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언어폭력: ‘헬조선’과 ‘亡韓民國’
[안영수의 문화칼럼] 언어폭력: ‘헬조선’과 ‘亡韓民國’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6.06.08 15: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치매 예방의 방법 중의 하나가 인터넷 사용이라고 해서 초보 수준이지만 자주 인터넷 검색을 한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을 통해 신문 사설을 비롯한 각종 정보를 섭렵하다 보면 비속어와 신조어들이 너무 많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마치 외래어 같다.

예를 들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청년 실업에 관련된 인터넷 신조어들 중에는 ‘열정페이,’ ‘주거절벽,’ ‘빨대족,’ ‘취업깡패,’ ‘노오력,’ ‘N포세대,’ ‘헬조선,’ ‘망한민국’ 등이 나오는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다시 검색해보니 청년 실업률이 급증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취업 준비생들의 절망과 분노가 표출된 용어들이란다.

이 신조어들 중에서 특히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용어가 ‘헬조선’과 ‘망한민국(亡韓民國)’이다. 전자는 영어의 ‘지옥(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의미이고, 후자인 ‘亡韓民國’은 이미 망한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위키백과)

언어는 인간의 의사소통의 도구인 동시에 놀이의 도구이기도 하다. 문학도 일종의 말놀이(words play)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자기들끼리 통하는 비속어를 만들어 어른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의사소통의 도구로 쓰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말장난이라 해도 자기들의 조국을 ‘헬조선’ 또는 ‘망한민국’이라 부르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언어폭력이다.

불과 100여 년 전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우리의 선조들이 36년 동안 생 ‘지옥’에 살았다는 사실을 청년들은 잊고 있는가? 또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 된지 불과 5년 만에 북한의 남침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거의 모든 국민이 굶주림의 ‘지옥’에 살았다. 나도 6.25전쟁에서 아버지를 잃고 굶기를 밥 먹 듯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랬던 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폐허를 딛고 이룩한 고도성장 덕분에 국민소득 3만 불에 가까운 무역대국이 되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이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 모두 기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적 수준의 치안과 편리한 대중교통과 현대적인 지하철,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실에 설치된 깨끗한 공중화장실을 보면 우리나라를 부러워한다. 게다가 IMF라는 경제위기도 빨리 극복하고 삼성, 현대, LG, 포항제철 같은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기업들의 성장에 놀란다. 이런 나라에 사는 청년들이 자기들의 조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다니…

“큰 빌딩일수록 그림자도 크다”는 속담이 있듯이 급속한 경제 발전 뒤에는 그늘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고도의 경제발전을 거치면서 개인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사라지고 소위 ‘금수저’로 표현되는 부의 대물림 현상에 젊은이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분노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고 조국이 망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망한민국’이라고 부르는 젊은이들에 대해 해방 전에 태어난 나로서는 참담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나라가 싫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려는 즉, ‘탈조선’을 꿈꾸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지 않는 불공정한 사회라서 탈출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난과 빈부격차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현상이다. 서양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는 실업률의 급등으로 급여 삭감과 세금 인상 등 긴축 정책이 올해로 7년째 계속되고 있고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유적과 문화재를 비롯한 국가 소유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국인들이 해외 여행지로서 가장 선호하는 스페인도 IMF 구제 금융으로도 회복하지 못하고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필자도 2012년 직접 스페인을 여행하는 도중에 마드리드 시내에 백 미터도 넘는 긴 줄을 서서 실업급여를 받으려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물론 청년들의 취업난은 기성세대와 사회 지도층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남의 탓만 할 게 아니라 청년들 자신의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졸자들 대부분은 대기업만 선호하고 중소기업이나 제조업종을 기피한다. 그래서 몇 년 씩 취업준비를 하다가 스스로를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거나 더 나아가 ‘N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 등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라고 자포자기가 되어 ‘빨대족’(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면서 부모의 노후자금까지 갉아먹는 세대)이 되어버린다.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망한민국’이라고 비하하는 청년들에게 감히 부탁한다. 인간에게 인격이 있듯이 언어에도 품격이 있다고.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류 바람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넘치는데 우리의 소중한 언어를 무자비하게 비하하는 표현을 삼가달라고. 그리고 행복의 잣대를 물질로만 규정 짓지 말라고. 삶의 만족도는 물질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어서 ‘더 많이’ 갖고, ‘더 빨리’ 출세하고, ‘더 좋은’ 집에 살아야 행복하다고 믿는 우리들의 의식을 바꾸어야한다.

인생은 존재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지금 취업이 되지 않는다고 절망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희망은 날개 달린 것’(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이라는 시에서 ‘희망’은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선물로서 “영혼의 횃대에 앉아/ 가사 없는 곡조로 노래하고/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고 노래한다. 취업문제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시를 들려주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