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55] 중국 역사의 3대 현안과 고구려문제
[삼강만평(三江漫評)-55] 중국 역사의 3대 현안과 고구려문제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4.10.17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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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 있었나, 아니면 계란이 먼저 있었나?’ ‘닭이 먼저 있었다’―‘틀려, 계란이 없이 어떻게 닭이 생기나?’ ‘계란이 먼저 있었다’―‘틀려, 닭이 없이 어떻게 계란이 생기나?’

누구나 어릴 때 이런 쟁론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릴 때는 닭 편 또는 계란 편이 되어 신바람이 나게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다가 나이가 들면 점점 삭아 없어지기 마련이다. 중국 역사문제에도 위의 닭·계란의 쟁론처럼 영원토록 결말을 얻기 어려운 3대 현안이 있다. 단대(斷代) 문제, 농민봉기문제, 민족모순문제가 그것이다.

이른바 단대라는 것은 중국은 어느 시대에 노예사회로부터 봉건사회로 진입했는가이다. 대체로 춘추 봉건설, 전국 봉건설, 양한 봉건설, 위진 봉건설 등 4가지가 있다. 누구나 자기의 주장을 원만하게 내세울 수 없고 또한 누구나 다른 사람의 주장을 철저하게 부정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장래에도 원만한 결론을 내리기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 역사학 대가 곽말약이 전국 봉건설을 주장하니 그렇겠거니 하고 새로운 역사자료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다시는 쟁론을 벌이지 말기로 의견을 모았다.

소위 농민봉기문제는 중국역사상 수없이 많이 일어난 농민봉기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는 문제이다. 긍정론자는 농민계급이야말로 중국봉건사회의 피압박계급, 혁명계급이며 중국역사를 발전시킨 주인공임을 주장한다. 모택동도 이런 주장의 대표인물 중 한 사람이다.

부정론자는 지주계급 및 그의 통치를 반대해 일어난 농민봉기가 승리했댔자 다시 지주계급, 심지어 황제로 되어 농민계급을 착취, 압박하는 것으로 그쳤는데 피압박계급, 혁명계급이 무슨 말이냐이다. 주원장이 농민봉기의 힘을 입어 원나라를 뒤집어 업고 명나라를 세웠지만 황제가 되어 다시 농민계급을 잔혹하게 압박 착취하는 대표인물로 되지 않았나가 가장 정형적인 예이다.

모택동은 <중국혁명과 중국공산당>이란 문장에서 ‘중국의 봉건사회에서 농민계급의 계급투쟁, 농민봉기와 농민전쟁이야말로 역사발전의 진정한 동력이다’라는 말을 했다. 농민봉기 문제도 이 선에서 선을 긋고 더 쟁론하지 말자는 약속으로 끝냈다.

세 번째의 민족문제는 중국역사상 같지 않은 민족 간의 싸움을 어떻게 보는가이다. 서로 다른 나라간의 싸움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같은 중화민족 내부의 갈등으로 보아야 하는가이다. 만약 나라간의 싸움으로 보면 중국 역사의 본위성에 문제가 생기며 현 정치에도 불리하다. 내부 갈등으로 보면 허다한 당시 역사문제를 설명하기 어렵다.

송나라 장군 악비는 금나라 침략군을 크게 격파하고 승승장구로 나아갔지만 투항파 진회의 밀모와 모함으로 살해됐다. 중국역사상 절세의 애국자로 칭송돼 왔다. 그러나 금과 송의 전쟁을 같은 나라 안의 민족모순으로 취급하면 탁월한 애국자 악비도 애족자로 전락돼 버리고 만다. 좀 더 과장해 발하면 중화민족의 대통일을 거역한 부정인물로 돼 버리기 쉽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 문제도 역시 더 쟁론하지 말기로 약속했다.

이상이 중국 역사문제의 3대 현안이다. 중국학자들은 상기의 문제에 봉착하면 멈춰버리고 만다. 한국의 역사문제를 연구할 때도 이와 유사한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처리되는지 궁금하다. 이를테면 고구려, 신라, 백제 3국간의 전쟁에서 희생된 영웅을 어떤 성격으로 취급하는가? 동학당과 같은 농민봉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한국은 어느 때부터 봉건사회로 진입했는가 등이다. 그리고 중국사를 연구하는 한국 학자들도 물론 이런 무의미한 시비를 파고들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역사 현안의 세 번째 문제는 한국과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면 수나라, 당나라의 고구려에 대한 전쟁은 대외침략전쟁이 아니라 중국 내의 내전으로 돼 버린다. 고구려의 반침략전쟁도 중앙정부와 나라의 통일에 거역한 범죄 행위로 전락되고 만다.

참 황당하기 그지없다. 2000년 10월 중국정부가 이와 같은 주장을 내놓고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을 시작하였다. 한국과 북한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15년간 논쟁을 해 왔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구려를 중국은 중국대로 중국역사에 편입시키고, 한국은 한국대로 한국사에 편입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국정부의 임시대책이라고 한다.

한국 모 학회에서 고구려 문제의 포럼을 개최하는데 필자더러 참가해 발언해달라고 하여 중국역사의 삼대현안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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