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칼럼]시나브로 마음 속 해돋이를 안고 살자
[박완규칼럼]시나브로 마음 속 해돋이를 안고 살자
  • 박완규 편집국장
  • 승인 2010.12.23 17: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완규 편집국장

 
흘러가는 세월을 연도와 달 따위로 매듭지어 구분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딱히 구획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빛바랜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새 달력을 건다고 해서 삶이 윤기나는 새 달력처럼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내일의 삶이 결코 어제와 다르지 않고, 일상의 수레바퀴는 여전히 어제와 똑같이 굴러갈 뿐이다. 태양도 지난해에 떠오른 태양과 새해에 떠오른 태양이 서로 다를 리 없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해의 마디가 바뀔 때마다 없는 희망이라도 애써 가불하려 든다. 새해 벽두 해돋이 행사에 인파가 구름처럼 몰리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새해에는 마침 집 근처의 관악산에서 관악구가 마련한 해돋이 행사도 있다 하니 큰맘 먹고 해돋이 행사에 한번 가볼까 생각한다. `힘차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지난해의 액운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소원성취를 빌며 새로운 각오를 다집시다’라는 안내문구도 벌써 가로에 그럴듯하게 나부낀다.

돌이켜보면 살아오는 동안 무수히 많은 새해 아침을 맞이하면서도 해돋이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올 새해아침도 청정바다가 앞마당에 펼쳐진 고향 삼척에서 해돋이를 보려다 생각만으로 그쳤었다.

2009년의 마지막날 밤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보고는 `내일 해돋이 보기는 틀렸다 라는 지레짐작 탓도 있었지만, 모처럼의 휴가에 꼭두새벽부터 설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게으름이 더 큰 이유였던 게다.

그러나 웬걸, 새해 첫날 일어나보니 날씨는 말갛게 개어 있었고 햇빛은 유난히 밝고 눈부셨다. 이날 하룻동안 전국에서 해돋이 행사에 참가한 `부지런한 사람들’이 무려 100만명에 이르렀다는 뉴스에 약간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다음날이라도 해돋이를 보리라 마음먹었다. 해돋이라는 것을 꼭 새해 첫날에만 봐야 한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이튿날 새벽 긴 해안선을 따라 비릿한 안개 속에 고즈넉이 선 해망산으로 가는 길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기상예보를 입증이나 하듯 매서운 칼바람은 옷속으로 무자비하게 파고 들었다. 그냥 잠이나 더 잘걸 괜히 만용을 부렸다는 때늦은 후회도 없지 않았다.

어릴 적 이 곳을 밥먹듯 드나들면서도 무심히 넘겨왔지만, 실상은 이곳도 이데올로기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않은 곳이다. 바로 저 유명한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서막소임을 타지 사람들은 미처 모를 게다.

그 때문에 강원도 고성 북단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100여마일을 쉼없이 달려온 동해안철책선은 태백산맥의 험악한 준령을 뛰어넘어 남쪽으로 소백산맥까지 끝없이 이어지며 바다를 결박하고 있었다. 밤새 혹한에 떨었을 텐데도 칠흑바다를 주시하는 초병들의 눈매는 예의 날카롭기만 하다.

다행히도 해돋이 관람 지각생은 혼자만이 아니었다. 어제는 날씨가 궂은 것 같아 못 왔다는 한 분은 새벽부터 추위에 떨며 해가 돋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망산에서 바라보는 해는 정확히 직선으로 울릉도의 북위 10도 방향에서 떠올랐다. 7시48분께 조금씩 붉은 혀를 내밀기 시작한 태양은 4분 뒤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운치있는 운무 속에서 자태를 드러내며 온 천지에 밝은 빛을 흩뿌리는 장관에 벅찬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함께 해돋이를 감상한 이에게 해가 돋는 순간 무엇을 기원했느냐고 물었다. “가족의 건강과 나 같은 서민들 살림살이가 좋아지는 것 말고 딴 게 있나요.” 직장생활 25년만에 명예퇴직해 새로 시작했던 사업도 망한 채, 지금은 택시운전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는 그의 간결한 대답이었다. 그의 소망은 아마 이 땅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이기도 하리라.

계속 해를 보고 있으면 눈에 안 좋대요. 그의 권유에 이끌려 산을 내려오면서 `춥기는 해도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 따지고 보면 새해 벽두에 꼭 해돋이를 봐야만 대수는 아니다. 언제나 마음 속에 해돋이를 안고 살아가면 될 것을. 모든 세계 속의 우리 한인들도 시나브로 마음속에 해돋이를 하나씩 지니고 산다면 저렇듯 아웅다웅 하며 생채기를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쉽다.

올 한해동안 월드코리안신문을 사랑해준 전세계 한인커뮤니티 구성원들의 가슴 속에도 2011년 내내 해돋이가 함께 하기를 소원해마지 않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