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유감
영어 유감
  • 이현송<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승인 2016.03.07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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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의 직업을 말하면 항시 듣는 말이 있다. “영어를 잘 하시겠네요.” 부러움이 섞인 말투다. 대학에서 영어통번역학부 교수로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착잡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영어로 미국 사회에 관해 가르친다. 내가 읽는 책은 대부분 영어로 쓰였으며, 때때로 영어로 글을 쓰거나 발표를 한다. 그런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음에도 나에게 영어는 편한 언어가 아니다. 다른 한국 사람과 차이점이라면, 언젠가는 영어를 정말 잘해보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 실력은 꾸준히 노력하면 는다. 그러나 느는 속도는 매우 더디며, 공부로 영어 실력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학자들은 우리의 사고 과정이 언어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영어를 쓰면서 살아가는 환경 속에 있을 때, 생각을 영어로 하게 되며 영어를 쓰는 데 부담이 없다. 반대로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생활할 때, 생각을 영어로 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영어를 쓰는 것이 거북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십대 후반까지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해외에 나가 영어로 생활해야 하면 나의 두뇌가 영어 모드로 전환되는 것을 경험한다. 처음 며칠은 영어를 쓰는 것이 거북하지만, 점차 영어가 자연스럽게 들리며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영어로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영어를 쓰는 것이 거북해진다. 영어가 잘 들리지 않으며,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우리말이 먼저 떠오른다.

한국어를 쓰는 환경에서 살면서 영어를 하는 것은 마치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과 같다. 언어는 계속 쓸 때에만 퇴화하지 않고 살아있기에, 나는 영어를 쓰면서 생활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매일 아침 뉴욕타임즈를 읽으며 이코노미스트나 기타 영자지를 틈나는 대로 부지런히 읽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외국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가급적이면 영어로 된 영화를 보며 한글 자막을 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교양서를 읽을 때에도 번역본보다는 원서를 구해 읽는다. 이렇게 생활하기에 한국에 살면서도 그나마 영어로 강의하고 글을 쓸 수 있다.

한때 조기 유학이 붐을 이룬 적이 있다. 두뇌에서 모국어의 위치가 굳어지는 나이인 12살 이전에 영어권에 이주하면 영어가 모국어가 될 것이다. 영어는 세계 공용어이므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면 국제적인 활동에서 크게 유리하다. 그렇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영어권 국가에 조기 유학한 사람은 그 나름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 활동하려면 한국어와 한국 사정에 익숙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현지에 남자니 유색인에 대한 현지인의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야 한다.

한국의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다. 세계화와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외국과 접해야 할 경우가 갈수록 늘어난다. 중류층 이상의 직업은 어느 정도 외국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정부기관이 세계의 언어를 분류한 기준에 따르면, 한국어는 미국인이 습득하기에 가장 어려운 언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영어도 한국인이 습득하기에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는 데 들이는 엄청난 시간과 스트레스를 그들은 전혀 경험하지 않는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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