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52] 난쟁이―피그미족
[삼강만평(三江漫評)-52] 난쟁이―피그미족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4.08.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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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프리카에 피그미(pygmy)란 민족이 있다. 아프리카 중부 콩고공화국 동북쪽·동남쪽, 카메룬, 가봉 등지의 깊은 산속의 우림지대에서 생활하는 원시민족이다. 8세면 성인이 되어 결혼하며 30세 좌우면 수명이 끝나 인생을 마감한다. 엄격한 일부일처제이므로 가족구조로 보면 원시민족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적절치가 않다.

가장 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것은 그들은 난쟁이 인간으로서 키가 평균 130cm좌우이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서 갑자기 솟아난 인간들일까? 그들도 지구상의 인류와 같이 수십만 년의 유인원 역사와 수만 년의 인류 야만 시대의 역사를 겪은 인간들일까?

사실 필자의 난쟁이 인간에 관한 접촉은 피그미가 처음이 아니다. 영국 추리소설가 A·C·도일의 작품 <주홍색의 연구>(중국어 번역본은 <셜록홈즈의 탐정소설집>)에 등장한 주인공인 유명한 탐정가 셜록홈스가 머리에 떠오른다. 필자는 어릴 때 셜록홈즈에 관한 소설을 얼마나 즐겨본지 모른다. 반복 읽고 또 읽어 지금도 머리에 생생하다.

그 탐정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해적이 보물을 횡령해먹은 동료 해적 원수를 추적하여 끝내 죽여 버린다. 그는 남양군도(南洋群島)의 토착민을 데리고 다녔는데 키가 130cm 좌우인 난쟁이이다. 그 난쟁이를 시켜 창문에서 남양군도 특산인 독이 있는 식물 가시를 입김으로 불어 원수의 귓바퀴를 맞혀 죽였다. 1백 수십 년 전 남양군도에 난쟁이 인간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몇 년 전 중국에서 출판된 <중국민족백과전서(中國民族百科全書)>라는 책의 대만 고산족 권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약 200년 전까지만 해도 대만에 키가 130cm좌우인 난쟁이 인간이 살고 있었는데 후세에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상기 두 가지 기록을 통하여 필자는 남양군도에 난쟁이 인간이 산 적이 있으며 약 200년 전에 멸종되었다는 결론을 지었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을 통하여 난쟁이 인간은 아직 아프리카에 생존해 있으며 심지어 호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도 생존해 있음을 알았다.

즉 이 난쟁이 민족은 남양군도·동남아로부터 아프리카 대륙에 이르는 광활한 적도일대에 분포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없었다. 3,500년 전 갑골문으로부터 근세에 이르는 중국 고서에 이런 인간에 관한 기재가 없으니 말이다.최근 몇 년간 인류유전공학은 비약적인 성과를 이룩했다. 가장 돌출한 성과는 지금 지구촌의 각 지역에 사는 인류의 발원지는 아프리카라는 것이다.

약 12~14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의 인류가 지구의 기타지역으로 점점 확산하여 오늘날의 60억을 초과하는 전 세계의 인류를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중국인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깎아내리고 있다. 북경 서남 주구점(周口店)에 약 50만 년 전의 ‘북경원인’이 살았었는데 그들이 바로 동아시아대륙 인간의 선조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지금 동아시아의 인종은 12~14만 년 전 아프리카로부터 왔다고 하지 않는가? 유전공학은 과학이므로 믿어야 하겠지만 50만 년 전의 북경원인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인류 아프리카 유래 설을 주장하는 중국학자들은 북경원인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그사이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50만 년 전의 북경원인의 후손이 동아시아대륙의 인류이며 그들은 키가 130cm좌우의 난쟁이였다. 고대 아프리카 인종은 키가 165cm좌우이다. 그들이 동아시아로 침입해 와서 원주민을 다 학살하여 지금의 동아시아 인간은 다 아프리카 인종으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원주민에 난쟁이 피그미족이 있으니 필자의 생각도 문제점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아프리카 유래설과 대립인 학자들은 북경원인에 대한 깊은 연구를 거쳐 지금의 동아시아인간은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북경원인의 직접적인 후손이라는 증명을 하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북경원인의 가장 중요한 문물―5개의 두개골을 잃어버렸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은 두개골을 미국에 옮겨다 보존하기로 했다. 1941년 12월8일 기차에 싣고 진황도까지 운반했다가 일본군에게 빼앗겼다. 73년간 온갖 노력을 하였지만 아직 못 찾고 있다.

약 10년 전 한국의 한 사람이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중국에서 약탈한 수없는 보물을 군함에 싣고 일본으로 가다가 미군이 동해를 봉쇄하는 바람에 부득불 부산 문현동의 일본인의 옛 어뢰공장 지하에 묻어놓았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필자는 북경원인의 두개골이 그 안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중국의 북경원인 사무실에 알린 적이 있다. 해당 사무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정보라며 필자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중국 및 동아시아인의 자존심과 연결된 중요한 문물 북경원인 두개골이 발견되기를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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