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時論] 아사히의 용기와 언론의 사명
[전대열時論] 아사히의 용기와 언론의 사명
  • 전대열<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 승인 2014.08.1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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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매우 심각한 관계로 점철되어 왔다. 한국은 삼국시절부터 문화적으로 일본에 비해서 단연 우월한 입장에 있었으며 특히 왜국과의 문화교류와 친선이 돈독했던 백제에서는 왕인(王仁)박사를 파견하여 한자를 전하고 찬란했던 백제문화를 전수했다.

왜국으로 부른 당시의 일본은 지방곳곳으로 흩어진 무장 세력들이 분열되어 있을 때였다. 풍신수길에 의해서 거대한 통일제국을 형성한 것은 오랜 세월을 거친 후 한반도에서 고려가 망한 다음 조선이 건국한 후다. 다행히도 일본은 아직까지도 왕인박사의 은덕을 잊지 않고 그를 일본문화의 시조로 떠받들고 있으며 해마다 유덕을 기리는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것은 침략과 약탈 그리고 피로 물든 일본의 역사를 포근하게 감싸주고 세계를 향하여 “우리도 문화국이다”라고 큰소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왕인박사가 만들어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오늘날 일본이 떨치고 있는 세계 선진국 진출은 왕인박사의 문화전수가 없었다면 훨씬 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처럼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근원적인 큰 은혜를 입었고 그 뒤에도 계속적으로 문화혜택을 받아왔다. 그러면서도 통제되지 않는 일본해적들은 대마도를 중간기지로 삼아 걸핏하면 남해안 일대를 침범하여 노략질을 그치지 않았다.

요즘 일본 정치지도자와 우익세력들이 역사교과서까지 왜곡해가며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꼴값을 하고 있는데 대하여 한국에서도 ‘대마도는 한국 땅’이라고 맞불을 놓는 수가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상당한 근거가 있다. 왜놈 해적들의 등살에 생업을 망쳐버린 남해안 어부들이 조정에 탄원서를 냈다.

물론 경상관찰사의 장계(狀啓)를 통해서다. 이때의 임금이 세종대왕이다. 그는 집현전을 통하여 백성들의 무지를 일깨우고자 한글을 창제했고, 천재 과학자 장영실로 하여금 측우기 등 온갖 발명품을 만들게 하여 획기적으로 국력을 신장시켰다. 해적을 소탕해달라는 아우성에 대마도를 정벌한다.

대마도는 일본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사실상 독립국이나 다름없이 해적기지로 쓰였기 때문에 조선군대가 점령한 후 1년여 동안 조선식민지가 되었다. 당시 조선 땅으로 편입했더라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조선 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어서 남의 땅을 넘보는 흉측한 행위를 자행하지 않았다.

세종대왕이 평화를 추구하는 백의민족의 기치를 잠시 내려놓고 힘이 있을 때 대마도를 삼키고, 육진(六鎭)을 개척하면서 고구려 옛 땅인 만주일대 봉금(封禁) 지역까지 모두 편입했더라면 오늘날 한국의 영토가 이처럼 쪼그라들진 않았을 것이라는 꿈 아닌 꿈을 꾸게 되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심정에서다.

이런 역사적 연유를 가진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날쌔게 서양문물을 받아드리면서 일취월장(日就月將) 군사강국으로 돌변한다. 쇄국정책으로 서양문명을 거부한 조선은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단번에 까뭉갠다. 여세를 몰아 미국과의 태프트·가쓰라 밀약으로 조선지배권을 획득하며 강점·합병에 착수했다.

조선조정은 뒤늦게 문호를 개방하고 미국 독일 러시아 등의 외교사절을 받아드리고 통상조약을 맺었으나 일본의 기득권을 꺾기는 어려웠다. 조선민족은 일본의 내심을 간파하고 전봉준장군이 동학혁명을 일으키고, 안중근의사가 이등박문을 총살하는 등 치열하게 저항했지만 이완용 등 매국노에 의해서 강제합병을 당하게 된다.

합병 후에도 3.1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6,10만세운동 등 전 민족이 궐기한 거대한 항일의 불길이 일어났지만 잔인한 총독부의 총칼 앞에 수만 명의 희생자가 속출했다. 일본은 조선민족의 교육을 철저히 차단하고 지하·산림·미곡자원을 깡그리 쓸어갔다.

주식인 쌀 생산의 곡창지대인 군산항과 목포항은 쌀을 일본으로 빼내가기 위해서 거대한 곡물창고를 짓기도 했다. 전쟁물자로 각 가정의 숟가락과 요강까지 훑어갔으며 젊은 청년을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어린 처녀들을 강제로 납치하여 군대 성노예로 삼았다. 지금까지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사안이 이른바 ‘위안부’문제다.

일본 아베정권은 이를 부인하면서 사과와 보상을 거부한다. 이에 대하여 일본 최대의 신문인 아사히(朝日)에서 이틀에 걸쳐 5개 면을 할애하여 일본정부의 오류를 대대적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군대 위안부는 일본군 점령지역에서 강제로 납치한 인권유린으로서 세계 각국의 지탄을 받고 있음을 직시하고 일본이 진정한 선진문화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특집을 발행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우익신문 요미우리와 산케이는 아베의 입노릇에 충실하여 혐한(嫌韓)시위를 부추기는 등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내팽개치고 아사히 때려잡기에 앞장섰다. 아사히가 일본국내에 안주하려면 그들과 똑같이 하면 된다. 그러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용감하게 인권과 문화를 지향한 것은 참다운 언론의 진면목을 보여준 일이다.

한국에서는 이를 격려해야만 한다. 한국에는 서울평화상, 삼일문화상, 인촌상, 삼성문화상 등 굵직굵직한 상들이 많다. 아사히 언론인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내며 한국에서도 그들에게 큰 상을 수여하여 진실을 찾는 용기를 격려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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