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악취 때문에 은행 암나무를 없앤다면?”
[안영수의 문화칼럼] “악취 때문에 은행 암나무를 없앤다면?”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6.11.14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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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기피, 고약한 냄새 때문에 은행 암나무를 없애는 것과 같아”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내가 자주 걷곤 하는 이문 2동의 빗물 펌프장부터 3동 사이 약 400m 되는 산책로 양쪽에는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여름이면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들이 카펫처럼 깔려있어 가을의 정취를 한껏 풍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어젯밤에 내린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은행 열매의 과육들이 악취를 풍기고 있어 사람들이 과육들을 밟지 않으려고 몸을 수그리고 지그재그로 걷고 몇몇 할머니들은 떨어진 은행들을 줍고 있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은행 알들을 피해 지그재그로 걸었다. 아뿔싸! 빗물에 미끄러지며 은행의 과육을 밟고 말았다. 운동화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어차피 운동화가 더렵혀졌기에 일부러 여기저기 널려진 과육들을 밟고 짓이겨 보았다. 그러다보니 역겨웠던 냄새가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비록 고약한 냄새를 가진 은행이지만 약재로 쓰이고 있고 요리에도 사용된다. 고급 음식점에 가면 연두색으로 구워진 은행들을 몇 개씩 고치에 꽂아 내놓고 구절판에도 구색 맞추기 위해 장식되고 있는데 열매의 과육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머지않아 우리 주변에서 은행알들이 사라질 것 같다.

공교롭게도 다음날 모 일간신문에 <“어휴 냄새~” 은행나무와 전쟁 막 올랐다>라는 제목으로 냄새가 지독하다는 민원 때문에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내에 있는 은행 열매 털기 전쟁이 한창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은행 열매의 악취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해 민원을 제기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는데 요즘 사람들이 참을성이 없어진 건가? 집으로 돌아와 은행나무에 관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KISTI 과학향기 칼럼>을 통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칼럼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은행나무는 목련과 개나리처럼 수꽃과 암꽃이 한 그루에서 피어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자라서 암나무에서만 종자가 난다. 은행알은 실은 열매가 아니라 은행나무 종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수나무에는 정자가 있는데 꼬리를 달고 있어 스스로 움직이면서 운동할 수 있어 ‘정충’이라 부른다고 한다. 정충이 스스로 움직여 암꽃의 안쪽에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우물이 있고, 이 우물의 표면에 떨어진 정충이 짧은 거리를 헤엄쳐 난자 쪽으로 이동하는데 꼬리를 쓴다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어른으로 자라 종자를 맺기 전까지 암수를 구별할 방법이 없어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야 암수를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2011년 6월 국립산림과학원이 은행나무 잎을 이용해 암수를 식별하는 ‘DNA 성감별법'을 개발했다. 종자를 덮고 있는 과육질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고 만지면 피부가 가렵기 때문에 다른 동물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은행알을 먹으며, 다른 곳에 종자를 퍼트려 준다. 인간이 사는 곳에서만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은행알의 고약한 냄새는 은행나무가 인간에게만 보내는 비밀신호는 아닐까?

우리나라에 은행나무가 전해진 것은 신라의 진덕여왕 시대인 649년 중국을 왕래하던 스님이 가져다 심은 것이 최초라고 한다.(네이버) 이렇게 역사가 오래된 은행나무를 악취 때문에 암나무를 베어내고 수나무만 심는다면 마치 여자는 없고 남자만 사는 세상과 같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든다. 여자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남자와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결혼한 여자들의 출산 기피 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5년간 합계 출산율이 평균 1.24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이고, 2750년쯤에는 인구가 소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CBS노컷뉴스 2016.10.17)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들은 모두 종족 본능이 있다. 사막에 서식하는 식물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씨를 퍼트리고 하찮은 곤충들이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수컷이나 암컷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을 <동물의 왕국>에서 보면 눈물겨울 때가 많다.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들은 종존 보존을 통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역사가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의 여자들이 유독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탁아, 및 보육시설과 사교육비 부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젊었을 때는 잘 살건 못 살건 여자가 결혼하면 출산은 의무였다. 집안의 대를 끊는 것이 칠거지악 중의 하나라는 유교 사상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낳기를 원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필자가 일생을 통해 가장 행복했던 때는 결혼 5년 만에 불임을 치료하고 낳은 첫 딸을 옆에 누이고 잠든 모습을 지켜보던 순간이었다. 단칸방에 살았는데도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4년 후에 아들을 낳았고, 그 자식들이 결혼해 낳은 네 명의 손자와 손녀들이 노년의 내 ‘엔도르핀’이다. 나는 전문직 여성으로서의 성취감보다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있다는 것이 더 좋다. 늙어서 돌아갈 곳은 가족뿐이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출산의 경험은 축복이다. 여자는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의 고통을 겪고, 힘든 육아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어른다워진다는(mature) 게 내 생각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성공한 전문직 여성들이 경력 관리에 걸림돌이 된다고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은 고약한 냄새 때문에 은행나무 중 암나무를 없애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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