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유권자님께. 제가 사는 콜로라도 덴버는 가까운 곳에 한국 영사관이 없는 중부 지역인지라, 2002년 미국에 들어와 사는 동안 한 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계속 살 수밖에 없는데, 시민권이 없으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작년 말에 시민권을 신청했습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니 갑자기 서운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 상황, 대통령과 최순실이 벌인 짓 때문에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당당해야 나도 여기에서 고개를 들고 살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번 선거에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덴버에서 비행기 티켓이 제일 저렴한 곳이 두 시간 걸리는 LA여서 그곳을 투표소로 신청했습니다. 공항에서 메트로 버스를 타고 한인 타운에 가서 투표했습니다. 간 김에 덴버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난 것을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덤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40평생을 살아오면서 뭘 이렇게 적극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 같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습니다.
나라가 이 사단이 났는데도 바뀌지 않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미국 사람으로 살더라도 조국 대한민국이 그런 적폐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여기 덴버에서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어깨를 들고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죠.
LA에서 투표하면서 대사관에 차로 갈수 있는 거리에만 살아도 참 좋겠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살며 걸어가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를 져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부를 욕하기 전에 제대로 된 정부를 만드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되잖습니까? 투표라는 가장 쉬운 권리행사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정치인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인들이 국민의 눈치를 보려면 투표용지를 흔들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지역주민들이 사회적 의제, 지역발전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두고 정치인을 불러 의견을 묻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표 앞에서는 꼬리를 내립니다.
한국에서도 나라에 세금 내고 미래의 주인인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정치에 직접 나서고 투표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최순실도 이명박도 전두환도 투표한다고 합니다. 제발 제발 투표해서 더 나은 나라, 외국에서도 자랑스러운 그런 나라 만들어 주세요.
잊지 마십시오. 좋은 나라 한국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국 상품도 대접을 받습니다. 코리아 브랜드는 한국이 멋진 나라일 때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지 광고비를 들인다고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멋진 나라 만드는 일은 5월9일 시작돼야 합니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박선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