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칼럼] 병자호란 그린 영화 ‘남한산성’, 뭘 말하려 했나?
[이종환칼럼] 병자호란 그린 영화 ‘남한산성’, 뭘 말하려 했나?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8.03.17 0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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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발행인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발행인

폴란드 바르샤바를 가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봤다. 인조가 남한산성을 내려와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한테 항복의 뜻으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을 치르는 장면이 나올 무렵 비행기는 마침 중국 청더(承德)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청더는 청나라 황제의 여름별궁이 있는 곳으로, 전에 열하(熱河)로 불린 곳이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방문기에 ‘열하일기’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조선 사절단들이 좀처럼 가기 힘든 열하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연암은 청나라 최전성기로 통하는 건륭제의 고희연 축하 사절단을 따라 북경으로 갔다가 건륭제가 열하의 피서산장에 가 있다는 전갈을 접하고 서둘러 거기로 갔다. 열하로 가는 길에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면서 쓴 글이 교과서에서도 실린 연암의 유명한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다.

삼전도 항복 장면을 청더 상공에서 보다 보니 병자호란을 그린 ‘남한산성’이란 영화의 메시지가 과연 뭘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영화를 만들 때는 감독이든 극작가든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게 마련이다. 병자호란을 그린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영화는 계속 봐나가기 어려울정도로 무겁게 진행돼 특히 그 메시지가 궁금했다. 청군에 비해 조선군이 너무 초라하고 무력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은 치욕의 역사여서인지 사람들이 입에 올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적 평가도 ‘시대의 흐름을 오판한 외교와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가 가져온 치욕’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당시 조선은 국교이던 성리학이 실용성을 잃고 예학 중심으로 치닫기 시작하고,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도 본격화하던 때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참화에서 명나라와 도움을 받아 왕조를 지킨 조선 왕실과 사대부들은 명나라의 은혜를 잊지 않는 의리론을 왼쪽 기둥으로 하고, 후궁의 초상이 났을 때 임금이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 등의 예학을 오른 쪽 기둥으로 해서, 서로 목숨을 건 논쟁을 벌였다.

이런 시기에 청나라가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임진왜란으로 명나라도 조선도 국력을 소진했을 때 그 공백을 타고 청나라가 일어선 것이다. 특히 조선은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과 그 후유증으로 이괄의 난까지 일어나 조선의 정예병이 궤멸됐을 때 청나라의 침략을 받았다.

인조반정은 광해군이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황후를 폐비시키는 패륜행위를 명분으로 일으킨 쿠테타였다. 연산군의 폭정에 못이겨 일어난 쿠데타와는 애초 성격이 달랐다. 폐모=패륜 논쟁과 사대부들의 패거리정치에 기인한 정변이어서, 그렇게 임금이 된 인조도 제대로 왕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웠던 때였다.

결국 인조의 리더십 부재와 조정의 의견 대립은 주화파와 주전파로 갈라져 적전분열을 노정하다가 삼전도의 굴욕으로 귀결됐던 것이다.

‘남한산성’ 영화를 만든 감독은, 대본을 쓴 극작가는 도대체 이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 했을까? 백성들의 마음을 떠난 지도부의 적전분열이 전쟁필패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담으려 했을까? 아니면 전쟁이 휩쓸고 간 들에도 민들레는 핀다고 하는 역사무상론을 펼치려 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여전히 그 메시지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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