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의 한 호텔에서 ‘soap’라고 쓴 아래 ‘sabun’이라고 써놓은 욕실의 비누를 보고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필자가 살던 시골에서는 비누를 사분이라고 불렀다. 세숫비누를 썼던 기억은 별로 없고, 두부 한 모보다는 작은 크기의 검은 색 빨래비누를 사분이라고 불렀는데, 오래전에 타계하신 할머니가 그때 아껴서 쓰시던 기억이 있다.
그후 부모님을 따라 시골을 떠나 도시로 나와 학교에서 배운 비누라는 말만 써오다가 인도네시아에서 우연히 사분이라는 단어를 접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비누를 사분이라고 해요.” 자카르타에서 만난 공자영 인도네시아 바탐 한인회장이 질문에 답을 했다.공회장은 바탐에서 여행업을 경영하면서 창호 등 한국 건설자재도 현지에 공급하고 있는 여성 기업인이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서 13년간 해설을 해온 이수진 인도네시아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코리안섹션 회장도 ‘비누=사분’이라고 같은 자리에서 확인해줬다.이회장은 인도네시아 한인문예총 부회장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비누가 처음 발명됐을까? 아니면 그것이 전파되면서 인도네시아에서도 사분이라고 부르고, 우리도 사분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던 것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비누는 한자 표기가 없다. 한자어가 아닌 셈이다. 비누를 일본에서는 ‘셋겡(石鹼)’ 혹은 ‘샤봉’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어는 사봉, 포르투갈어는 사바오, 라틴어는 사포, 터키어로는 사분으로 인도네시아와 같다.
비누가 중국어로는 ‘페이자오(肥皂)’다. 페이(肥)는 기름, 자오(皂)는 검은색을 의미하는데, 검은색 기름 덩어리라는 뜻이다. 어릴 때 보던 사분의 이미지에다 발음도 비슷해서, 우리말 비누는 아마 중국어 어원이 연결되는 게 아닌가 싶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오늘날 비누로 사용하는 지방산나트륨이 이미 1세기경부터 있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지역의 갈리아인들이 짐승의 지방과 불탄 재를 원료로 하여 비누를 만들었다고 로마의 플리니우스가 저서 ‘박물지’에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8세기에 이르러서는 비누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세제로서 널리 사용됐다고 한다.
타버린 재와 쓰고 남은 기름으로 만든 사분이 몸이나 옷을 깨끗하게 해준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사회나 정치도 그렇게 만들어줄 사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자카르타에서 박근헤 전 대통령 기소 뉴스를 접하면서 얼핏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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