보이는 석탑은 전체 부재가 쓰러져 있던 것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수습 복원한 것으로, 1층 옥신이 심하게 훼손되었는데 1층탑신석 상면에 깊이 15cm, 직경 15cm의 둥근 사리공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석탑 옆에 천룡사가 있는데 초가가 있는 ‘남산선당(南山善堂)’이라는 법당과 장독대가 이채롭다. 인근에 부도탑과 석조, 대형 맷돌이 보이는데 유정숙 회장이 다소 특이한 형태의 석물을 가르키며 무엇으로 보이냐고 한다. 외부 형태로 보아 비석이 사라진 귀부가 아니냐고 말하자 상부의 형태로 보아 불경을 새긴 당석(幢石)을 꽃은 윤장대(輪藏臺)로 추정한다고 한다.

윤장대는 책장의 일종으로 불교에서는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윤장 또는 전륜장(轉輪藏)·전륜경장(轉輪經藏)이라고도 하는데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의지하여 원형 또는 다각형의 나무장을 올린 뒤 여기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다.

윤장대는 글자를 모르거나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신도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불구로, 중국 양(梁)나라의 선혜대사가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윤장대를 돌리는 것이 부처가 설법하는 것을 진리의 바퀴를 돌린다고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식한다. 예천 용문사의 대장전 전각내 좌우에 있는 팔각형 윤장대는 보물 제684호로 지정되었고 논산시 관촉사, 강화도 보문사, 진천군 보탑사 등에 있는 윤장대가 유명하다.

천룡사에서 하산길에 백운암이라는 조그마한 암자를 만나는데 놀랍게도 부처의 치아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며 친견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에 6곳의 사찰(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 강원도 건봉사)에 석가의 진신사리가 있다고 하는데 작은 암자인 백운암에 진신사리가 있다는 말에 성오(性悟) 스님에게 연유를 물어보았다. 경과는 이렇다.

2005년 스리랑카에서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백운암에서 많은 지원을 했는데 백운암의 주지인 백운 스님이 스리랑카의 ‘불치사’에 3과의 부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으므로 이들 중 한 개를 받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기꺼이 그 중 1과를 기증했다는 설명이다. 강원도 건봉사에 석가의 치아사리가 있다고 알려지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건봉사에 보관되어 있는 치아사리는 석가의 치아 자체이고 백운암의 치아사리는 치아가 아니라 사리라고 한다. 불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온통 불교유적으로 감싸 있는 남산에서 석가의 진신사리를 친견할 수 있다는데 남다른 경외감을 느낄 것이다.

<사리의 과학성>
불교의 대표적인 상징물로는 탑ㆍ불상ㆍ불경ㆍ사리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 사리라고 할 수 있다. 사리는 본래 ‘신체’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Sarira’에서 유래했는데, 이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여 사리라(舍利羅)라고 하였다가 줄여서 사리라 부르는 것이다. ‘몸’을 의미하는 사리라는 복수형으로 되면 신골, 유골이라는 뜻을 가지므로 사리는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리의 수습 절차는 다비(茶毘)의 마지막 의식에 해당한다. 다비란 불교계의 장례법으로 정착한 화장의 팔리어 원어인 ‘자피타’(jhapita)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이다.

사리는 다비전의 전신사리(全身舍利)와 다비 후의 쇄신사리(碎身舍利)로 구분되는데, 다비 후 나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은 쇄신사리를 뜻한다. 사리는 크기도 다양하지만 색깔도 황금색, 검은색, 붉은색, 흰색 등이 뒤섞여 영롱한 빛깔을 띤다. 한편 석가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진신사리라 하는데 한국은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 6곳이나 된다.

