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칼럼]교민(僑民)이라는 용어는 터부가 아니다
[이종환칼럼]교민(僑民)이라는 용어는 터부가 아니다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1.02.04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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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의 교(僑)는 '더부살이' 아니라 '높다'는 뜻

 
필자가 동아일보 북경 특파원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신문에 시리즈 기사를 쓰면서, 앞으로 ‘황해권’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며 ‘황해(黃海)’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그러자 한 독자로부터 황해라는 말은 중국에서 쓰는 것이라고 항의가 왔다. 한국은 서해(西海)로 써야 한다며 필자를 나무라는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중국이 서해를 황해로 부르는 것은 맞다. 중국은 상하이 위에 있는 양자강과 제주도를 잇는 선을 경계로 해서 그 북쪽을 황해로 부른다. 그 아래로는 중국의 동해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 황해라는 말은 우리말이 아닌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황해’를 이렇게 설명한다.“한반도와 중국에 둘러싸인 바다. 북으로 발해, 남으로 동중국해와 이어지며, 지금은 해양유전개발이 한창이다” 국어사전의 정의가 이런데도, 황해에 황(黃)자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황하에서 온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우리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리 언어생활의 다양성을 제약하는 편견일 뿐이다.

필자가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이 같은 한자어 편견이 생활 곳곳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교민(僑民)이라는 용어도 그 하나다.최근 교민의 교(僑)자가 더부살이 교자로, 더부살이 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써서는 안 된다고 한 칼럼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대신 동포라는 말을 쓰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높을 교(僑)자로 훈독하는 교(僑)자를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됐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중국의 ‘바이두’ 백과사전은 교(僑)자가 ‘외지 혹은 외국에 산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다.사람인(人)자를 뺀 교(喬)자는 ‘높으면서 위가 둥근 것’을 지칭한다는 설명도 곁들이면서, 국경 너머에 살거나 국경을 넘나들며 사는 것이 교자를 의미한다고 소개했다.

중국은 해외에서 사는 동포를 교포 혹은 교민이라고 부른다. 바이두 백과사전은 교포를 나라밖에 교거(僑居)하는 동포라고 해석하고 있다. 특히 교민이라는 용어에는 독특한 역사적 함의도 들어있다.  “이 해부터 과남과 서주의 교민이 세금을 내기 시작했다(是歲始課南徐州僑民租)”(송서 효문제기), “7월에 광릉교민 주성과 장상이 몰래 병사들을 묶어 제나라 자사 온중옹을 습격했다(七月廣陵僑民朱盛張象潛結兵襲齊刺史溫仲邕)”(진서 고조기)”.

이처럼 교민이라는 용어가 중국 역사서에 등장한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때였다. 당시 북쪽 이민족들이 지금의 화북지방에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북쪽에서 내려와 남쪽에 정착한 이들을 교민이라고 부른 것이다.굳이 비유하자면 6.25때 남쪽으로 내려온 이북 실향민을 지칭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럼 해외에 있는 우리 한인들을 교민으로 부르면 안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외동포, 재외동포, 해외교포, 재외교민 등 다양한 용법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단 함의가 조금씩 다를 것이다. 바다를 건너느냐 아니냐, 간 지 오래됐느냐 아니냐, 국적이 현지 시민권자냐 아니냐 등에 따라 부르는 법도 다르고, 뉘앙스도 다를 수 있다.  굳이 재외동포로 부르는 것은 연변이나 심양 목단강에 있는 동포처럼 바다를 건너지 않는 곳에도 동포들이 있기 때문이다

동포(同胞)라는 말은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 자매라는 말이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과거 민족적 저항기에 많이 사용된 말이다.손중산이 '사억동포여, 우리 민국을 구하자'라고 외쳤을 때가 전형적인 용법이다.  나와 남을 갈라 우리끼리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때문에 다른 민족과 어울리고, 결혼하는 다민족 다문화시대에는 잘 맞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재일교포라는 용어는 일본에 있는 동포들이 상대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용어다.해방후 힘든 시기에 일본 언론들에 오르내린 용어여서 ‘고급의 느낌’이 들지 않는 용어인 셈이다.일본 언론은 우리의 재일교포를 ‘자이니치(在日)’로 약칭한다.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을 구분하기 쉽지 않아 자이니치로 부르는 것이다.

대신 나중에 일본에 건너가 정착한 한국인들을 뉴커머(new-comer)라 부른다. 반면 우리는 이에 대해 적당한 용어나 용법이 없다. 아마 우리가 부르기에도 좋은 신조어가 머지 않아 나올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의 언어에 과도한 제한을 둬서는 안된다. 교민, 교포, 동포 모두가 가능해야 한다. 우리말만으로 안되면 외국어도 도입할 수 있다.

우리 언어의 어휘를 풍부하게 하는 것, 그것이 글로벌 시대 우리 생활의 내용을 발전시키는 동력이다.본지가 ‘월드코리안’이라는 제호를 사용한 것도 그런 시도의 하나로 봐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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