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경선의 한 모퉁이
[칼럼] 국경선의 한 모퉁이
  • 류현옥<재독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8.15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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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독 동네로 이사 온 지 4년째에 들어섰다. 안정된 평민들의 구역사회 샬롯텐 부르크의 분위기를 떠나 사회주위 냄새가 아직도 잔재로 남아있는 곳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종종 느끼며 살았다.

백림 장벽이 서있던 동서독 경계도로를 아침저녁으로 넘나들면서 이제는 내 동내로 정이 든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집 뒤의 늪 속에 방치되어 파괴되어 가는 오랜 동독 건물을 볼라치면 다시 마음이 조린다. “산책길이 많은데 구태여 왜 위험한 그 근처로 가야하니?” 얀이가 경고를 하지만 나는 그곳을 가서 몰락한 독제주의 흔적을 조금씩 잃어가는 세월의 흐름과 역사를 재삼 인식하고 사색에 잠겼다.

그런가하면 건성으로 보고 다니던 구석구석에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묵은 것도 있다. 적응도 됐고 여유도 생긴 것 위에 생소한 것들이다. 동네입구를 지나가는 쇳조각을 박아 새긴 역사적인 동서독 경계선(1961~1989 백림장벽선)을 넘어서면 왼쪽으로 보이는 곳에 ‘경계선의모퉁이’라는 간판을 단 허술한 음식집이 그중의 하나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모퉁이 술집이 아닌가 했는데 날씨가 더운 여름이면 길가에 상을 내놓고 사람들이 나와 앉아 살 라드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음식점인데도 먼발치로 지나다녔다. 우선 그 간판이 옛 동독을 생각나게 했다.

그쪽은 분명히 베를린 장벽의 서쪽에 자리한 서 베를린에 속했건만 오랜 세월을 벽하나 사이로 동독 옆에 있었던 것이 원인인지는 몰라도 오히려 동독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장벽 아래 거리 가 갈라지는 삼각지에 술집으로 시작했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배가 고픈데 구운 소시지가 없어요?”하고 술꾼들이 물어오기에 캔에 든 비엔나소시지를 물에 데워서 손님들을 붙들어두는 작전으로 시작한 것이 레스토랑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간판의 글자모양이 그렇고 어둠침침한 짙은 브라운 바탕색 위에 쓴 검붉은 글자판이 눈에 거슬렸다 언제 생긴 음식점인지는 몰라도 짐작컨대 반세기가 넘도록 음식집 주인과 함께 간판이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단한마디로 그 간판은 독일 통일을 지켜본 증거물로 그전과 그 후의 독일 분위기를 담아온 것임에 틀림없다. ‘경계선모퉁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연히 찾아드는 손님도 없을 것이고 통일 이후에 생긴 우리 동네 사람들은 나처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며 지나다닐 것이다. 백 세대의 정원주택의 공사가 시작됐을 때 술집 주인은 새 동네가 자리를 잡아 베를린 시내를 떠나온 동민들이 손님으로 몰려 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늦어도 그때쯤 그 빛발은 구닥다리 간판을 갈아 달았어야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동차로 그 모퉁이를 지나갈 때면 얀이가 습관처럼 말했다.

“저 집에 한번 들어가 봐야 되는 데...!”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없지?”
“그래도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음식점인데...”
“저기 앉은 사람들 보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날 것 같아 !”

마른피부에 광대뼈가 끝나는 곳에서 밑으로 축 쳐져 내린 주름 잡힌 볼을 한 여자가 식당입구에 서서 담배연기를 불어내고 잇는 것을 보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경멸이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단골손님인지는 모르지만 오던 손님도 돌아서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 많은 올해도 날씨가 좋은 날이면 레스토랑 앞길에 울타리를 치고 상과 의자를 내놓아 사람들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독일 통일 후 동독 간호사들이 최소한 월급의 20%는 더 많은 서독의 일자리를 찾아 옛 국경선을 넘어왔는데 하나같이 담배를 피웠다.
  
“다른 물건은 귀했어도 담배만은 쉽게 살수가 있었던가봐.”

