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진령군의 국정농단
[선비촌만필] 진령군의 국정농단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17.12.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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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6월 궁녀의 복장으로 변장한 민비는 궁궐을 빠져나와 장호원에 있는 충주목사 민응식의 집으로 피신했다. 대원군과 내통하고 있던 군란의 주모자들은 민겸호 등을 죽이고 민비까지 해치려 하자 민비는 무감 홍재희의 도움으로 급히 장호원까지 도망갈 수 있었다.

임오군란(壬午軍亂)은 구식 군인들이 일본이 훈련시키는 신식 군대와의 차별대우와 13개월이 넘도록 밀린 봉급미(俸給米)문제, 민씨 일파의 개화정책 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여 일으킨 란(亂)이였다.

그때 대원군은 고종의 요청으로 군란수습에 전권을 행사하며 민씨 일파를 척결하는 한편 며느리인 민비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자 시신도 없이 민비의 국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의 생존을 은밀히 고종에게 알리면서 다시 궁궐로 복귀할 수 있을지 노심초사하며 숨어 지내던 민비는 주변의 소개로 이씨성을 쓴다는 무당을 만나 자기의 운명을 점치게 된다.

이 무당은 민비가 한 달 이내에 궁궐로 복귀할 것이라는 점괘를 설명하며 정성을 다해 민비를 보살폈다. 7월초 시아버지인 대원군이 청에 납치되며 실각하자 피신 33일 만에 궁궐로 복귀하게 된 민비는 무당의 예언이 적중하자 이에 감격하여 그를 데리고 궁궐로 돌아와 고종에게 무당의 신통함을 치하해 주기를 간청했다.

이에 고종은 무당에게 진령군여대감(眞靈君女大監)의 군호를 내렸으니 이가 곧 진령군이다. 조선 최초로 여자가 군호(君號)를 받은 사건이다.

궁궐에 상주하며 임금과 왕비의 비호를 받는 궁중무당, 아니 진령군은 이유인이라는 시정잡배를 불러들여 자기의 양아들로 삼고 북묘(北廟)에서 같이 살기까지 했다. 진령군은 이유인에게 양주목사, 병조참판, 한성판윤, 나중엔 법부대신이라는 벼슬까지 시켜주며 함께 국정농단을 자행했다.

이런 국정농단이 계속되는 동안 지석영등 조정 대신들의 상소가 빗발쳤지만 고종과 민비는 끝내 이들을 비호하면서 국정농단은 1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고종은 갑오개혁이 단행된 1894년에야 국정농단의 책임을 물어 진령군을 거혈형으로 처단했다는 설과 민비가 시해된 후 숨어살다가 자살했다는 설, 그를 알아본 백성들로부터 맞아죽었다는 설 등이 전해지고 있는데 국정농단의 결과는 민비와 자신의 비극적 종말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진령군의 하수인이었던 이유인은 고종의 신임으로 1905년까지 벼슬을 하다 죽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외세의 침탈과 국정파탄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권력투쟁에 매진하며 척족(戚族)정치에 중독된 민비는 병약한 세자의 건강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굿판과 진령군이 시키는 명산대천에 올리는 제사로 국고를 탕진하는가 하면 매관매직과 인사개입등 국정농단이 조선의 운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들의 국정농단 흔적은 경상도 예천 금당실 마을에도 있다. 십승지(十勝地) 중의 하나로 알려진 금당실 마을엔 양주대감이 지었다는 궁궐 같은 고루거각(高樓巨閣)이 있었다. 그 집은 이유인이 왕실의 비밀행궁으로 지었다는데 사실은 자신의 저택이었다고 한다. 6.25 이후 헐려 서울에서 수십 채의 한옥으로 옮겨지고 지금은 빈터만 남아 있다. 무당의 신통력에 혼이 빠진 민비와 고종의 무능이 왕실은 물론 나라의 운명까지 나락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16세기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와 기생 정난정의 국정농단에 이어 130여년 전 민비와 진령군이라는 무당의 소설 같은 국정농단 사태가 21세기 이 나라 대통령과 최순실이라는 알 수 없는 한 여인의 수중에서 또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국정농단 사태는 나라의 위신은 물론 국격의 추락으로 우리국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내·외의 사정이 19세기말 못지않게 어지러운 이때에 40년 전의 환영(幻影)에 매몰돼 공사(公私)를 구분 못한 대통령의 혼미함과 마주하면서 우리가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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