신라의 자장법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갖고 왔다고 알려지는데 현재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 금강산 건봉사이며 앞에 설명한 남산의 백운암에서도 석가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고 설명된다. 이들 사찰에서는 불상을 안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대 고승 가운데 사리가 나온 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1993년 조계종 성철스님의 다비식에서 200여과에 달하는 사리가 나왔다고 발표되었는데 이 숫자는 석가모니 이래 가장 많은 사리라고 알려진다. 반면에 공덕이 많은 스님 중에는 입적 후 자신의 사리를 수습하지 말도록 명하기도 한다. 2010년 3월에 입적한 법정스님은 자신의 몸에서 사리를 찾지 말라하여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고 은허 스님은 법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있지 사리에 구현된 것은 아니라며 자신의 입적 후에 사리 수습을 못하게 했다.

그러나 불교계에서 발표하는 사리에 대한 내역을 보면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조선에 많은 사리가 있었다는 것은 조선 초기 태종의 척불 사건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명나라의 황제가 조선에서는 숭불(崇佛)을 하지 않으니 보관하고 있는 사리를 거두어 달라고 요구했다.

태종은 각 도에 관리들을 파견하여 각 사찰이 보관하고 있는 사리를 거두었다. 충청도에서 45매, 경상도에서 164매, 전라도에서 155매, 강원도에서 90매, 도합 454매이다. 태조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사리 303매를 더하여 757매를 중국에서 온 사신 황엄(黃儼)에게 전해 주었다. 태종 7년(1407) 5월의 일이다.

위의 예를 보아도 한국에서 발견되는 사리가 많았음을 알 수 있는데 불교계에서는 그만큼 사리가 나오는 고승이 많았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석가의 진신사리라고 알려진 것만 해도 그 양이 너무 많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므로 불교계에서 신앙심 고취를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리를 비밀리에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리에 대한 의구심은 사리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실 이 질문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사리가 일반적으로 불교라는 종교에 접목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설명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현재로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사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자료가 많지 않으므로 모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리에 대한 궁금증을 현대 과학자들이 그대로 둘리 만무이다.

제일 먼저 조개가 만드는 천연진주와 같은 역할이라는 설이 있다. 조개의 몸 안에 모래알, 알, 기생충 같은 것이 들어가면, 진주층과 같은 물질인 진주질(眞珠質)로 이것을 둘러싼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을 천연 진주라고 한다. 진주가 생기는 상세한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았으나 진주질을 분비하는 외투막의 세포가 조개의 몸 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싸서 펄색(Pearl sac)이라는 자루 모양의 조직을 만들어 그 둘레에 진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 생기는 사리를 진주가 생기는 것과 유사하다는 해석은 한 사람의 몸에서 수많은 사리가 생기는 것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리를 몸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종의 담석이나 결석으로 파악했다.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부분 유기물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생명현상과 관여하는 물질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들 유기물질은 다비식과 같은 고온의 불길에서는 모두 연소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불길 속에서도 남을 수 있는 것은 무기물로 이루어진 뼈와 약간의 칼슘 성분으로 구성된 오색영롱한 사리뿐이라는 설명이다. 의학계에서는 정좌한 채 몇 년씩 움직이지 않고 수행하는 스님들은 영양상태도 좋지 않고 신진대사가 원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석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리가 결석이라는 설명의 문제점은 생시에 매우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사리가 나온 스님은 모두 입적하기 전까지 결석으로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었다. 성철 스님의 경우 목 부위에서 나온 수많은 사리가 나왔는데 이들 모두 결석이라면 거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정액 축적설도 있지만 그것도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 정액 축적설은 성생활을 하지 않고 참선으로 평생을 수행한 스님을 화장할 때 사리가 나온다고 알려진 통설인데 여승이나 평범한 불자로부터 다량의 사리가 나온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사리가 수습되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면 사리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과학자들은 인체에서 추출한 유기물이나 무기물을 고열로 처리해보면 무언가 단서가 잡힐 수 있지만 실험을 해 봐야 사리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반면에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사리를 굳이 과학적으로 분석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사리에 대한 분석이 사리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믿음에 손상을 줄 것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드디어 사리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도되었고 인하대의 임형빈 박사가 <백금요법연구회>로부터 사리 1과(顆)를 분석하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회는 1993년말 입적한 경기도 평택 모 사찰의 한 고승으로부터 수습된 사리 2과를 제공받아 이를 임형빈 박사에게 제공했다. 그 고승은 사후 사리가 나오면 이를 유용한 일에 써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임 박사는 제공받은 2과의 사리 중 1과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름 0.5센티미터 정도의 팥알 크기 사리에서 방사성 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 리튬(Li)을 비롯하여 티타늄, 나트륨, 크롬, 마그네슘, 칼슘, 인산, 산화알루미늄, 불소, 산화규소 등 12종이 검출되었다. 사리의 성분은 일반적으로 뼈 성분과 비슷했으나 프로트악티늄, 리튬, 티타늄 등이 들어있는 것이 큰 특징으로 사리의 굳기 즉 경도는 1만5000파운드의 압력에서 부서져 1만2000천 파운드에서 부서지는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특히 결석의 주성분은 칼슘, 망간, 철, 인 등으로 되어 있으며 고열에 불타 없어지며 경도도 사리처럼 높지 않아 사리는 결석이 아니다.’