간호사 과장이 이 얼굴을 찡그리며 한 말이다. 담배 한가치가 다 타서 없어질 때 까지는 7분이 걸린다고 하는 데 담배를 끄집어내어 불을 붙이기 가지 5분 다 피운 후에 일어서기까지 5분해서 최소한 17분은 담배 휴식으로 앉아 있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거나 싸온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는 손에 들었던 빵을 접시위에 올려놓고 입속에 든 방을 씹으며 부자로 부르는 환자 방으로 가지만 이 담배에 불을 붙인 후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의 약조 같은 것이 통했다. 불이 붙은 담배를 재떨이에 내려놓고 부자를 울리는 환자 방으로 가지 앓는 다. 애연가들이 지키는 규율이다. 연기 나는 담배를 손에 든 동료대신에 다른 사람이 일어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8시간 근무 도중에 5개의 담배를 피우는 흡연가는 한 시간 정도 쉬는 시간을 연장시킨다. 스트레스 심한 직업여성에게 필수의 신견안정제라고 핑계를 댄다. 이미 니코틴 중독자로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이 누렇게 물이 들은 동료는 “여러 번 금연을 시도했어! 두어 달은 잘 가다가 무슨 일리생기면 스트레스해소로 다시 피우게 되는 거야. 두 어깨에 얹어 메고 가야할 인생의 짐이야!”

나는 일을 하지 않은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도 그 때의 혐오감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아직도 느긋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당장 그때의 불쾌감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실내 금연이 법으로 정해진 후 애연가들을 위해서는 이렇게 길가에 차린 식탁이 그들을 손짓하는 방법인데 이 모퉁이에는 유난히도 담배꾼들이 모이는 느낌이다.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자동차 길 가에 앉아 오래만 에 만난 사람과 대화를 하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날인가 산책을 가는 길에 얀이 길을 건너가서 벽에 붙은 메뉴를 읽어보더니 “언제 한번 들어가서 먹어보는 것도 괜찮겠는데!”라고 했다. 

“나는 안 가. 왜 그러지?”
“분위기가 으스스하고 근처의 실업자들 소굴인 것 같은데!”
“통일 바람에 직장을 잃은 불행한 사람들이 모인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에 우리가 젖어들 이유가 없지. 메뉴가 마음에 드는데. 그리고 그 오래된 간판 아래 작은 글자로 발칸 스페셜이라고 써 놓았던데.” 내가 건성으로 못 본 글자가 간판에 써져 있단다.

어느 일요일 비가 찔끔 찔끔 내리는 칠월 초 늦은 오후시간이다. 

“나는 국경선 모퉁이 집에 간다. 같이 갈 거야?”
“아니 무슨 일이야 그기는 왜 가는 데?”
“같이 안가도 돼! 나 혼자 갔다 올 게.”
“가서 뭐하려고?”
“맥주 한잔 마시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젖어도 보고 그럴 참이야.”

나는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따라 나섰다. 혼자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 호위자가 있을 때 기회를 놓칠세라 붙잡아야 했다. 가까운데 우산은 안 가져가도 돼 귀한 비 몇 방울 맞는 다해서 솜 설탕같이 녹아 없어질 것도 아닌데... 얀은 나를 복도에서 밀어내고 문을 잠갔다. 비는 집안에서 보던 것보다 세차게 내렸다. 우리는 급하게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 국경선 모퉁이 집에 도착했다. 앉을 자리가 없었다. 눈에 뜨이게 체구가 육중한 중년의 여자가 일어나 얀이에게 악수를 했고 얀은 나를 소개했다. 나는 종이수건을 내어 젖은 며리를 닦느라고 정신이 없는 데 의자를 가져와서 앉으라고 한다. 

“어디서 사시는 분 들이예요?”
“우리 바로 저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 부터요?”
“한 4년 됐지요 ”

내가 의아한 얼굴로 그 여자를 쳐다보는데 얀이 나에게 그 뚱뚱한 여자가 흰 이빨을 다보 이며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찍혀있는 푸로스팩트를 슬그머니 내 앞으로 밀었다. 말실수를 하기 전에 미리 보라는 뜻이어서 나는 푸로스팩트의 사진아래 큰 글자로 쓰인 그 여자의 이름을 읽었다 스판다우 구청의 중요 여사회당의원이다. 나는 그때서야 다가오는 선거운동으로 우리를 초대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일 날라드는 광고문과 관공서에서 보낸, 편지들 해서 거실의 탁자위에 쌓이는 우편물들을 예사로 보기에 모르고 있었던 일이다 스탐티쉬 대화(단골손님 대화)를 2년 전에 시작하여 스판다우 구역의 허술한 모퉁이 음식점들을 돌고 있단다.

