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94] 개성역사유적지구
[아! 대한민국-94] 개성역사유적지구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5.09.12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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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유네스코는 2013년 6월, 개성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개성역사유적지구는 개성 성곽, 개성 남대문, 만월대, 개성 첨성대,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 표충사, 왕건릉, 7릉군, 명릉, 공민왕릉 등 12개 개별 유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네스코는 이들 유산이 “고려 이전에 한반도에 존재한 다양한 국가들의 문화적, 정신적, 정치적 가치들과 그러한 가치들이 5세기 넘게 인접 왕국과 교류되었던 모습들을 보여준다”면서, 특히 “이들 유산이 동아시아에서 문화의 내용이 불교에서 유교로 넘어가던 시점의 훌륭한 증거”가 된다고 평가했다.

북한에서 고구려고분군(2004년 등재)에 이어 두번째로 세계유산에 오른 개성역사유적지구는 전체 면적이 494.2ha이며 그 외곽을 둘러 이를 보호하기 위한 완충구역이 5,222ha이다. 개성은 고려 태조 왕건이 즉위한 다음 해에 철원에서 이곳으로 도읍을 옮긴 후 멸망 때까지 수도였던만큼 곳곳에 유적이 남아있다. 성균관은 고려말 신진 사대부들이 국가 동량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곳으로 지금은 개성 역사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만수산에 위치한 왕건릉에는 왕건과 첫째 왕후인 신혜왕후 유씨가 함께 묻혀있다. 가장 많은 지정문화재를 남긴 영통사는 고려초에 창건된 화엄종단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절터에는 현재 국보급으로 지정된 영통사 5층탑, 영통사 서3층탑을 비롯하여 보물급으로 지정된 영통사 동3층탑, 영통사 대각국사비, 영통사 당간지주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려왕릉은 통일신라 말기부터 유포된 풍수사상에 따라 주로 산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3~4층의 기단을 놓은 후 맨 윗단에 봉분을 쌓고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특히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무덤은 보존상태가 뛰어나다. 규모와 형식에서 조선 왕릉의 원형이 되는 무덤으로 꼽힌다. 고려왕릉은 대몽항전기 임시수도였던 경기도 강화에도 4기가 남아있다.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숭양서원은 1573년(선조6년), 개성의 유림들이 포은 정몽주의 집터에 세운 서원으로 포은의 글씨와 초상화, 지팡이, 의상 등이 보관돼 있다. 선죽교 옆 표충각(表忠閣) 안에는 2개의 표충비가 있다. 조선조 때 영조와 고종이 백성들에게 충(忠)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만든 비석이라고 한다.

송악산 기슭에 있던 고려의 궁궐은 조선시대에 모두 소실됐다. 옛 궁궐터인 만월대에는 남대문(국보급 문화재 34호)이 남아 고려시대 건축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으며 남대문 안에는 연복사 종이 있다.

연복사 종은 1346년에 만들어져 금강산 연복사에 있다가 1563년 절이 불타면서 이곳으로 옮겨져 20세기 초까지 타종되어 개성사람들의 ‘시계’역할을 했다고 한다. 남과 북의 문화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은 기쁘고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만약 개성이 개방된다면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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