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 4자성어 가운데 중국에서는 쓰지 않지만, 우리는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 보라고 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도 그 가운데 하나다.
중국 인터넷 백과사전인 바이두바이커(www.baidubaike.com)에서 ‘역지사지’란 말을 검색하면, 아직 등록되지 않은 용어라고 표시돼 나온다. 소후닷컴(www.sohu.com) 등에 ‘역지사지’를 넣으면 “역지사지는 무슨 뜻인가요?” 하는 질문들이 몇 개 뜰 뿐, 중국 신문이나 블로그 글의 사용 사례가 전혀 소개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중국에서는 ‘역지사지’란 말을 통상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역지사지란 뜻의 용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역지사지’ 대신 ‘역지이처(易地而處)’라는 말을 쓴다. 역지이처나 역지사지의 출전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사서오경 가운데 하나인 ‘맹자’에 닿는다.
‘맹자’ ‘이루하(離樓下)’편에는 공자가 우(禹)와 직(稷), 안회(顔回)를 칭찬한 것을 소개하는 얘기가 나온다. 우는 황하 치수를 성공적으로 해낸 중국 고대 우임금 말하고, 직은 앞선 순임금때 논밭의 경작을 책임졌던 대신의 이름이다. 안회는 청빈을 즐기다 요절한 공자의 첫 제자다. '이루하'편에 소개된 내용은 이렇다.
“태평한 시절에도 우와 직은 자기 집 문 앞을 세번씩이나 지나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공자가 칭찬하셨다. 안자(안회)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누추한 동네에 살면서도 한 소쿠리 밥과 한 바가지 물로 즐기며 살아 공자가 칭찬하셨다. 맹자가 말하기를 우와 직, 안회가 사는 도리는 다 마찬가지니, 우는 물에 빠지는 사람 생각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직은 천하에 굶는 사람 생각하기를 자기같이 해서 집에 들르지도 않은 것이다. 우나 직, 안회가 처지를 바꾼다면 모두 같았을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에 있는 ‘처지를 바꾼다면 다 같았을 것이다(易地則皆然)’라고 한 부분이 ‘역지이처’ 나아가 ‘역지사지’의 출전이다. 기자가 ‘역지사지’란 말을 떠올린 것은 최근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대한 일본 정부의 10억엔 출연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이 이와 함께 다시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을 치르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합의'를 도출해냈다.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해 생존 위안부들을 돕는 것을 양국간 위안부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최종합의로 한다는 게 당시 양국의 발표였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 최종 해결을 위해 정부가 10억엔을 곧 출연할 전망이다. 이제 공은 한국 정부로 넘어 오게 된다. 일본 정부가 생각하는 '위안부 문제'의 하나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서 있는 ‘소녀상’ 문제이고, 그 앞에서 시위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이 껄끄러워 하면서도, 일본 정부가 직접 풀 수 없는 문제다.
우리 정부는 양국간 '최종합의'를 했음에도, 이를 계속 두고 볼 것인가? 만약 이를 핑계로 일본 우익들이 동경 대사관 앞에 한국을 비난하는 말뚝이라도 세우려 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때문에 불똥이 재일동포들이나 신정주자(뉴커머)들한테로 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지사지’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이런 생각들 때문이다. 이제 역지사지를한번 깊이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