“역사적인 국경선모퉁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맥주를 마시며 세상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하는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거든요.” 푸로스팩트 의 내용으로 다가올 프로그램이 적여 있었다.여름파티로 그릴도 하고 커피타임의 만남도 있단다. 상을 둘러앉은 사람들이 한사람 씩 일어나 자기소개를 했다

“주로 거주 문제를 맡고 있습니다.” 한 여자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는 주택에 살기에 거주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한 셈이지요?” “그렇지도 않아요! 주택을 가진 사람들이 건의한 것들을 모아서 시청 에 올리면 그곳에서다시 모아서 중요한 것으로 통과가 되면 국회까지 올라가니까요. 새로운 것으로는 발코니에서 여름에 그릴을 하는 데 숯불그릴과 가스그릴 등 문제에 대해서 의견들을 모았어요.” 그릴을 하기 전에 이웃에 알려야 한다든지 일 년에 두 번은 연기를 피우며 발코니에서 숯불 그릴을 할 수 있다든지 하는 내용들을 일일이 지적했다

중요한 어린이 놀이터가 다음 문제로 등장했단다. 놀이터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을 구경하는 남자를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다.  그 남자는 어린이 놀이터 앞에 서 있으면 안 된다는 법 조항이 어디 있는지 따졌고 경찰서에 불려가서 신분 조사를 당한 후에 다른 구역 어린이 놀이터 앞에 가서 서 있단다. 경찰이 가서 신분조사를 다시하고 거기서 더 서 있을 것이냐고 물었단다. 그 남자는 전 베를린에 유치원과 어린이 놀이터가 몇 개라는 것도 알고 있더란다. 작년에 있었던 네 살짜리 난민 아이를 납치해가서 성추행을 하고 죽인 사건이 베를린 시민들에게는 치명적인 국가적인 부끄러움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부란덴부르크 의작은 도시에서 범인은 베를린 한복판의 피난민 관리소에 와서 부모 손에서 떨어져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장난감으로 꼬여 데리고 갔는데 장치된 비디오에 찍힌 사진이 TV에 방송됐고 범인의 어머니가 사진에서 한집에서 사는 성인의 아들을 알아보고 신고 한 사건이다. 범인은 같은 해 에 흔적 없이 살아진 11 살짜리 남자애를 납치해서 성 추행 후 죽었다는 것을 자백했다.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는 악몽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국민은 국가 공무원들에게 책임 추궁을 한다.

예를 들면 경찰 숫자를 더 널려야 한다든지 네 살 된 아들이 없어졌다고 신고를 한 피난민 여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잘못 대우했다던가 하는 일들을 세세하게 보고 하여 이런 국가 녹을 먹고 사는 관직 들이 좋은 일하는 독일 정부의 얼굴에 똥칠을 한다고 퍼붓는다. 이런 일이 생긴 후면 얼마간은 신경이 곤두서고 어린이 노는 것을 구경하는 남자들은 의심을 받는다. 그런데도 유치원이나 어린이 놀이터 앞에서 서성거리는 남자는 시민의 한사람으로 어디에 서서 소일 한다하여 무슨 잘못이 잇느냐고 따지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기에 쫒을 수가 없단다.

두 번째 맥주잔이 비워질 즈음에 이르러 분위기도 화개 애애하여 유연하진 혀가 컨트롤 영역을 떠나서 할 말 안할 말 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사회당이지만 얀이는 녹색당 지지자라고 고백하는 단계에 이뤘다. 국민의 지지율이 20 % 로 낙하한 당 을 지키는 기둥이 될 역할을 할 것이냐고 묻는데 사회당이 없어지면 안 되니 까 최선을 다하여 붙들고 있겠다고 대답하여 모두 손뼉을 쳤다. 시간이 되어 일어나 제각기 술값을 계산하기위해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두 여자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우리는 여행복권 을 받았고 당첨이 될 경우를 생각해서 우리 두 사람의 성명과 주소를 써서 주고 경계선 모퉁이를 나왔다. 그동안 비는 멎었고 갠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며칠 후 이빨을 다 들어 내고 활짝 웃는 얼굴의 여의원의 플라카트가 가로등 에 붙혀졌다.

9월에 있을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 됐다. 우리는 하펠강 가의 맥주정원에서 있는 그릴파티에 갈 것인지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다. 사회당을 대표한 빌리 브란트 수상이 담배를 느긋하게 물고 기타를 치는 흑백 사진이 벽에 걸린 맥주정원 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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