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03] 한국의 유교책판
[아! 대한민국-103] 한국의 유교책판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6.03.01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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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2015년 10월10일, 한국의 유교책판(儒敎冊版)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의 유교책판이 유교의 학문적 성과를 500년이 넘는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적으로 계승했다는, 그 상징성과 고유성을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넷째이자 아시아에서는 가장 많은 13건의 기록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유교책판이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저작물을 펴낼 때 사용한 목판(木版)을 이르는 말이다. 이미 세계기록유산으로 앞서 등재된 팔만대장경 역시 목판이지만, 불교의 경전을 나무에 판각한 점에서 이번의 유교책판과 다르다. 이 나라 유학자들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와 깊은 사색의 내용을 스스로 기록으로 남겼고, 학단(學團)의 제자들은 스승의 저작물을 책판으로 제작해 간행했다.

이 과정에서 출판 여부와 수록 내용 등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론을 거쳐야 했다. 공론 과정에는 문중(門中), 학단, 서원, 지역사회 등으로 연결된 지식인 집단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책판을 만드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도 십시일반으로 분담했다. 이와 같은 공동체 출판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출판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은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의 장판각에 보관돼 있는 것들이다. 이제까지 각 문중 또는 서원 단위로 보관되어 있다가, 한국국학진흥원으로 모아졌다. 유교책판은 주로 고로쇠나무, 박달나무, 산벚나무 등으로 제작됐다.

한때는 민간에서 보관돼 오던 책판이 땔감이나 빨래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장판각에 보존된 책판의 99%는 현재도 목판인쇄가 가능하다. 이 곳의 유교책판은 총 718종 6만4,226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은 다시 문집, 성리학서, 족보, 예학서, 역사서, 아동교육서, 지리서, 기타 등 8개의 분야로 분류돼 있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이들 책판은 한결같이 유교의 가르침에 맞는 공동체사회를 이룩하자는 사상과 철학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퇴계선생문집’은 그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교책판으로, 이 책판은 1600년 도산서원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의 교정을 거쳐 1724년, 1817년, 1904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책으로 되어 나왔다.

이는 후학들이 퇴계의 학문과 사상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공론을 이어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재 장판각에는 1600년에 간행된 ‘퇴계선생문집’ 초간본(49권 2책) 책판 691장과 1904년 판본(61권 27책)의 책판 1,074장이 보관돼 있다.

후학들은 ‘퇴계선생문집’ 책판을 고치고 다시 새기는 과정을 1817년 ‘선생문집개간일기’와 1843년 ‘중간일기’에 담아, 책 출판의 배경과 그 진행 과정, 비용과 재원 마련 방안까지 세세하게 기록해두고 있다. 이로써 조선시대 유교사회에서 집단지성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이들 책판은 알려주고 있다. 무엇보다, 학문과 사상의 결집체라 할 한국 유학자들의 문집이 그 책판 속에 살아있어, 한국의 정신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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