단 한 과(顆)의 사리를 분석한 것이지만 임 박사는 사리가 결석이라는 주장을 단호히 배제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뼈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프로트악티늄, 리튬, 티타늄 등이 발견되고 사리의 강도가 강철보다도 단단했다는 점이다. 프로트악티늄(용융점 1600도), 티타늄(용융점 1727도)은 고온에서 녹는 물질이지만 리튬(용융점 186도) 등은 저온에서 녹으므로 발견되지 않는 것이 상식(다른 원소와 결합되면 고온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고 알려짐)인데도 발견되었다.

특히 방사성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 등이 검출되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방사선원소를 상온에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불교계에서 사리라고 발표되는 것에는 그 어떤 신비가 들어있음이 틀림없다는 설명이지만 미래 어느 날 인간의 지혜는 이런 미스터리도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을지 모른다.

천룡사를 거쳐 백운암까지 하산하는데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서 오히려 답사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적으로 천룡사는 고위산에서 내려오는 길도 있지만 용장3리에 있는 틈수골에서부터 올라가는 길이 최단길이다.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지나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길이는 1킬로미터 남짓이므로 천룡사만 방문할 때는 이 길을 추천한다.

남남산에 속하지만 백운대 마애석불입상(지방유형문화재 제206호)은 앞에 설명한 세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하므로 별도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의 백운대(白雲臺) 부락 동쪽 마석산(磨石山, 531미터) 정상 아래에 있는데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이정표만 따라가면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높이 7.28m, 너비 6m 가량의 각형암벽(角形岩壁) 위에 원형으로 파고 새긴 높이 4.6m에 달하는데 통일신라시대에 널리 사용되던 당척(唐尺)으로 환산하면 약 16자에 해당하므로 장육불상(丈六佛像)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의 미완성 석가여래입상으로 얼굴은 이목구비와 함께 코 밑의 인중선과 귀의 세부 굴곡까지 완벽하게 조각되어 있다. 머리는 민머리(素髮)이고 육계는 지나치게 커서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방형의 얼굴은 살찐 모습이며 입을 꼭 다물고 눈꼬리가 날카로운 두 눈은 반쯤 뜬 형태여서 굳은 표정을 지었다.

도식적인 모습의 두 귀는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굵은 삼도(三道)가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을 걸친 듯하며, 왼쪽 팔목에 세 가닥의 층단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수인(手印)은 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이며, 살찐 어깨와 가는 허리 등에서 전체적으로 풍만한 신체를 표현하려고 의도했음을 알 수 있다.

신체는 윤곽만 조각했을 뿐 옷자락의 윤곽과 옷주름은 아직 조각하지 않았음을 볼 때 먼저 대체적인 신체 윤곽을 잡은 뒤 얼굴을 완성하고 그 다음에 손의 세부를 조각한 뒤 마지막으로 옷주름을 조각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미완성 마애불은 화강암 마애불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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