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아기들의 학살을 그린 귀도 레니
[볼로냐, 볼로네세] 아기들의 학살을 그린 귀도 레니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9.14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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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란 쿠르디(Aylan Kurdi)라는 세 살짜리 아이의 시신이 터키의 보드람 해변에서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이 사진은 SNS를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소년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죄책감과 분노에 휩싸였다.

그 덕분에 유럽연합의 국가들은 그동안 걸어 잠갔던 빗장을 열고 난민수용의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볼로냐 대학 사회학과에서 인도주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삐에르루이지 무사로(Pierluigi Musaro) 교수는 이 사진을 다르게 해석한다.

세 살짜리 어린 아이의 사진을 적나라하게 보도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고 한다. 또 극도의 비극적 상황을 담은 사진에 호소하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지닌 한계에 대해 지적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비극과 긴급 상황을 극대화하는 이미지는 ‘도덕적 세계 지도’를 생산해 낸다.

즉 구원받아야 할 난민 발생국과 그 구원자인 유럽을 대비시키는 도덕적 세계 지도를 생산한다. 이 도덕적 세계지도는 구조적 문제 해결을 회피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쟁은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의 400년 전 그림에도 해당될 것이다.

귀도 레니는 볼로냐가 낳은 세계적 화가이다. 볼로냐의 미술관(Pinacoteca Nazionale di Bologna)에 소장된 그림, ‘순진무구한 아기들의 살륙’(LA STRAGE DEGLI INNOCENTI,1611)이라는 그림은 2000 년 전의 난민문제를 다룬다.

2000년 전에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두 살 이하의 남자 아기들을 모두 죽이라는 헤롯의 명령이 내리자 예수는 이집트로 피난을 가게 된다. 난민 예수 즉 이집트로의 피난가는 예수는 많은 화가들의 주제가 되어왔다. 귀도 레니의 그림에 난민 예수는 없다.

도망가지 못하고 살육당하는 아기들이 있다. 왕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군인들은 로봇처럼 얼굴에는 슬픔이나 동정이 보이지 않는다. 기계처럼 무감각하고 냉혹한 용사의 살기가 박력 있게 그려져 있다.

빛의 힘을 드러내기 위해 어둠을 더 짙게 그린 것이라고나 할까. 그림에는 도살자 군인들 앞에서 아무런 방어도 못한 채 두려움에 빠진 엄마들의 모습, 살육당한 아기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의 아래쪽 왼편에는 아일란 쿠르디의 잠든 모습을 빼닮은 아기가 누워있다.

살육당한 두 아기가 서로 겹쳐져 있는데 한 아기는 마치 잠든 것처럼 편안하게 보인다. 이 아이의 엄마인지 알 수 없는 한 여인은 하늘을 향해 호소하고 있다. 귀도 레니의 모티브를 나타내는 듯 이 여인은 공포나 놀라움 대신 순명의 자세로 하늘을 향해 엄숙히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 여인 앞에는 두려움에 떠는 아기가 엄마를 쳐다보고 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칼로 아이를 내리찍으려는 군인의 팔을 막아보려고 다급하게 팔을 내리 뻗고 있다. 이 장면 위에는 아기를 안고 도망치는 엄마의 옷을 낚아채고 그 아기를 찔러 죽이려는 병사의 손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손에는 예리한 칼이 들려있다. 아기의 죽음은 경각에 달려있다. 도망치려다 잡힌 어머니의 놀라는 모습, 두려움에 빠진 모습, 그리고 아이를 찌르기 위해 칼을 높이 쳐든 병사의 역동적 모습 등이 실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그림의 오른 쪽에는 살륙을 피한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르고 있다.

그림의 윗부분엔 천사가 이 장면을 보고 있다. 400년 전에 그린 귀도 레니의 그림은 이 21세기 문명의 시대 한 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난민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앙인이라면 이 살륙 현장을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 이 도살현장은 바로 구원자를 죽이려는 악마의 힘 때문이며 마침내 구원자가 찾아 올 것이라는 점을 믿음으로써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일란 쿠르디의 문제는 귀도 레니 식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교황도 유럽 연합과 교회들에게 난민을 향해 문을 열어라고 말한다. 무사로 교수가 말하는 도덕적 세계지도를 넘어 난민문제의 구조적 해결은 더 험난할 것이다.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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