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이주 150주년 특별연재-27] 고려극장의 전성기
[고려인 이주 150주년 특별연재-27] 고려극장의 전성기
  • 한국외국어대학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
  • 승인 2014.08.0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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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고급당학교를 필한 조정구가 탈듸-쿠르간주 카라탈구역 당위원회의 추천으로 카자흐공화국 문화성에 의해 고려극장 총장(단장)으로 임명됐다. 조정구의 고려극장과의 인연은 1930년대초에 배우였던 사촌형(조정호)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시작됐고, 구역 당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 근무하며 고려극장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극장의 총책임자로서 극장사업에 대한 직업적, 전문적 지식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으며, 1948년 문화성 파견으로 레닌그라드에서 극장총장강습을 받으며 극장사업에 보다 깊은 이해를 갖게 됐다.

조정구의 제의에 따라, 1955년에는 엔. 오스트로프스키명칭 타쉬켄트극장예술대학에 조선배우과가 개설됐고, 소비에트 희곡 및 해외의 우수한 희곡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졌으며, 무엇보다 연기 및 음악적 재능이 우수한 전문적인 인재들이 많이 양성됐다.

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의 <조선가무단>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는 경연극단 <아리랑가무단>이 조직됐다. 극장단장 조정구의 창의적이고 감각 있는 극장운영은 극장활동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1980년대까지 고려극장의 공연예술활동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어 나가는 원동력이 됐다.

1950~80년대를 거치며 고려극장은 최고의 전성기를 달렸다. 극장의 물적, 인적, 내용적으로 확대되고 다양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변화 또한 적지 않았다. 1959년 탈듸-쿠르간주의 우쉬토베에 있던 고려극장이 크즐오르다주로 이전됐다.

창작예술활동에 있어서 <레닌기치> 신문, 한인라디오방송과의 보다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함이 주요 목적이었다. 1960년 여름에는 고려극장 발전사에 한 획을 긋는 경사가 있었다. 엔. 오스트로프스키명칭 타쉬켄트극장예술대학을 졸업한 김블라디미르, 박소피야, 송올가 등, 12명의 제2세대 젊은 배우들이 고려극장에 배치되면서, 기존의 선배배우들과 호흡을 같이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2세대 배우들의 가세로 극장은 젊어졌으며, 힘과 활기가 넘쳐났고, 더 수준높은 공연을 보여주고자하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한편 1969년에 크즐오르다의 고려극장은 다시 알마타로 이전됐다. 이는 배우들의 전문적인 수준을 함양하고, 카자흐민족의 우수한 극장배우들과의 밀접한 예술적인 관계교류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1975년 들어서 고려극장은 다시한번 경사를 맞이했다. 쿠르만가식명칭 알마타예술대학을 졸업한 진블라디미르, 최메리, 김학연, 김갈리나 등, 14명의 제3세대 젊은 배우들이 충원된 것이다. 이제 명실상부하게 고려극장 내에는 채영, 연성용, 태장춘, 김진 등 1세대 배우들과 함께 총 3대의 한인배우단이 활동을 하게 됐고, 극장의 공연프로그램 및 사업도 더 확대됐다.

고려극장 배우단의 규모성장은 극장공연 프로그램과 사업의 다양화로 이어졌다. 고려극장의 주요 공연활동은 도시의 극장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지방순회공연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특히 고려극장의 주요 활동사업 중의 하나였던 순회공연은 연극단과 가무단에 의해서 수행됐고, 사전에 <레닌기치> 신문을 통해서 공연광고를 했다.

고려극장 내에 조직된 <아리랑가무단>은 카자흐공화국, 우즈벡공화국을 비롯한 주변의 중앙아시아 공화국들과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키예프, 백러시아 등의 발트해 국가 등지를 다니며 순회공연을 했다. 순회공연은 자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소련문화성의 지시에 의해서도 기획됐고, 적게는 1-2개월에서 길게는 10여개월에 걸쳐서 수행됐으며, 조선민속춤과 조선가요를 공연했다.

특히 카자흐공화국 공훈배우인 김 블라디미르의 노래와 이 림마의 조선춤은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리랑가무단>은 1년에 총 130회정도의 순회공연을 가졌고, 매해 8만명 이상의 관객들이 관람할 정도로 호응이 컸다. 연극단 또한 해마다 130회 이상의 순회공연을 가졌고, 매해 8만명 이상의 관객이 동원될 정도로 순회지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극장 창립 40주년에 즈음해서는 태장춘 각색, 채영 연출 <흥부전>, 김 이시오프 연출 <지주와 머슴>, <가정희극>과 같은 작품들이, 극장창립 40주년에는 김지마 작 <희망의 오솔길>, 오라스베크 보드이코프 작, 이길수 역, 채영 연출 <까라꿈의 비극>, 전동혁 작, 김 이시오프 연출 <온달과 공주> 등의 작품들이 연극단의 순회공연을 통해서 공연됐다.

이 공연에는 이장송, 이용수, 송올가, 김블라디미르 등의 배우들이 참여했으며, 3개월에 걸쳐 우즈벡공화국의 여러 도시들에서 공연됐다. 또 1982년 극장 창립 50주년에는 <춘향전>, 한진의 <산부처>, <토끼의 모험>, 태장춘의 <38선이남에서>가 모스크바에서 공연됐다. 순회공연은 도시와 농촌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이루어졌다.

순회공연단이 들어오는 날은 바로 지역민들에게 가장 큰 명절과도 같았고, 어린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공연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특히 농촌지역 콜호즈민들과의 접촉은 공연배우들과 관계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진실하게 반영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1982년 고려극장은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많은 극장관계자와 배우들, 극작가, 연출가들이 우즈벡공화국과 카자흐공화국 당국으로부터 공훈예술가(채영, 태장춘, 연성룡, 강게오르기, 조정구), 인민배우칭호(김진, 이함덕, 이장송), 공훈배우칭호(최봉도, 이경희, 이응수, 이길수, 김호남, 박춘섭, 송올가, 박마이야, 김 블라디미르 E, 문알렉산드르, 김 블라디미르 A.), 노력적기훈장(1명), 영예표식훈장(5명), 카자흐공화국 최고소비에트 영예표창장(20명)을 받았다. 특히 김진, 이함덕, 이장송, 이길수, 최봉도, 박춘섭, 이용수, 이경희, 김호남 등은 민족예술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높은 수준의 연기를 보여주어 왔다. 이들의 진솔한 연기는 김블라디미르, 박마이야 등의 2세대 연기자들에게 이어져 계속적인 민족예술의 꽃을 피우게 만드는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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