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時論] 무후 광복군과 이명룡선생을 찾아
[전대열時論] 무후 광복군과 이명룡선생을 찾아
  • 전대열<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 승인 2015.02.23 0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다는 청양의 해가 밝게 떴다. 십이간지 중에 양띠를 타고난 사람은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착하다는 말이 있다. 순 하디 순한 양의 모습이 양띠들에게 그대로 전이된 것이어서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그들 스스로도 양띠임을 자랑한다.

이처럼 천지 순환의 자연법칙에 따라 해는 바뀌고 매해마다 띠는 달라지지만 그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다짐을 하며 새해를 설계한다. 2015년 새해는 이미 50여일 전에 밝았지만 양띠 해로 상징되는 을미년 새해 설은 2월19일이다. 유난히도 긴 연휴가 계속되면서 귀성객들은 고향을 찾아간다. 멀리 계신 부모형제들과 함께 만나 세배도 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는다.

돌아가신 조상님을 찾는 일도 어느 나라나 똑같은 예법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음력을 사용하면서 정원초하루를 설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일제강점이 시작되면서 우리 민속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설을 옮겼다. 음력으로 설을 쇠지 않고 양력 1월1일을 설날로 정한 것이다.

일제의 강압으로 조선민족은 설조차 빼앗기고 양력설을 쇠게 되었다. 그러나 양력설은 설 같은 기분이 안 났다. 자연스럽게 몰래 음력설을 쇠었고 결국 이중과세(二重過歲)가 된 셈이다. 음력설, 양력설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다.

이중과세는 낭비다. 광복 후 우리 정부에서도 이중과세를 하지 말라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하여 계몽했지만 국민들의 가슴에 똬리를 튼 “설은 음력설이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에서 신년은 공식적으로 양력 1월1일에 시작하지만 ‘설은 음력 정월초하루다’라고 결정하기에 이르렀고 모든 국민의 대환영을 받았다.

이제는 신정(新正)과 구정(舊正)이라는 말도 사라졌다.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동요는 왜놈들이 강요했던 설과 우리 고유의 설을 구분하여 부르는 노래다.

중국 등 동남아 일대의 나라들은 대부분 음력설을 춘제(春祭) 또는 춘절(春節)이라고 부르며 대대적으로 즐긴다. 중국처럼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 나라에서는 몇 억 인구가 고향을 찾는다. 우리나라도 귀성객은 해마다 늘어나 민족대이동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하지만 진정을 다하여 조상을 섬겨야하는 이 날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애국지사가 지하에 묻혀있다면 어떻게 해야 옳을까. 북한산 수유리 애국선열묘역 한 모퉁이에 무후(無後) 광복군 합동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만주 태항산 등지에서 조국 광복을 위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던 분들이 광복을 앞두고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숨졌다. 대부분 광복 1~2년을 앞두고 전사했지만 몇몇 분은 1945년 8월에 전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꿈에도 그리던 조국 해방을 불과 며칠 앞두고 왜놈들의 총탄에 희생당한 어른들이다.

함께 싸우던 광복군 동지들이 이들의 시신을 전투지역 인근에 임시 안장했다가 광복 후 조국으로 모셔왔다. 국가보훈처가 유족을 찾아 현충원에 안장했지만 18위는 끝내 유족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분들만 합동으로 묘소를 조성하고 애국선열 16위가 모셔진 북한산 자락 성제 이시영선생 묘소 밑에 안장의 터를 마련했다.

그들의 애국열정은 광복군의 기초를 닦았던 신흥무관학교를 창설한 이시영선생 일가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도록 자연스럽게 자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들에게는 후손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묘소를 찾는 이는 극히 드물다. 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중에서도 ‘무후 광복군 합동묘소’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6월6일 현충일이 되면 국가보훈처장이 보낸 추모화환 하나가 달랑 서있을 뿐이다.

수유리 일대의 지자체장인 강북구청장 박겸수는 추석과 설날을 잊지 않고 추모화환으로 애국선열을 추모하고 몸소 참배한다. 추석과 설날에 돌아가신 어른들에게 깨끗한 음식과 맑은 술을 흠향할 수 있게 상차림을 하는 것은 후손들의 당연한 도리다.

애국선열을 숭모하는 여러 단체가 뜻을 모아 해마다 설 다음날과 추석 이튿날 정성스럽게 차례 의식을 집행하고 있다. 오의교, 박갑수, 조대용, 김선홍, 김종인, 안용환, 김병환, 황대영, 신은선, 이경선, 전대열 등은 이번 설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무후 광복군 합동묘소 앞에 모였다. 천지인산악회에서 마련한 차례상차림은 나름대로 정성을 다했다.

차례를 마치고 음복한 후 안용환의 제안으로 3·1만세운동 때 33인 민족대표의 한사람이었던 이명룡(李明龍)선생 묘소를 참배했다. 그의 묘소는 희한하게도 통일교육원 울안에 있다. 그는 1872년 평북 철산에서 태어나 105인 사건으로 3년을 복역하고 3·1운동 때는 2년의 옥고를 치렀다. 종교, 산업, 교육 등에 종사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56년 84세에 영면했으나 1962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어 광복선열묘역에 안장되었지만 산사태로 인하여 통일교육원 정원 내에 이장되어 교육원에서 관리를 책임진다. 우리 일행이 묘소를 방문할 때 경비를 맡고 있는 분들의 말씀이 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유족들이 참배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유족의 절손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광복회 등 애국단체들은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조상 덕에 많은 연금이나 타면서 좋은 사무실에서 회전의자만 돌리고 있으면 선열을 잘 모시는 일인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쓸쓸하게 누워계신 애국선열을 찾아 헌주 한 잔이라도 올려야 할 것 아닌가. 경비원들의 말씀은 등을 내리치는 죽비(竹篦)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