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수의 문화칼럼] “무상복지의 덫을 경계하라”
[안영수의 문화칼럼] “무상복지의 덫을 경계하라”
  •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 승인 2017.02.1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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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IGSE) 총장.

설 쇠러 왔던 아들네 식구들이 떠난 다음 날, 눈이 내린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고즈넉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그렇듯, 나도 눈을 좋아했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눈만 내리면 마음이 포근했다. 아마도 눈이 가난을 포근하게 덮어주는 이불 역할도 했나보다. 

포근한 눈이 내리는 창밖 풍경과는 달리 가끔 나는 ‘전쟁과 가난’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아홉 살에 한국전쟁을 겪었고, 아버지는 인민군의 손에 돌아가셨다. 그 후 우리 집은 풍비박산이 돼 나의 유년과 청소년기는 전쟁으로 인한 ‘가난’의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나는 어느덧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안보’에 관한한 지식도 경험도 소용없는 ‘꼴통 보수’에 속한다.

특히, 늦게 얻은 열 살부터 세 살에 이르는 네 명의 손주들이 나와 같은 불행한 전쟁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다. 전쟁경험의 트라우마는 평생 나를 괴롭히는데, 이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안정된 생활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모르고 있는 듯하다.

국민들이 피땀 흘린 대가로 반세기 만에 국민소득은 3만 달러에 가까워졌는데도,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진다고 아우성이다. 젊은이들은 극심한 취업난으로 한국을 ‘헬조선’을 넘어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어)라고 자포자기 하고 있다. 60년대 나라 살림에 비교하면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돼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은 많이 향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취업절벽으로 인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절망 속에 보내는 청년들이 많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데도 해마다 연휴만 되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젊은 사람들이 엄청 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동화에 나오는 베짱이의 삶을 택한 젊은이들도 있어 보인다. 우리가 어렸을 때,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야 늙어 고생하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요즘 세대는 젊어서 개미처럼 일하면 늙어 골다공증에 걸린다 하고 어려서부터 노래 열심히 불러 아이돌 가수가 되면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2016년 1,300조원을 넘어서 가처분소득의 150%에 달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가계부채 총량이 GDP의 85%를 넘어가면 부채가 그 나라의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6월 기준, 한국의 이 비율은 90%로 신흥국 중 가장 높다.(조선일보 2017.2.11) 나도 모르게 내가 많은 빚을 지고 있다니, 젊어서 빚 갚느라고 허리띠를 조이고 살아온 나는 겁이 난다.

탄핵정국으로 조기 대선이 임박해지자 우후죽순처럼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자들이 경쟁적으로 선심성 공약들을 내놓고 있다. 국가 재원이 고갈되고 있는 상태에서 무상복지를 남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지금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를 보라.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의 유명 문화재와 휴양지가 외국인들에게 팔리고 청년층의 50%가 실업상태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으로 국고가 탕진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1998년 IMF 위기를 겪었는데도 지금 어느 누구도 국가 채무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깨우쳐주지 않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대선 후보라면 국가재정 건전성을 위해 어떻게 파이를 키울 것인가 하는 비전을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들을 마치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가뜩이나 어려워지고 있는 국가의 경제활동을 저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사드의 한반도 배치로 중국은 경제 보복을, 새로 당선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로, 그리고 일본의 소녀상 보복 등이 한꺼번에 덮쳐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럽다. 더구나 작년 가을에 터진 최순실 농단 사건과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국가 통수권자가 없는 국민은 마치 선장을 잃고 폭풍의 바다 위를 표류하는 선박에 타고 있는 위기감을 느낀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엄중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대선주자들의 비전과 정책을 검증하자.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심성 또는 실현불가능한 공약(空約)을 내거는 후보는 우선적으로 걸러내야 한다. 만약 그런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현재의 그리스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직도 밖에는 눈이 내린다. 새해의 서설(瑞雪)이라면 좋겠다. 다음 선거에서는 국민과의 공개적인 소통을 전제로 비선에 조종당하지 않고 국정 능력이 있는, 그리하여 당면한 안보와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해 국운이 융성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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