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코리안문단] 남해의 섬 하나 - 사량도(蛇梁島)
[월드코리안문단] 남해의 섬 하나 - 사량도(蛇梁島)
  • 정유림(큐레이터)
  • 승인 2018.02.27 14:2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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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고성이나 통영에서 배를 타고 40분 정도 바닷길을 헤치고 가면 잔잔한 섬들을 뒤로 하고 에메랄드빛의 눈부신 바다와 함께 ‘사량도’라는 길쭉한 모양의 섬이 보인다.

경상도 사람들의 발음상 ‘사랑도’로 들었기에 이름에 얽힌 절절한 유래가 있으리라 잔뜩 기대를 했었으나 알고 보니 상도와 하도로 나뉘어 있는 사량도 에는 뱀이 많이 살았고 섬의 모습 또한 긴 뱀과 흡사해서 붙은 명칭이었다 한다.

다른 하나는 상도와 하도 사이를 건너가는 뱀 모양의 해협이 있는 섬이라 하여 사(蛇) 량( 梁) 도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유래도 있다.

잘나가던 시절. 한때는 인구가 8000여명에 육박할 정도로 큰 섬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은 뭍으로 떠나버렸고 ‘사량도’에는 남은 원주민들과 아름다운 남해 바다와 또 다른 지리산의 아름다운 옥녀봉이 이 섬을 지키고 있다. 이 섬의 지리산은 해발 398m로 이곳의 정상인 옥녀봉에 올라가면 멀리 육지의 지리산을 볼 수 있다 하여 지리망산(地理望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차츰 줄여 부르게 됐다.

내가 사량도를 찾은 날은 등산 코스로 각광받는 사량도의 옥녀봉 등산 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뭍으로부터 섬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은 배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이미 배 안에서부터 적당히 취해 있던 사람들은 무리를 찾아 다시 선착장 앞 벌어진 좌판에 앉아 자리를 잡고 술에 취해 바다에 취해 떠들며 웃고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들의 즐거운 표정을 한참동안 구경하다 바다가 보이는 허름한 가게에 들어갔다. 간단히 국수 하나를 먹고 나자 다리를 저는 주인 할머니가 말을 건네 왔다.

할머니에게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딸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을 뭍으로 시집보내는 것이 할머니의 소원이었고, 할머니의 희망대로 육지의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딸은 짧은 결혼 생활 동안 죽어라 고생만 하다 병을 얻었고 핏덩이 둘만 남기고는 깊고 어두운 나라로 떠나가 바다에 뿌려졌다.

어두운 노인의 얼굴에는 파도에 밀려 깎인 바위의 깊은 골 만큼이나 깊게 패인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었고, 얘기하는 내내 씻어내어도 씻기지 않을 눌러 붙은 때 묻은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내 손등으로 쓰윽 눈물을 훔치곤 일어서서 냉장고에서 직접 빚었다는 막걸리 한 사발과 툭툭 썰어낸 김치, 그리고 누가 볼 새라 문어머리를 뚝 떼어내 좋은 거라며 시커먼 손으로 내게 건네주었다. 어느덧 섬에는 노을이 번지고 일찍부터 나온 달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량도 하늘에는 축제를 알리는 폭죽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관광객들은 탄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미는 또 다른 한 어미의 딸인 나를 바라보는 눈에 붉은 노을이 드리웠다. 노인이 된 어미의 눈동자와 맑은 섬의 달빛사이에는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멀리 육지가 그리워 지리산을 바라본다는 사량도의 지리산 위에서 뭍으로 떠난 자식을 그리는 어미들이 무수히 많은 날 들을 산 정상에 올라갔을까. 또한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뭍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을까.

험한 암벽조차 아름답게 보이는 사량도의 지리산 옥녀봉에 어둠이 치마 자락을 풀며 다소곳이 내려앉았다. 엉성하게 엮어진 문 밖으로는 ‘사량도’를 비추는 달빛에 묶인 포구의 고기잡이 배 들이 출렁이고, 진한 농주 한 사발을 건네준 은발 어미의 눈에는 눈물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리고 떠도는 자의 눈에는 달빛 아래 춤추는 바다가 눈물겹게 일렁이고 있다.

필자소개
피카소게르니카전, 운보판화전, 일민미술관, 롯데갤러리 등에서 큐레이터로 활동
현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기획실장
2017년부터 미술협회 전시기획행정분과위원, 리더스포럼문화예술국장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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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숙 2018-02-28 23:04:38
달빛 아래 춤추는 바다 남해에 봄을 만끽하러 나서봐야 겠습니다

이현주 2018-03-01 00:55:21
동포들을 멋진 일을 하는 정유림큐레이터
넘 멋집니다.
사량도 남해로 떠나보고 싶습니다.
글도 어쩜 이리 맛깔스러운지
최곱니다.

이시은 2018-02-28 22:48:24
제가 음식을 해서 그런지모르겠지만,정갈함이 묻어나는 글...잘 읽었습니다^^

가이아 2018-08-08 08:53:27
생각하게 하는 글..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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