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16] 임나일본부설
[아! 대한민국-116] 임나일본부설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6.09.1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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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는 고대 일본의 야마토(大和)정권이 서기 720년에 편찬한 「일본서기」에만 있는 용어다. 임나일본부설이란 일본이 4~6세기, 무려 200년 동안 백제·신라·가야를 포함하는 한반도 남부지역을 근대 식민지처럼 지배, 경영했고, 그 통치의 중심으로 가야지역에 임나일본부를 설치, 운영했다는 주장을 말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은 가야 고분군을 비롯해서 영남지역의 고대 유적을 식민지배자가 가진 거리낌 없는 권리로 파헤쳐 보았지만,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단 한 건도 발견하지 못했다.

먼저 임나일본부의 기원을 4세기 중후반에 이른바 신공왕후가 신라와 가야 7국을 평정했다는 설화에서 찾고 있지만, 정작 임나일본부의 기록은 5세기 후반(1회)과 6세기 전반(22회)에 국한돼 있다. 4세기 후반에 신라와 가야를 평정한 왜나 백제가 100~150년이 지난 뒤에 통치 또는 군정기관을 설치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23회나 등장하는 임나일본부의 기록에 왜나 백제가 가야에서 조세징수나 군사를 동원했다거나 하는 정치적 강제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 이렇게 고대 일본이나 백제의 군정기관을 상정할 수 있는 내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부라는 용어가 보이는 기록은 모두 왜의 사신들이 경남 함안에 위치했던 아라국왕의 보호 아래 백제와 신라를 상대로 전개했던 외교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결국 임나일본부의 실체는 왜왕이 가야에 파견했던 외교사절이었고, 일본서기 편찬자가 자신의 역사 해석에 따라 통치기관을 뜻하는 부(府)라는 한자를 빌려 기록했을 뿐이다.

야마토 정권이 임나(가야)를 지배했다는 일본서기의 서술은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다 1720년에 쓰인 「대일본사」(大日本史) ‘임나전’에 일본서기의 관련기사를 재정리해 수록하면서 일본 역사의 한 부분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19세기말, 20세기초 한 무리의 일본 역사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학문적이라기 보다는 일제의 한국 침략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목적이 앞섰다. 임나일본부설은 1949년 출간된 스에마쯔 야스카즈(末松 保和)의 「임나흥망사」에 집대성됐다.

2차 대전 종전 후 일본학계는 일본서기의 사료적 한계를 인정하고 임나일본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즉, 임나일본부가 임나의 여러 세력과 왜(倭)가 함께 참여했던 회의체라는 주장과 527~530년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군사기관이라는 주장 등이 나왔다.

결국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200년 동안 지배했다는 학설은 무너졌고, 2010년 한일역사공동위원회는 임나일본부설이 근거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의 고대 가야사 연구의 부진이 식민사학의 임나일본부설을 불러들였다는 점에서 관련 학계의 분발과 각성이 요청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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