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69] 중국의 대입시험과 작문
[삼강만평(三江漫評)-69] 중국의 대입시험과 작문
  • 정인갑<중국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5.06.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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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요녕신문>사의 주최로 선양(瀋陽)에서 ‘김우중과 나의 인생’이란 주제로 조선족 웅변경연대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옌볜(延邊), 헤이룽쟝(黑龍江), 랴우닝(遼寧) 및 베이징(北京) 4개 팀으로 나뉘어 경연하였는데 필자가 베이징 팀을 책임졌었다.

그 번에 베이징 팀은 5명이 참가하여 1등상을 비롯하여 5명 모두 수상하는 휘황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자세하게 말하면 내막은 좀 달랐다. 베이징 각 대학의 조선족 대학생들에게 작품응모를 시켰더니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쓸 만한 문장이 없었다. 할 수 없어 난쟁이 중에 좀 큰 것 4편을 골라 필자가 수정하였는데 사실은 거의 필자가 대필해 주다시피 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개탄하였다. 조선족 대학생들의 창작능력이 왜 이 꼴인가 라며. 사실은 조선족 대학생들의 능력이 낮은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중국 대입시험에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입시험에서 작문의 비중이 점점 낮아지기 때문이다.

중국 대입시험의 어문(국어) 시험의 역사를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1950~65학번까지 작문시험만 치렀다. 즉 100점 만점에 작문만 100점이었다. 서정산문 한 편과 논설문 한 편의 제목을 제시하면 입시 자가 임의로 하나 골라서 작문을 짓는다. 1977학번도 명제작문을 치렀지만 100점 만점에 50점뿐이었다. 필자가 치른 지린성(吉林省) 대입시험의 어문시험 작문의 명제는 ‘10월의 단풍’이었다(논설문 명제도 하나 있었으나 생각이 안 난다).

78학번부터 50점은 변함없지만 문제의 성격이 변하였다. 약 1,000~1,500자짜리 문장을 제시하고 ‘이 문장의 주제와 기본 내용을 살리며 300~500자로 압축해 써라’따위이다. 77학번의 명제 작문은 그래도 문학성과 예술성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78학번부터는 순수 글을 다루는 ‘글재주’에 불과하다. 이렇게 약 20~30년 지속되었다.

최근 몇 년은 다시 명제작문 비슷이 돌아왔다. 금년 대입시험의 명제는 이러하다. 쟝수(江蘇) ‘지혜’, 쓰촨(四川) ‘성실과 총명’, 후베이(湖北) ‘분천과 샘물’, 충칭(重慶) ‘신체장애자 어머니의 이야기’, 베이징 ‘영웅과 같이 생활한 하루’ 및 푸졘(福建) ‘길’ 등이다. 하지만 50점은 변함없다.

대입시험을 어떻게 치르는가는 그 나라 청년학생의 공부에 직접 영향 준다. 대입시험에 무엇을 치르면 그 면을 중시하고, 무엇을 치르지 않으면 그 면은 거의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의 과거시험은 시를 위시한 문학작품을 치렀다. 그러므로 당나라 때 위대한 시인이 수없이 배출됐으며 당시(唐詩)는 중국문학사 중의 가장 찬란한 한 페이지다. 당나라 때 근 300년간 태평성세였기 때문에 나라를 찬양하는 문학작품을 대거 창작할 수 있었다.

송나라는 요(遼), 금(金) 및 서하(西夏)의 침략으로 내우외환의 나라였다. 그러므로 과거시험에 ‘책문’이라 부르는 국책을 운운하는 논설문을 중시했다. 문인들은 시국이 찌그러지니 산수놀이와 기생놀이에 정신을 팔았으며 이에 걸 맞는 사(詞)를 많이 창작했다. 명, 청 때의 과거시험은 ‘팔고문(八股文)’에 맞추어 써야 하므로 글 장난에 불과했다. 무료한 문인들만 배출되었으며 청 말에는 부득불 과거제도를 폐기하였다.

1950~65학번까지는 작문만 치렀기 때문에 그때의 대학생은 명제 문장을 잘 지었으며 웬만한 대학졸업생이면 문학창작이 가능했다. 1977학번은 50점이지만 명제작문이므로 역시 문학창작의 소질이 좀 있었다. 1978학번부터 지금까지는 작문이 50점뿐이며 명제작문이 아니므로 학생들의 문장 짓는 열기가 절반 식었으며 문학의 맛이 나는 글을 더구나 쓰지 못한다.

학계에 어문시험을 작문만 치르자는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부정한다. 해마다 대입시험의 연령에 해당되는 인구는 2,000만 명인데 그중 1천분의 1만 고시 전에 작문명제를 알아맞혀도 2만 명이다. 이 2만 명은 바보라고 하여도 어문성적이 100점에 접근할 수 있으며 대학 입학이 가능해진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예술이지 학술이 아니다. 어문과목에서 작문을 짓지만 앞으로 문학에 종사할 사람은 1%도 되나마나 하다. 이에 반해 앞으로 자연과학을 포함한 학술논문 쓰기, 어떤 서류를 작성하기, 서류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기, 각종 응용문 쓰기 등의 ‘글재주’가 더 필요하다. 그러므로 중국의 현행 대입시험의 정책은 옳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은 대입시험에 아예 글짓기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역시 맞는 정책이지만 좀 극단인 듯하다.

그러면 문학을 지향하는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은 중·고등학교 국어과목의 작문 짓기를 중시할 것이며 백일장 등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 외에 문학을 자신의 개인 흥취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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