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국민화가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중섭(1916~1956)과 박수근(1914~1965),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살아생전에 편안하게 그림을 그리거나,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간 사람이라기보다는 고난 속에, 특히 6.25한국전쟁의 와중에서 힘겹게 살다가 불우하게 일생을 마친 화가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박수근 그림의 특징은 궁핍한 시대의 평범한 풍경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것에 있다. 화려한 색깔이 없고 무채색의 그림을 그렸다. 회색조 바탕에 우툴두툴한 질감을 기본으로 한다. 거기에 배경을 생략하고 대상을 단순하게 묘사한다. 직선에 가까운 선묘(線描)는 주제의식을 분명히 한다.
박수근이 즐겨 그린 소재는 평범한 이웃, 그것도 아낙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도시 변두리나 시골에 살면서 삶의 현장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곤궁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선남선녀들이었다. 인고(忍苦)하는 모성은 있지만 정겨운 가족도는 없다. 인물들은 대부분 노상이나 들판에 있다.
거기에다 박수근의 그림에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그의 그림은 그 어느 것이든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지 않는 작품이 없다. 박수근의 작품은 마치 바위 위에 새겨진 마애불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가 새긴 것은 부처가 아니라 그가 살던 시대의 죄 없고, 정직하고, 순진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지난 우리들의 이웃이었다. 없이 살면서도 인간성과 인간미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그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그린 것이다.
또 박수근은 나무를 좋아했다. 필요 이상으로 가지가 잘려 나가고, 줄기조차 굽어있는 썰렁한 겨울나무이다. 박수근의 나무 역시 인고의 나무이다. 이파리 하나 붙어있지 않은 나목(裸木)이 박수근 표 나무이다. 박완서(1931~2011)의 등단작이라 할 「나목」이 박수근의 나무이다.
박수근 그림의 대표적 도상은 나목과 아낙네를 함께 그린 데서 찾을 수 있다. 바로 한국인의 고향 풍경이고 어머니의 모습이다. 박수근의 그림은 우리네 고향의 초상이기 때문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그림에 끌리지 않을 수 없다.
박수근의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나무와 여인’이다. ‘나무와 여인’는 3호짜리 소품에서부터 60호짜리 대작까지 여러 점이 있고 그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이 약 400여 점, 소장자들 모두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각기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작품의 질이 고르다.
박수근은 그의 몸과 삶으로 예술은 고통의 산물이고, 고독한 고행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한반도의 배꼽이라고 말하는 강원도 양구, 그의 생가 터에 2002년 10월, 박수근미술관이 건립되었다. 근처에는 ‘박수근 나무’로 지정된 누릅나무도 있고 그의 작품이 잉태된 빨래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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