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08] 구곡(九曲) 산수문화
[아! 대한민국-108] 구곡(九曲) 산수문화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6.05.1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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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산수 좋은 계곡에 가면 대개 무슨 무슨 동천(洞天)이니 구곡(九曲)이니 하는 이름이 붙어있다. 동천이 짧은 계곡이라면 구곡은 비교적 깊고 긴 계곡이라 할 수 있다.

경치 좋은 곳에는 팔경(八景)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팔경이 여덟 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말한다면, 구곡은 아홉 곳의 빼어난 물굽이를 뜻한다. 팔경이 내가 구경하는 곳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 여덟 개를 택하여 정했다면, 구곡은 내가 사는 곳, 근처 골짜기에서 아홉 개의 굽이 경관을 정하였다.

이는 모두 조선후기 사대부 선비들이 즐기던 곳으로, 그 장소를 정하면 반드시 그 곳의 풍치와 굽이를 상징하는 이름을 정하고, 또 그 곳의 아름다움을 시로 남겼다. 이 시는 그 곳에 사는 나 자신이 직접 짓기도 했지만, 찾아온 선비와 벗들이 짓기도 하였다.

구곡은 1곡부터 9곡까지 아홉 곳의 굽이로 되어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아홉 곳의 굽이일까. ‘문화산수(文化山水)’를 연구하는 한문학자 이상주 교수에 의하면, 구곡은 주역의 구오(九伍)원리를 적용한 것이라고 한다.

구오는 천자의 자리를 말하며 더불어 만물이 각각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해 원만하고 활발하게 작용함으로써 천하를 으뜸으로 잘 다스리는 상황을 표현한 괘(卦)이다.

이러한 괘에 따라 최초로 구곡을 설정한 사람은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로 성리학을 주창한 주자(朱子,1130~1200)다. 그는 중국 복건성(福建省), 무이산((武夷山)에 있는 아홉 굽이의 아름다운 경치를 시로 읊었고, 1183년에는 그 다섯 번째 굽이인 은병봉 아래에 무이정사(精舍)를 지어 머물렀다. 이로부터 구곡문화가 시작되어 해동(海東)에까지 널리 퍼진 것은 한국에서 성리학이 융성했던 조선후기였다.

조선에서 가장 먼저 구곡을 설정하고 시를 지은 이는 율곡 이이(李珥,1536~1584)였다. 그는 1577년에 황해도 해주 석담천에 고산구곡(高山九曲)을 정하고 은병정사(隱屛精舍)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치는가 하면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율곡이 머문 정사이름 은병은 주자의 무이정사가 있던 산봉우리 이름이다. 또 주자가 제5곡에 정사를 지었듯이 율곡 또한 5곡에 정사를 지었는데, 이로부터 수많은 조선 사대부들이 구곡을 설정하면서 제5곡에는 자신이 머무를 정사를 짓곤 했다.

이렇듯 대개의 구곡은 성리학자들이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뜬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구곡이라 할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화양구곡도 마찬가지다.

팔경과 마찬가지로 구곡 또한 대개 그 경관에 시가 남아있다. 이 시들은 각기의 장소성이 강한 바 해당 현장의 바위에 새기는 경우도 있었다. 비록 시 전체는 아니더라도 구곡의 아홉개 명칭을 바위에 새겨놓은 경우도 상당수 있다.

구곡이나 팔경처럼 특정한 산수 속에서 시, 산문, 혹은 글씨 등의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문화가 ‘산수문화’다. 2014년 8월, 화양계곡이 구곡 중에서 처음으로 문화명승(제110호)으로 지정됨으로써 ‘구곡 산수문화’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한국에는 110곳 이상의 구곡이 있다. 구곡은 조선중기 이후 사대부들이 경치 좋은 산수 속에 은거하면서 몸과 마음을 닦으면서 학문을 연마하던 산중계곡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물굽이 아홉 군데를 정하고, 거기에 각각 이름을 붙여 시를 남기며, 그 다섯 번째 굽이에는 글을 읽는 집을 지어 한가롭게 거처하는 선비문화의 전형이었다. 이는 인문과 자연이 함께하는 독특한 한국의 산수문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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