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57] 북경의 공기
[삼강만평(三江漫評)-57] 북경의 공기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4.11.13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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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가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긴 후 불·도·음양의 풍수 대가 셋을 불러 황제의 무덤자리를 찾으라고 부탁했다. 셋은 중국의 방방곡곡을 누비다가 북경 창평현 천수산 기슭을 점찍었다고 한다. 바로 지금 명나라 13명 황제의 왕릉 십삼릉(十三陵)이 위치한 곳이다. 셋이 제각기 행동했는데 같은 곳을 지목하였으니 경악할 일이다.

이 전설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사실 북경은 풍수가 좋은 고장이라고 할만하다. 필자는 북경에서 37년간 살았지만 아무런 자연·지각의 재해도 없고 봄에 황사가 좀 불 따름이다. 그러나 이젠 이 말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된 듯하다. 북경의 공기가 문제다.

필자의 고향마을은 삼면이 산인 분지이다. 어릴 때 아침에 뒷동산에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면 밥 짓는 연기가 그윽하여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전 9시경이 되어야 연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마을이 말끔히 보인다. 약 서너 시간 매연의 이불을 덮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북경은 맑은 날에도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북경에서 5년간 등산한 경력이 있다. 북경 근교에 산이 없으므로 버스를 타고 1~2시간 나가야 등산을 할 수 있다. 반시간 나가면 하늘이 푸를까 말까, 한 시간에 80킬로 정도 나가야 하늘이 푸르다. 즉 북경 도심 사람들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먼지, 매연 등의 이불을 덮고 사는 셈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지금 아예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

문제는 필자가 등산할 때(10년 전)도 이젠 옛날이다. 지금은 그놈의 진절머리 나는 스모그가 문제다. 이전에는 매년 11월 중순쯤에 스모그가 며칠간 살짝 있을 정도인데 지금은 늦가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의 거의 절반은 스모그날이다. 북경 도심뿐만 아니라 북경의 외곽까지, 심지어 어떤 때는 북경, 천진, 석가장을 연결한 광활한 지역에 모두 스모그가 낀다고 한다. 명나라 풍수 대가들이 600여년 후를 내다보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스모그가 어느 정도로 심한가? 스모그 때문에 “버스를 타고 천안문 앞을 지나는데 천안문이 안 보인다”, “손에 애완용 강아지 끈을 쥐었지만 강아지가 안 보인다”, “노점에서 아침요기를 하려고 든 돈 안의 모택동 사진이 안 보인다”…. 좀 과장된 면이 있지만, 북경시민들은 불만이 많다.

스모그는 공기 중에 매연, 먼지 등 오염물질이 물 미립과 부딪쳐서 생기는 것이란다. 과학을 잘 모르는 필자는 항상 의문을 품어왔다. 스모그는 곧 안개이며 오염물질과 관계없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일종 천기 현상이므로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등등. 그러나 요즘 필자의 생각이 오류임이 증명됐다.

아태경협조직(APEC)은 제22차 회의를 스모그 확률이 가장 높은 11월에 북경에서 개최했다. 그런데 회의 전후의 약 보름간 북경의 공기는 기막히게 쾌청했다고 한다. 도심에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시민의 답답하고도 꽉 막혔던 가슴도 풀렸고 심정도 퍽 유쾌해졌다고 한다. 땅 속의 명나라 황제들도 기를 폈을 것이다. 최근 10여 년간 없었던 기적이 일어났다.

좋은 공기를 위해 중국정부가 한 엄청난 노력을 알면 깜작 놀랄 것이다. 자동차는 1주 전부터 짝·홀수에 따라 격일로 운행을 했고, 11월1일부터 1주간 대부분 업체를 연휴시켰다. 6월부터 북경지역 및 천진, 하북, 내몽고, 산서, 산동 등 6개 성·직할시의 북경 쪽 발전소, 보일러, 중점 오염 기업 및 일부 건설 현장을 휴무시켰다. 북경의 스모그를 이렇게 없앤 것이다.

이번 APEC은 북경의 스모그는 확실히 인위적으로 생긴 것임을 증명했다. 북경시민들은 스마트폰 ‘미신’(중국식 카카오톡)으로 장황하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제목은 ‘인정승천(人定勝天, 사람은 반드시 하늘을 이긴다)’이다. 중국정부가 인간의 힘으로 ‘하늘이 내려준’ 스모그를 이겼다고 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지혜로운 북경시민의 정부에 대한 불만을 은어로 표출한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이겼다는 스모그 자체는 사실 인간(위정자의)이 하늘을 어겼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북경시민의 32%, 중국 국민의 88%는 아직 가스를 사용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발전소 등 공업용 에너지는 아직 석탄이다.

북경·천진·석가장 주변의 설비와 기술이, 수많은 향진기업 공장이 매연을 뿜어내고 있다. 이것이 북경 스모그 현상의 근본 원인이다. 2천여만 북경시민의 생활에 불편을 안긴 것은 차치하고, 북경 공기의 정화를 위해 희생시킨 천문학 숫자의 대가를 인민의 세금으로 충당시켰을 것이 아닌가?

중국정부의 위와 같은 노력은 독재국가에서만 가능하지 민주국가에서는 상상도 못한다. 며칠 후 카카오 톡의 위 은어 ‘찬사’를 권력의 힘으로 삭제시켰다. ‘많은 독자들의 항의 때문에’라는 이유를 달았지만 위정자의 ‘불쾌감’ 때문임이 뻔하다. 역시 독재국가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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